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정의가 아니다. 하지만 법의 존재는 정당하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말입니다. 우린 종종 정의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없는 법의 판결을 마주하지만 법의 부재에 찬성하진 않습니다. 두루뭉술한 정의보단 명료한 법이 더 안정적이라 믿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법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진 않습니다. 낡고 비틀린 법을 끊임없이 정의와 충돌시켜 시대에 맞는 모양으로 조형하죠. 그리고 데리다는 이런 정의와 법의 충돌을 곧 역사라고 지칭합니다.
법은 끊임없이 정의에 직면해야 생명력을 얻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정의란 개념은 법을 행사하는 주체의 상식과 양심과도 직결됩니다. 단순히 적법한가 아닌가를 넘어서 자신으로 인해 그 법이 실효성을 갖게 됐을 때, 어떤 파급력을 불러올 것인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야 법이 사회를 지탱할 수 있고, 역사의 맥이 끊기지 않을 테니까요.
며칠 전 대한민국의 밤을 소란의 늪에 빠뜨렸던 소동엔 앞서 말한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법을 다루는 양심, 정의에 대한 분별, 그리고 역사에 대한 책임감까지. 꽉 막힌 정국의 혈을 총부리로 뚫고자 했던 기개도, 실체 없는 위협을 명목으로 정당성을 부여하려 했던 기만 행위도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무엇보다도 군부의 총칼을 뿌리치며 쌓아올린 역사의 첨탑을 일거에 무너뜨린 어리석음은 어떤 말로도 형언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마 그에겐 정의와 법이 충돌하며 일궈온 역사보다 일신의 영달과 가족의 무사안일이 더 우선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백번 양보해 일국의 수장이 그런 소인배였다 하더라도, 어떻게 한때 법을 공부하고 법을 무기로 싸웠다는 사람이 칼처럼 날카로운 법 이면에 그 법을 집어넣을 칼집 같은 법이 있다는 걸 간과했을까요. 그리고 실패의 책임을 전적으로 타인에게 전가하는 건 어떤 안일한 생각에서 나온 비겁함일까요. 3시간도 채 되지 않아 종식된 한밤중 소동의 전말을 보고 있자니 숨이 턱 막히는 것만 같습니다.
우리는 8년 전 정의가 법을 움직이도록 만들었습니다. 법으로 하여금 촛불에 실어나른 정의가 타당하다는 걸 인정하게 만들었습니다. 정의를 인정한 법에 자비는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가 멈추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제 대통령에게 남은 의무는 무도하고 안일한 선택의 대가를 짊어질 의무 단 하나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