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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인칭 시점 Oct 29. 2018

신문필생(新聞必生)

신문이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

처널리즘(Churnalism)이 언론 생태계를 잠식했다. 비판적인 시각은 사치가 됐다. 무한한 경쟁심리 속에서 빠른 정보 전달만이 중요해졌다. 속도가 생명이랬던가. 정보화 시대가 내세운 이 기치는 곧 정언명령이 됐다. 정확에 대한 고민은 사라졌다. 오직 생존을 위한 자극적인 짜깁기만이 횡행할 뿐이다. 문제는 이토록 무성의한 정보가 사실과 무관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면밀한 검증이 뒷받침되지 않은 탓이다. 이런 하향평준화에는 포털사이트도 한몫을 담당했다. 기사는 인링크(Inlink) 방식으로 구조화된 채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했다. 이슈라는 명목 아래 전문성보다는 시의성이 앞섰고 무질서한 댓글들은 핵심과 무관한 갈등과 분노를 양산했다.


자연스럽게 기성 언론에 대한 불신은 높아졌다. 전통적인 신문은 디지털 매체에 밀렸고 주요 언론매체들은 경직된 시선을 고수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내 새로운 혁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기다렸다는 듯이 대안언론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인공은 뉴미디어였다. 팟캐스트나 유튜브 등을 활용한 개인방송을 통한 정보 유통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첫 주자는 진보 진영이었다. 정권이 감추는 이면을 들춰내는 파격적인 방송이 줄을 이었다. 국민들은 보고 들으며 분노했다. 이윽고 촛불 혁명이 일어났다. 겨우내 붉은 온기가 거리를 덥혔고 봄이 오자 부패한 정권은 무너졌다. 그 중심에는 대안언론이 있었다. 그렇게 변화는 신뢰를 안고 찾아왔다.


하지만 보수 진영은 이 변화를 좌시하지 않았다. 보수 성향을 지닌 5060 중장년층은 유튜브를 선택했다. 전국 스마트폰 보급률이 94%에 달하는 가운데 기본 애플리케이션으로 장착된 유튜브는 완벽한 아고라로 탈바꿈했다. 보수층을 겨냥한 정치 및 시사 방송에선 현 정권과 정책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이어졌다.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된 지난 정권을 회복시키자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이들을 운집하게 만든 이유는 하나였다. 편향적인 기성 언론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지금 유튜브 내 보수 성향 방송들은 평균 10만여 명이라는 구독자 수를 보유하고 있다. 새로운 권력층이 형성된 것이다.


뉴스가 유통되는 구조가 변하면서 미디어는 막대한 힘을 지니게 됐다. 성역도 없고 제약도 없기에 그 파급력은 실로 막대했다. 그러나 문제점이 드러났다. 이념이 개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보수와 진보를 철저하게 가르는 시선은 악의적인 마타도어를 양산했다. 중상모략에 가까운 거짓 정보들이 사실로 둔갑했고 영상 곳곳에는 상대 진영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담겼다. 사실과 거짓이 혼재된 가운데 뉴스의 중립성과 정확성이라는 본질은 퇴색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자정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대안언론은 주류로 자리매김할 명분을 잃는다. 이제 더욱 균형 잡힌 시선이 필요해졌다. 사실에 입각한 보도를 가능케 하는 시선 말이다.


균형은 시간에 비례한다. 정확한 무게중심을 찾을 때까지 노력을 기울여야 비로소 흐트러지지 않는다. 신문은 그 역할을 오랜 기간에 걸쳐 수행했다. 더군다나 한국 근현대사에서 신문은 무겁고도 중요한 존재였다. 군사정권 시절 언론 탄압에 백지광고로 맞섰으며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고 민심을 응집시키며 전국적인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당시 신문은 시대정신 그 자체였다. 세월이 흐르고 신문은 기술이라는 이름 아래 색이 바랬다. 그렇다고 혁신을 단행하지도 않았다. 자본논리에 잠식된 채 기사보다도 광고 수익에 열을 올렸고 정권 입맛에 맞는 기사 일변도로 성난 민심을 마주하기도 했다. 존재 이유보다 생존에 치중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신문은 더 이상 중심에 없다.


그렇다고 마냥 신문을 저버릴 수는 없다. 집중과 노력을 통해 가장 바람직한 저널리즘을 구현할 수 있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매일 신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데스크에선 각종 부서로부터 전달된 기사를 퇴고하고 사실 여부까지 꼼꼼히 확인한다. 이후 편집부를 통해 기사 중요도를 가늠하고 그 경중에 따라 지면 할애를 결정한다. 그리고 인쇄 작업으로 넘어가 최종 단계를 마친다. 이 과정엔 단 하루가 소요된다. 촉박한 시간 속에서 정확한 보도를 위한 노력은 치열하고도 험난하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에 격앙된 확신을 담아 전파하는 세태 속에서 신문이 빛날 수 있는 이유다. 물론 이 모든 작업이 제대로 이뤄진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잃어버린 위신을 되찾기 위해선 과감하고도 적확한 쇄신이 필요하다. 민심을 정확히 읽으며 특정 논리에 치우치지 않고 문제 속 본질을 짚어내는 것이 우선이다. 미디어 발달과 정보 접근 능력 증대로 인해 국민들의 판단력이 높아졌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더욱 정확한 취재 및 보도 태도를 견지할 수 있다. 일목요연하게 관련 정보를 엮어 전달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온라인 매체에는 널브러진 정보를 취합해야 하는 애로사항이 존재한다. 하지만 신문은 구체적인 구조를 통해 관련 정보 습득을 용이하게 한다. 그렇게 신문이 정보를 더욱 선명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걸 각인시켜야 한다.


먼 길 돌아서 갈 이유가 없다. 본질에 집중하면 된다. 시대에 발맞춰 어설픈 혁신에 공을 들일 바에 정론직필이라는 언론 최고의 본령을 다시 되새기면 된다. 하 수상한 시절이 언론계에 짙은 그림자를 불러왔다. 꼼수가 판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바른 노력과 바른 집중만이 혼탁한 정보 속에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매개는 오랜 역사가 담보하는 전통에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다. 신문에 답이 있다. 이제 땀과 고뇌로 생동하는 종이를 믿어볼 계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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