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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소녀 Oct 18. 2021

80% 채식주의자

먹다 쓰는 일기



  내가 고기를 먹지 않기로 한 것은 몇 편의 다큐를 보고 난 뒤부터였다. 자주 가던 동네 사거리에 있는 삼겹살집, 야식으로 자주 먹던 교촌치킨, 이제 막 맛들이기 시작했던 곱창, 점심에 오리, 닭, 돼지 번갈아 가며 나오는 반찬을 먹지 않는 것부터 시작했다. 처음엔 우유도 마시지 않았지만 라떼는 끊기 어려웠다.


 나 혼자 채식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종종 같이 먹던 음식을 안 먹으니 남자 친구가 아쉬워했고 부모님 댁에 갈 때마다 먹던 삼겹살을 먹지 않으니 아빠가 서운해했다. 같이 즐겁게 하던 것을 일방적으로 끊는 게 미안했다. 그래서 가끔은 같이 먹기로 했다. 친구들은 내가 고기를 안 먹는다는 것을 아직도 잊곤 한다. 내가 그만큼 고기를 좋아했다는 건지, 몇 달 지났으니 그만할 때 됐다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다.


  처음엔 의식적으로 먹지 말아야 할 이유를 떠올렸다. 그러다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조금씩 느껴지던 고기 냄새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치킨 양념 뒤에 숨겨진 누린내, 갈비를 뜯을 때 거부감 드는 식감, 무엇보다 먹기 위해 생명을 죽인다는, 그 몸의 살이었다는 거부감. 이젠 냄새가 싫어 고기를 먹지 않는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을 땐 뭐 저다지나 묘사가 징그럽고 심각할까 싶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느껴졌다. 추석에 부모님 댁에서 가져왔던 갈비를 버리기 아까워 데워서 먹는데 살아 있는 소를 먹는 거 같았다. 그날 냉동실에 있던 남은 갈비는 바로 버렸다. 이젠 머리보다 몸에서 먼저 거부감이 든다.


   그럼에도 나는 100% 채식주의자가 되긴 힘들  같다.  달에 한번 같이 식사하는 부모님과는 평소처럼 삼겹살에 맥주를 마실 것이 남자 친구가 가고 싶어 하면 같이 삼겹살 집으로  것이다. 채식을 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게 유연하게 기로 했다.  완벽하게 모든 육식을 끊어 낼 자신도 없다. 그저 건강과 환경을 생각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하려 노력 할 뿐이다. 그러니 나는 80% 채식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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