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한창 쨍쨍하던 지난여름의 어느 날, 밖에 내놓은 레몬 나무의 이파리가 군데군데 파여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았더니, 이파리 위에 거뭇거뭇한 작은 애벌레 몇 마리가 있었다. 햇빛을 받아 유독 반질반질한 초록색의 빳빳한 잎을 애벌레들이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만화에나 나올 법한 작고 동그란 구멍들이 잎에 가득했다.
집에 들어와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아빠는 ‘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얼마 전에 나비 한 마리가 레몬 나무에서 계속 맴돌고 있었다는 것. 그 장면을 함께 본 엄마는 꽃도 피지 않아서 잎과 가시뿐인 레몬 나무에 대체 나비가 왜 그렇게 오래 머무르는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왠지 나비를 방해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두 사람은 나비가 자리를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집으로 들어왔다고.
애벌레들은 아마 그 나비의 새끼들인 듯했다. 그날부터 나는 외출할 때와 귀가할 때마다 레몬 나무를 살폈다. 가지가 앙상해지는 만큼 애벌레들은 통통해졌다. 레몬 나무는 가지를 많이 쳐줘도 튼튼하게 살아있는 것을 보았기에, 어차피 열매도 못 맺고 있는 나무가 애벌레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도 나름 좋은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은 그 애벌레들이 계속 레몬 이파리를 먹게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애벌레들을 지켜봤다. 거뭇거뭇하고 주름이 많던, 손톱만 한 애벌레들은 통통해지면서 점점 초록색으로 변했다. 색과 크기만 변한 게 아니다. 동그란 무늬, 평면적인 눈은 정말이지 만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비주얼이었다. 애벌레는 솔직히 너무 귀여웠고, 앙상해진 레몬 나무는 어느새 뒷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세 마리 정도였던 애벌레 중 제일 큰 녀석이 사라졌다.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우리는 걔도 이제 클 만큼 컸으니 고치를 만들러 갔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제 둘째로 컸던 녀석을 지켜보며 뿌듯해했다. 하지만 그 즐거움도 잠시, 그 녀석도 사라졌다. 그보다 작은 녀석도, 결국 막내까지. 그렇게 레몬 이파리를 갉아 먹던 애벌레들은 며칠 사이에 모두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사라진 녀석은 다른 애들보다 아직 작았는데, 다른 벌레가 와서 잡아먹기라도 한 걸까? 며칠 전에 우리 집 베란다 방충망에 붙어서 비를 피하던 사마귀가 해코지했나? 아니면 우리 방울토마토 화분에 흙을 채워주는 이웃이 우리를 위해 레몬 나무의 애벌레들을 치운 걸까?
하지만 동네 벌레들을 수소문하거나 그때 그 사마귀에게 연락할 수도 없고, 우리 집 화분들을 신경 써 주는 이웃이 누군지도 모른다. 그래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셋 다 각자의 때가 되어 고치를 지으러 갔으리라. 레몬을 먹고 남은 씨앗에 싹을 틔워 키운 지 1년 반이 조금 넘은 지금, 우리는 난데없이 그 레몬 이파리를 먹고 자란 애벌레들이 안전하게 내년 봄에 나비가 되어 날아오길 기다리고 있다.
나의 부모님을 멈춰 세운 이름 모를 나비의 분주한 날갯짓, 이 이파리는 당연히 자신의 몫이라는 듯 당당하게 갉아 먹던 통통한 애벌레들은 사람 또한 자연에 연결된 하나의 점들에 불과하다는 걸 알려준 것 같다. 사실, 레몬 나무는 애초에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었다. 그저 곁에서 함께 존재하는 삶일 뿐. 그렇게 생각한다면, ‘반려인간’이란 애초에 동어반복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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