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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룩 Jul 04. 2023

열정과 절박함의 청춘

tripleS, <Rising>

어떤 영상들은 어떤 표정들을 봐야만 그 영상 전체를 본 것만 같다. 그리고 나는 그런 영상들에 매료된다. 정확히는 그 표정을 한 그 얼굴들에, 그 얼굴을 감싸고 있는 이야기에. 트리플에스(tripleS)의 첫 단체 곡 <Rising>의 뮤직비디오는 내게 그런 영상이다.


네 개의 차원, 두 개의 시간


케이팝 뮤직비디오의 구조를 파악할 때 중요한 건 의상이다. 의상과 장소를 기준으로 인물들이 놓인 차원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뮤직비디오에는 네 개의 차원이 존재한다.


[차원1] 캐주얼한 복장을 입고 버스정류장에서, 혹은 집에서 몰래 연습실로 갔다가 그곳에서 영상을 보며 함께 팝콘을 먹는다.

[차원2] 검은 패딩을 맞춰 입고 버스에서 내려 농구장에서 춤을 추고, 무대를 보며 설레고, 편의점에서 함께 과자를 먹으며 영상을 본다.

[차원3] 조금 화려한 무대 의상을 입고 무대를 한다.

[차원4] 바닥에 S라고 적혀 있는 하얀 공간에서 비비드한 색의 옷을 입고 무대를 한다.

순서대로 [차원1]과 [차원3]

이때 네 개의 차원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트리플에스의 멤버들이다. 즉, 같은 인물들이 다른 역할로 출연한다. 재밌는 건 차원들이 '영상'과 '무대'를 매개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차원1]에서 보는 영상은 [차원4]이고, [차원2]에서 보는 무대는 [차원3]이다. 그런 의미에서 [차원1]과 [차원2]는 '현재(연습생)', [차원3]과 [차원4]는 '꿈꾸는 미래(아이돌)'라고 볼 수 있겠다. 즉, 이들이 보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자신들의 꿈과 열정이다.


밤, 검은 패딩, 편의점, 청소년


교복 입은 학생들 사이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비웃음을 사며 불안한 표정으로 손톱을 뜯는 모습, 가족 몰래 집에서 나와 친구들과 연습실로 가는 모습, 그 사이사이 일상을 필름 사진으로 남기고 인스타에 올리는 모습을 통해 그려내고자 하는 모습은 패딩을 입고 편의점에 모여 있는 이미지에 집약된다.

또래들에게도 가족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꿈을 꾸는 청소년들의 시간은 밤이고, 그들이 있는 공간은 연습실과 편의점, 무대다. 집, 학교, 연습실, 편의점을 버스를 타고 오가며 인정받지 못하고 지지받지 못하는 열정을 불태우는 청소년들은 무대 위의 화려한 아이돌이 된 자신들의 모습을 꿈꾼다. 다른 이들의 퇴근과 하교에 시작되는 이들은 다른 이들이 출근하고 등교할 때 버스에서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 자신들이 합을 맞춰서 춤을 추고 무대에서 울려퍼질 바로 그 곡을 들으며.


아이돌, 불안


트리플에스는 현재 열다섯 명으로 구성된 걸그룹이고, 목표는 총 스물네 명이다. 멤버는 지금도 모집 중이다. 소속사인 모드하우스(Modhaus)는 NFT를 활용하는 블록체인 기술을 포토카드에 접목하여 팬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했다. 멤버들이 어떤 조합과 순서로 활동하게 될지는 팬들의 투표로 결정된다. 물론 활동을 못하는 멤버는 없는 시스템이지만,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모든 가능성의 아이돌."

이들은 이미 데뷔를 했지만, 어떤 면에서 여전히 [차원1]과 [차원2]에 있다. 많은 아이돌은, 특히 모드하우스와 같은 중소기획사에서 데뷔한 아이돌은 데뷔 이후에도 무대 위에서 빛날 날이 그리 많지 않다. 자신들이 원하는 큰 무대에 설 날도 많지 않다. 그렇기에 이 뮤직비디오는 단지 연습생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 뿐 아니라, 중소기획사 아이돌의 현실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얼굴들


다시 얼굴로 돌아오자. 때로 알 수 없이 사로잡히는 얼굴들이 있다. 오늘날 아이돌의 매력이라는 건 복잡하다. 그냥 예쁘거나 잘생기기만 해서는 안 된다. 혹자는 이제 아이돌들이 '사랑받은 티'까지 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런 분위기가 있다는 데에도 분명 동의한다.


내가 사로잡히는 얼굴은 무엇일까. 그건 열정과 절박함으로 가득한, 불안한 욕망과 꿈의 청춘을 담은 얼굴인 것 같다. 또래들의 무시 속에 손톱을 뜯는 유연, 가족 몰래 집에서 나오는 채연, 그리고 무엇보다도 연습실에서 결연한 표정으로 카메라와 마주하는 서연. 불안하고 절박한 열정, 그 찬란한 꿈.



이런 얼굴들과 마주했을 때, 그 얼굴이 뿜어내는 정동에 사로잡히는 건 왜일까. 여기서 상품화되는 건 외모와 성격만이 아니라, 아이돌의 불안이라는 정동 그 자체가 된다. 이들의 불안에 반대하면서도, 불안을 품은 열정과 꿈의 얼굴을 사랑하게 되는 일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내 사랑은 과연 괜찮을까. 사로잡히는 일이란 이렇게나 불쾌하고 매력적이다.


https://youtu.be/3TQd2ahq6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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