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 5년 차 직장인,
위기를 맞이하다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한 회고록

by 달영


29살, 나이에 예민한 한국인인 나는 여태껏 느껴오던 인생의 권태기의 정점을 찍는다.


내 의견을 표현하는 것보단 상대방의 의견을 들어주는 게 편했고,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항상 더 나은 대안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1, 내 의견보다는 가족의 의견에 휩쓸려 유학길에 오른 난 국적 소수자로 항상 외로운 날들을 보냈다.

고3, 희망하는 대학교와 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애썼지만 억지로 써냈던 2 지망 학과에 진학하게 된다.


대학교 1학년, 대학시절을 알차게 보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여 1학년을 공부만 하고 유익한 대외활동으로만 채워간다.

대학교 2학년, 내 안에 내재된 놀고 싶은 욕구가 터져 나와 방황하며 시간을 보낸다. 다만 이 시간은 내 대학시절 최고 순수했던 본연의 마음이 드러난 시간이었다.

1년 휴학을 하고 캐나다 어학연수를 떠나게 되는데 그 마저 유학 중인 동생을 케어하는 엄마가 있는 집으로 들어가 온갖 학원교육으로 꽉 채운 날들을 보낸다.

서양인들의 시야와 생각, 문화 그리고 내가 지향하는 인생의 방향을 고민했어야 하는데 어학연수가 끝난 시점, 내 손에 쥐어진 것은 통번역 자격증과 테솔자격증이었다.


대학교 3학년, 복학 후 겉도는 느낌이 들었다. 4학년은 취준에 몰입해야 한다는 생각에 3학년 동안 남은 학점이수에 열중하면서 내 생에 가장 즐겁고 의미 있었던 ngo대외활동을 겸한다. 정말 바쁘고 치열했지만 채워가는 학점과 대외활동 팀의 좋은 사람들, 활동들은 나의 가슴속에 따듯한 불씨를 가득 채운다.

대학교 4학년, 이른 귀국을 하며 1년의 취준 생활을 한다. 하반기에는 졸업논문을 병행하며 학교를 왔다 갔다 하며 무사히 졸업을 한다. 치열한 취준이었다. 100개가 넘는 곳에 원서를 내며 원서 제조기가 되었으며 막바지에는 면접의 기계가 되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희미해졌으며, 하루빨리 이 지옥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졸업 후 6개월 후, 3개의 회사에 합격하게 된다.


그중 분야를 막론하고 서울 소재, 그나마 집에 가까운 회사에 입사하게 되는데 이게 문제였을까?

25살-1년 차가 된 나. 제법 멋있다. 해외사업부에서 커리어우먼이 된 내 모습이 그려진다. 연수도 받고 교육도 받고 3개월이 지난다. 시련은 4개월이 된 달부터 찾아온다. 선배들의 대거 퇴사로 온갖 거래처들을 받게 되었다. 인수인계를 고작 3일 받고 업무에 투입된다. 업계/직무 특성상 개인 업무를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겠다. 선배들에게 뭘 물어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부딪혀가며 실수해가며 일을 익혀나간다. 또 업무를 받았다. 돌아버리겠다. 팀장이 이상한 것 같다. 나 몰라라 한다. 배울 것보다 배우지 말아야 할게 많아 보인다.

26살-2년 차가 된 나. 눈물로 번진 1년 차를 버텨냈다. 조금 일이 익숙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 해외 출장을 나가기 시작한다. 일평생 사람이랑 싸워본 적이 없는데 팀원의 안위도 커리어 발전도 심지어는 업무도 관심 없는데 책임은 전가하는 팀장에 울화통이 터지며 난생처음 싸우게 된다. 상처투성이 내가 되어간다. 일의 성취감보다는 상처가 많아진다.

27살-3년 차가 된 나. 직무가 나와 잘 맞는지 의심이 된다. 사람에게 질려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자회사에서 관련 직무 사내공모가 뜬다. 고민하다가 직무전환에 기회라 생각되고 지옥을 벗어날 기회라 생각되어 위험을 무릅쓰고 지원하게 되며 자회사로 직무전환을 하게 된다. 하반기는 새로운 직무와 회사에서 보내게 되는데 환경도 업무도 새롭고 흥미로웠다. 잘 온 것 같았다. 다만 리더가 좀 이상한 것 같다. 진취적이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진취적이고 사람을 찍어 누른다.


28살-4년 차가 된 나. 팀장이 또 이상하다. 재밌는 일만 하려고 한다. 결국 새로운 팀장이 임명되는데 업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사람은 너무 좋은데 업무 진행이 힘들다. 내 업무도 이리저리 휘둘린다. 이거 하다 저거 하다 자꾸 사용당하고 버려지는 느낌이 든다. 몰두했던 업무의 공을 다 뺏기고 내팽개쳐진 그날, 내 모든 열정과 의욕도 함께 사라졌다. 동태눈으로 오랜 기간을 연명하게 된다.

29살-5년 차가 된 나. 동태눈으로 오랜 기간 연명하다 보니 정신도 모호해져 간다. 이직은 준비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가 의욕 결여, 목적성 결여로 보여서 일 것 같다. 내가 이 업계에서 즐거움을 느낀 적이 있었는지 의심된다. 많이 지친 것 같다. 더 이상의 의욕과 열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직하려는 힘도 떨어져만 간다. 마음의 깊은 우울 웅덩이가 생긴다. 부정이 되풀이된다. 이 부정의 기운을 벗어나고만 싶다. 하지만 힘이 없다. 리더의 변경으로 또 다른 챌린지가 주어진다.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다.


동태눈으로 지내던 나날들, 진취적인 나는 걱정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쉴 새 없이 새로운 것을 탐색했으며, 흥미를 찾아 도전했다. 다만 힘에 부쳐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결국 남는 건 없었다. 너덜너덜해진 마음과 육체, 그리고 걱정뿐?


4년 반을 버텨냈고 노력한 시간도 그냥 보낸 시간도 있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내 본분은 다 하려고 노력했다. 저년차였기에 부족한 점도 있었겠지만 이해가 되지 않아도, 의미를 모르겠어도 힘에 닿는 한 최선을 다했다. 다만 오늘 내 노력을 부정당하는 일이 있었다. 힘에 부치던 때의 모습만 보고 나의 진심을 매도하는 사람에게 실망했고 사람에 몇 번을 데이고도 또다시 기대한 나는 다시 한번 무너진다.


하지만 사회는 차갑고 각자도생 하는 곳임을. 이 무한으로 굴러가는 무기력의 끈을 놓아야 할 것 같다. 희미한 미래와 막연한 두려움 속에 내 소중한 30대를 갈아 넣을 순 없다. 유미(유미의 세포들)도 33살에 오랜 꿈인 작가가 되겠다고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는데, 더 젊은 나라고 못할까?


돌아보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깊게 고민하며 나의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지 못했던 것 같다.

사회가 쥐어준 일들을 처리하며 허덕이며 살아낸 나는 내가 꿈꾸던 모습과는 사뭇 멀다.

꿈꾸던 나의 모습이 어땠는지조차 잊혀가는 요즘,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3배는 더 많은데 이렇게 하루하루 지옥에서 부정적이게 인상 쓰며 살아야 할까?

쳇바퀴 굴러가는 삶에서 의미를 찾는다면 버티겠지만, 의미 없는 쳇바퀴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현재 주어진 상황을 의지로 개선해나가며 개척할 것인지,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새롭게 리셋할 것인지 고민이 된다.


후자가 나의 향후 인생에 더 큰 의미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현실을 무시할 순 없지.

다만 걱정이 많은 성격과 그간에 학습된 어려움이 나의 자존감을 앗아간 상태라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기 힘든 것이 비통하다.

세상은 넓고 일의 종류도 많고 나는 젊고 내가 해보고 싶은 것도 많은데 망설이는 건 왜일까

이제는 결론을 지어야 할 것 같은데. 항상 고민은 무겁고 결정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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