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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킴 Feb 01. 2023

여기 서울 149쪽

충정로역 4번 출구에서 196m

밤낮이 뒤바뀐 나날을 보내고 있다. 수면시간은 이틀 합쳐 4시간 정도. 개발부서로 이동 후 나의 시간은 이렇게 흐르고 있다. 기존 생활을 포기하지 못해서 온 과욕의 참사다. 출근해 보니 몇 개월 동안 학원에서 배운 전산내용은 잔인하리만큼 관련이 없었다.


완전히 새롭게 배워야 했다.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사이 학원에서 같이 공부했던 문대리는 퇴사를 결심했다. 작년부터 일신상의 이유로 힘들어했다. 한동안 같이 지냈는데 아쉬웠다. 나는 그가 잘 지내길 진심으로 바란다.



오늘 2호선 여행 목적지는 충정로 역이다. 천천히 그리고 신속하게 목적지로 향했다. 방문할 곳은 '여기 서울 149쪽'이라는 서점이다. 책방이 자리 잡고 있는 중림동'149번지'와 책의 한 페이지를 가리키는 '쪽'이 합쳐져 만들어진 이름이다.


서점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특이했다. 문이 무거웠다. 닫혀있는 줄 알았다. 여차저차 응차 하고 들어갔다. 친절해 보이는 안경 낀 남직원이 나왔다. 내부는 인터넷으로 본 것보다 괜찮았다. 읽고 싶은 책들도 여럿 보였다.



서재 욕심이 있다. 지의 거인 다치바나 다카시의 '고양이 빌딩'처럼 건물을 책으로 채우려는 야심 찬 계획도 갖고 있다. 이곳은 미래 서재의 분위기로 참고할만했다.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우드톤, 차분한 향기와 꽂혀있는 센스 있는 책들까지... 솔직히 기대이상이었다.


안 사도 되는 책을 굳이 골라 들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들고 카운터로 걸어갔다. 단지 표지가 이뻐서 따스해 보여서 나도 모르게 집었다. 결제하면서 서점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정당한 입장료를 지불한 듯했다.



서점은 두 개 건물로 나누어져 있다. 사진은 비탈길을 기준으로 경사 아래쪽 건물이다. 책을 보기 편한 느낌이었다. 문은 역시나 무거웠다. 이렇게 디자인한 이유가 분명 있을 거다. 들어가니 포근한 느낌이었다. 복층이었다. 책들이 주는 묘한 행복감에 웃음이 나왔다.



책들을 살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보였다. 사고 싶은 충동을 누르고 2층으로 올라갔다. 한 면을 가득 채운 책들과 구식 타자기가 보였다. 작동했다. 두드려봤다. 타닥타닥 손가락 끝에 걸리는 느낌이 좋았다. 언젠가 사야지 다짐했다.



고개를 돌려 벽면 서재를 바라봤다. 낯설지 않았다. 책들 중 3분의 2 정도는 이미 읽은 책들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독서법을 배우러 다녔다. 책 읽기에 관심조차 없었다. 이제는 사람들이 독서법을 물어본다. 인생은 정말 알 수가 없다.


얼마 전 선언해 버렸다. “상반기에 10억을 모으겠다"는 문장을 6,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봤다. 증인이다. 브런치에 올린 글이 키워드와 맞물려 조회수가 폭발한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운영 중인 블로그에도 포스팅했다. 오해는 마셔라. 나는 떠벌림 효과를 믿지 않았다. 오히려 불신했다.


이유야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다. 실없는 사람이 되느냐. 정말로 선언을 이루느냐는 온전히 나에게 달려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건 아니다. 궁지에 몰아넣고 부단히 창의력을 끌어올리는 중이다.


신기한 건 선언과 맞물려 출간제의를 받았다. 여러 가지 내용을 조율 중이다. 준비에만 최소 몇 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빨라야 하반기에나 출간될 것 같다. 내 이름으로 책을 출간한다니 믿기지 않는다. 계속해서 뭔가 일어나고 있다.



간다 마사노리의 <비상식적 성공법칙>을 반복해서 읽고 있다. 오디오북으로도 듣고 있다. 반복할수록 이상한 책이다. 제목처럼 비상식적인 생각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계속 읽으면서 책 내용을 무의식에 갈아 넣고 있다.


요즘 나의 상황을 종합하면 "새로운 부서에서 일을 시작했고, 5개월 안에 10억을 모아야 하며, 책을 써야 한다." 수면시간은 더욱 줄어들겠지만 인생이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무채색이었던 나의 일상에 누군가 알록달록 색깔을 칠했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2호선 여행'과 맞물려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겠다는 작은 결심이 지금을 만들었다. 앞으로도 주저 없이 일을 벌일 예정이다. 새해가 시작된 지 벌써 한 달이다. 시간은 절대로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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