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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소녀 Jul 25. 2023

유년의 맛

새콤달콤한 맛

유년의 맛


  카페를 오픈 한지도 1년이 되어 간다. 어느새 단골도 생기고 내가 단골이 된 곳도 있다. 마주 보고 있는 잔기지 떡, 언덕 위 노가리 호프, 왼쪽 옆에 있는 브라질 떡볶이, 그 옆 바르(bar)까지 내가 단골이 된 가게들이다. 종종 김밥이며 간식을 사다 주는 고객도 있고 내가 커피를 들고 찾아가는 곳도 있다. 먹을 걸 나누다 보니 그 사이에 정이 트고 마음이 가까워진 것 같다.

 하루는 앞집 잔기지 떡 사장님이 아직 맛있게 익진 않는데 맛봐요 하며 손을 내밀었다. 작은 종이컵에 빨간 산딸기가 담겨 있었다. 나는 반가움에 컵을 받아 들기 바쁘게 딸기를 집어 입에 넣었다. 새콤한 맛이 입안을 감돌고 뒤이어 희미한 단맛이 감돌았다. 해당화 씨 모양처럼 생긴 산딸기의 여린 과즙 사이 작지만 단단한 씨가 씹혔다. 어릴 적 산딸기를 먹고 싶어서 친구 뒤를 졸졸 따르던 추억도 같이 씹혔다.


  내가 살던 동네는 해변가라 해산물은 풍부했지만 산에서 나는 모든 게 귀했다. 반면 산동네에 사는 친구들은 나와 반대였다. 6월이면 산동네에 사는 친구들이 물병에 산딸기를 가득 채워 학교로 들고 왔다. 노지에서 자란 산딸기는 모양새나 크기는 볼품없었지만 그 맛만은 일품이었다. 산딸기를 들고 온 친구 옆엔 산딸기가 바닥날 때까지 친구들이 무리 지어 따라다녔다. 친구에게 몇 알, 한 줌 달라고 조르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다음날 누룽지나 사탕을 주겠다며 협상을 제안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유년시절 내내 불안한 가정환경 때문에 주눅이 들어 있었다. 친구들과 휩쓸리지 힘들어하던 때라 좀 얻어먹자는 말 같은 건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가끔 성격 좋은 친구가 내게 산딸기를 몇 알 쥐어주면 얼마나 고맙던지 모른다. 눈을 질끈 감게 하는 새콤함과 터진 침샘을 휘휘 감돌아 목으로 넘어가던 달콤함은 사 먹는 일반 딸기 맛과 비교할 수 없었다.

  수확량이 적을 때나, 천성이 깍쟁이 기질이 있는 친구는 산딸기를 자랑만 할 뿐 하나도 나눠주지 않았다. 그럴 때면 산마을에 사는 다른 친구가 치사하다며 내일 자기가 산딸기를 따와서 모두에게 나눠 줄 거라고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 그 시절 우리에게 산딸기는 재미고 권력이었다.


  산딸기가 무르익을 때쯤 앵두도 서둘러 익어갔다. 내가 다니고 있던 초등학교 뒤편에 있는 “토끼사” 울타리나무가 앵두나무였는데 아이들이 그곳을 그냥 지나 칠리 없었다. 앵두가 익어가는 것 같다 싶으면 까치발을 하고 팔을 뻗어 앵두를 따 먹었다. 분명 봄엔 하얗게 꽃이 피고 가지가 부러지게 앵두가 달렸지만 앵두가 익을 때쯤엔 빈 가지에 잎만 무성했다. 소심한 나도 앵두가 익을 때쯤이면 집으로 가는 길에 “토끼사”에 들러 앵두를 따먹곤 했다. 선생님들이나 고학년 선배들이 틈틈이 쫓아내거나 혼을 냈지만 끊을 수 없었다.

  나는 앵두나무 앞에서 주변을 살핀 뒤 고개를 갸웃하곤 잎에 가려지거나 가지에 숨겨진 앵두를 찾아내 팔을 뻗었다. 숨어 있던 앵두는 빨갛고 알이 컸다. 한 알 따서 입에 넣으면 기쁨은 풍선처럼 불어났다. 새콤달콤한 앵두 과즙이 입안에서 뭉개지면 씨를 감싸고 있는 섬유소가 미끌거리며 신맛이 짙어졌다. 그러다 누군가 나타나 소리라도 지루면 서둘러 앵두나무에서 멀어졌다.

  

   신맛에 눈을 찡그리다 그때 같이 학교를 다니던 친구들은 어떻게 지낼지 문득 궁금해진다. 다들 그 동네에서 아직도 사는지, 결혼해서 아이들은 몇이나 낳았을지 뭘 먹고 사는지, 살아가는 모습은 어떤지... 아직도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언젠가 동창 모임을 한다면 나도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입안에서 시큼하게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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