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다 쓰는 일기
내가 고기를 먹지 않기로 한 것은 몇 편의 다큐를 보고 난 뒤부터였다. 자주 가던 동네 사거리에 있는 삼겹살집, 야식으로 자주 먹던 교촌치킨, 이제 막 맛들이기 시작했던 곱창, 점심에 오리, 닭, 돼지 번갈아 가며 나오는 반찬을 먹지 않는 것부터 시작했다. 처음엔 우유도 마시지 않았지만 라떼는 끊기 어려웠다.
나 혼자 채식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종종 같이 먹던 음식을 안 먹으니 남자 친구가 아쉬워했고 부모님 댁에 갈 때마다 먹던 삼겹살을 먹지 않으니 아빠가 서운해했다. 같이 즐겁게 하던 것을 일방적으로 끊는 게 미안했다. 그래서 가끔은 같이 먹기로 했다. 친구들은 내가 고기를 안 먹는다는 것을 아직도 잊곤 한다. 내가 그만큼 고기를 좋아했다는 건지, 몇 달 지났으니 그만할 때 됐다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다.
처음엔 의식적으로 먹지 말아야 할 이유를 떠올렸다. 그러다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조금씩 느껴지던 고기 냄새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치킨 양념 뒤에 숨겨진 누린내, 갈비를 뜯을 때 거부감 드는 식감, 무엇보다 먹기 위해 생명을 죽인다는, 그 몸의 살이었다는 거부감. 이젠 냄새가 싫어 고기를 먹지 않는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을 땐 뭐 저다지나 묘사가 징그럽고 심각할까 싶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느껴졌다. 추석에 부모님 댁에서 가져왔던 갈비를 버리기 아까워 데워서 먹는데 살아 있는 소를 먹는 거 같았다. 그날 냉동실에 있던 남은 갈비는 바로 버렸다. 이젠 머리보다 몸에서 먼저 거부감이 든다.
그럼에도 나는 100% 채식주의자가 되긴 힘들 것 같다. 몇 달에 한번 같이 식사하는 부모님과는 평소처럼 삼겹살에 맥주를 마실 것이고 남자 친구가 가고 싶어 하면 같이 삼겹살 집으로 갈 것이다. 채식을 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게 유연하게 하기로 했다. 완벽하게 모든 육식을 끊어 낼 자신도 없다. 그저 건강과 환경을 생각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하려 노력 할 뿐이다. 그러니 나는 80% 채식주의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