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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킴 Feb 08. 2023

시청역 카뮈 <이방인>

익숙한 듯 낯선 바로 그곳

이번 2호선 목적지는 다니고 있는 회사가 있는 곳이다. 2호선 여행을 시작했을 때 우연찮게 내렸던 곳. 발버둥 쳐도 회사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하고 자괴감을 들게 했던 곳. 1호선과 2호선이 교차하는 곳. 어느새 미운 정이 들어버린 그곳. 시청역이다. 


이번 여행은 출근길을 이용했다. 그래서 잘 타고 있던 신도림(1호선)에서 내려 굳이 신도림(2호선)으로 갈아탔다. 수고스러움과 무모함. 어쩌면 대범함과 미친 짓이 뒤섞인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2호선 여행에 진심이었다.


지하철을 탈 때면 책을 보는 사람을 찾곤 한다. 모두가 고개 숙여 스마트폰을 응시할 때, 책을 보는 사람들은 빛이 난다. 정말이지 슬로 버프라도 걸린 듯 느리고 우아하게 보인다. 좀 더 환해 보인달까? 그들은 지켜야 할 존재다. 천연기념물이다.



오늘 출근길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과 함께다. 표지에서 카뮈는 담배를 꼬나물고 트렌치코트 깃을 세우고 있다. 모를 땐 허세 가득한 흡연가라고만 생각했다. 한참 빗나갔다. 그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다. 게다가 <이방인>의 첫 문장을 읽으면, 노벨상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순식간에 빨려 들어간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이런 첫 문장은 대체 어떻게 쓴단말인가. 문장 안에 주인공 '뫼르소'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모비딕>도 <안나 카레니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고전을 읽을 때면 첫 문장을 기대한다. 첫 문장이 별로면 김이 샌다. 내 기준 명작 탈락이다.


요즘 '전산 개발부'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리눅스'를 배우고 있다. 윈도우만 사용해 오던 내게 꽤나 매력적이다. 마우스 등의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지양하고, 키보드만으로 조작을 권한다. 티브이나 영화에서 봐오던 키보드로만 문제를 해결하는 멋진 그림을 연출할 수 있는 것이다.


출판사와 조율된 주제로 책을 쓰고 있다. 근사한 결과물이 금세 나올 것 같았는데 예상과 달랐다. 그래서 영감 따위는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기로 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앉아서 한 줄이라도 쓰고 있다. 최고의 포스트모던 작가 중 한 명인 '닐 게이먼'은 이런 말을 남겼다.


무조건 책상에 앉아라.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닐 게이먼도 무조건 책상에 앉아 글을 쓴다. 


며칠 전 친한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갑작스레 회사에서 해고를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준비기간을 한 달도 주지 않은 것이다. 평소 그렇게 친절한 사장님이라고 칭찬했던 친구의 옛말이 떠올랐다. 친절하게 웃으며 해고를 통보한 것인가? 무서웠다.


이번 금요일엔 전 직장 동료들과 저녁약속이 있다. 몇 년째 돈독하다.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연락할 줄 몰랐다. 신기한 인연이다. 그중 최근 결혼한 새신랑은 지쳤는지 일을 잠깐 쉰다고 했다. 자의든 타의든 회사를 나간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한다.


이번주 2호선 여행은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았다. 출퇴근 시간을 이용했다. 굳이 안 해도 될 환승을 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 출근시간 신도림역은 '최악의 공포영화'다. 공포 그 자체다. 매일 아침 아무렇지 않게 공포를 극복하는 사람들은 진정 히어로다. 


매일을 똑같이 산다는 건 축복이기도 불행이기도 하다. 축복과 불행을 구분하는 기준은 간단하다. 


"내가 깐 레일을 달리느냐, 남이 깐 레일을 달리느냐."


전자는 숨이 넘어가도 행복이고, 후자는 편할수록 지옥행 열차를 탄 것과 같다.


숨이 턱끝까지 올라차도 스스로 행복한 삶을 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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