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모스, <증여론>
오명석은 경제인류학에 비교론적 관점, 민족지적 관점, 총체론적 관점이 있다고 설명하는데,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은 이 셋 모두에 해당한다. 민족지를 자료 삼아 구체적인 사례들에서 출발하여 사회에 대한 이론적 설명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민족지적 관점을, 민족지 자료들을 현대 사회의 (직)전 단계로 전제하고 그곳으로부터 배울 점을 찾고자 한다는 점에서 비교론적 관점을, 하나의 경제적 행위가 그 사회의 친족 구조와 종교적 믿음까지 관통하는 사회의 총체를 보여준다고 이해한다는 점에서 총체론적 관점을 갖추고 있다. 이처럼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경제제도를 경험적으로 연구한다는 의미에서 모스의 연구는 실체론적 경제인류학 연구의 한 사례이기도 하다.
모스는 우선 민족지적 관점에서 폴리네시아, 안다만 제도, 멜라네시아, 북서부 아메리카 등 다양한 지역에 대한 민족지 연구들을 참고하고, 이를 통해 각 사회 안에서 주기, 받기, 그리고 답례하기라는 증여의 세 가지 의무가 어떻게 실행되고 있는지 분석해낸다. 이를테면, 그는 여자, 남자, 아이, 의식 등을 공동의 기반으로 삼는 씨족들 간의 영속적인 계약의 체계이자, 증여의 세 가지 의무를 포함하고 있는 집단 간의 교환과 계약을 ‘전체적인 급부 체계’로 명명하고, 그것의 대표적인 사례로 포틀래치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각 사회에서 포틀래치가 누구에 의해, 누구와의 관계에서,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는지를 파악함으로써 포틀래치는 경제적 제도일 뿐 아니라 법률적, 종교적, 신화적, 샤머니즘적이기도 하다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증여의 세 가지 의무와 증여 체계를 의무적인 것으로 만드는 물건의 힘과 그 과정에서 유통되는 화폐의 기능 등을 분석함으로써 그는 증여라는 경제적 행위가 사람 사이의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고 또 파괴하기도 하는 도덕적이고 관계적인 성질을 지니고 있음을 역설한다.
모스에게 이는 자연스럽게 총체론적 관점으로 이어진다. 현대의 시장경제가 아닌 경제, 즉 비시장경제에서 답례를 강제하는 물건의 ‘힘’은 그것의 소유자인 한 인물과의 관계에서만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마오리족에서의 경우와 같이 물건에는 그 자체로 ‘하우’와 같은 영이 담겨 있고, 그것은 물건을 준 사람의 영이기도 하고, 그 물건이 원래 속한 숲이나 지역의 영이기도 하다. 그러한 영을 오래 갖고 있으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답례를 통해 영을 다른 이에게 이전해야 한다. 영의 이러한 시간적 속성은 선물에 대한 답례, 혹은 호혜가 언제까지 지연될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경제적 행위인 포틀래치가 법률적, 종교적, 신화적, 샤머니즘적이기도 하다는 민족지적 관점의 결론은 총체론적 관점에서 비슷하게 드러난다. 물건을 주고받게 하는 힘이 물건 그 자체에 있고, 그러한 물건의 힘은 그 사회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믿음과 관련된다. 특정 사회의 종교적 믿음이 특정한 경제적 행위를 추동하고, 그러한 경제적 행위는 사회적 연대를 반복적으로 구성하고(빚을 지우고) 해체하고(빚을 청산하고) 다시 구성함으로써(역으로 빚을 지움으로써) 사회 그 자체를 계속해서 구성해나간다.
마지막으로 비교론적 관점에서, 모스는 다양한 지역의 사회를 (당시 기준) 현대 프랑스 사회의 (직)전 단계로 규정하고, 그곳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들을 논한다. 특히 모스는 의무적인 지출과 그에 따르는 즐거움과 풍류, 환대와 축제를 지금 사회에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때 비로소 시민이 그 자신과 사회 전체와 하위집단들을 고려하면서 행동해야 한다는 ‘영원한 도덕’을 되찾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그것은 우리보다 “덜 가혹하고, 덜 근엄하고, 덜 인색하고, 덜 이기적”이고, “더 관대”하고 “주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물건과 존경, 후함의 주고받음 안에서 선과 행복을 찾을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