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라는 단어는 나에게 더러움이나 찝찝함, 미끈거림과 같은 느낌들을 가장 먼저 상기하곤 했다. 이끼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서 습하고 햇볕이 잘 들지 않는 곳에만 생긴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직접 보진 않았지만 어두운 느낌의 포스터와 예고편 때문에 기억에 남은 영화 <이끼>(2010) 때문일까, 아니면 도시에서 주로 살아서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의 바위에 붙은 이끼를 별로 본 적이 없어서일까.
그런데 집에서 식물을 기르면서 이끼에 대한 내 생각은 깨지기 시작했다. 상황에 따라 이끼는 오히려 식물이 아주 잘 자라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가장 처음 집에 들인 반려식물 중 하나인 ‘청마삭’은 본래 덩굴을 치는 식물이지만, 우리가 으레 ‘나무’라고 인식하는 형태로 자라고 있었다. 도톰한 줄기, 거기서 위로 뻗어 나온 가지들과 잎들. 이 녀석은 아주 굵은 알갱이의 흙으로 채워진 한 손바닥만 한 파란색 화분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물이 묻으면 유독 반짝여서 더 예쁜 화분.
어느 날부터였을까, 청마삭 줄기 주변의 흙에 이끼가 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걷어내야 하는지 고민했지만, 반짝이는 이끼가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나와 아빠는 이끼를 그대로 두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청마삭 화분에는 흙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이끼가 많아졌다. 물을 주면 이끼는 화분과 함께 촉촉해졌다.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분재의 뿌리와 가장 가까운 줄기 부분에 촉촉하게 물기가 올라오면 나무가 잘 자라고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적어도 집에서 지금 함께 사는 나무들에 대해서는 맞는 이야기로 보였다. 까맣게 물기가 올라온 줄기, 그 주변을 가득 메운 이끼, 끝없이 뻗어 나오는 새로운 가지와 빳빳한 이파리들.
그러던 어느 날, 이끼에서 유독 길쭉한 줄기가 올라왔다. 마치 꽃을 피우려는 듯, 그 끝에는 작은 봉오리로 추정되는 부분이 있었다. 이끼에서도 꽃이 핀다는 건 처음 알았다. 검색해보니, 계곡의 이끼 사이에서 꽃이 피어오르는 경우들이 종종 있는 듯했다. 이끼는 흙이 마르는 걸 방지해주면서 나무가 더 잘 자라게 해주고 있었고, 동시에 이를 통해 꽃을 피울 만큼 그 자신도 이 화분에 더욱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끼는 화분에만 생기지 않았다. 나와 아빠는 특히 겨울에 습도를 유지해 주고자 작은 화분이 서너 개쯤 올라갈 수 있는 화분 받침에 자갈에 가깝게 느껴지는 흙인 ‘마사토’를 깔아두었다. 화분 받침이 있는 채로 물을 주든, 화분에 물을 따로 주고 나서 화분 받침으로 옮기든, 화분에서 나오는 수분은 화분 받침에 있는 마사토 사이로 스며들었다.
바로 그곳에서 이끼와 괭이밥이 자라기 시작했다. 작은 화분들 사이에서 괭이밥은 짙은 초록색의 잎들 사이에서 해가 뜨면 펼쳐지고, 해가 지면 접히는 작고 노란 꽃을 틔웠다. 어두운 곳에서만 자란다고 알고 있었던 이끼는 괭이밥이 해를 따라 고개를 돌리는 동안 괭이밥의 뿌리 주변을 천천히 덮고 있었다. 화분 받침은 이제 그 자체로 하나의 화분이 되었다. 흙과 수분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걸까?
거대하게만 느껴지던 생태계라는 말은 이끼와 함께 내 일상으로 들어왔다. 나의 시야도 이끼를 따라 조금씩, 주변의 다양하고, 작고 깊은 생태계들로 넓어지기 시작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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