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가슴 속에 인생 영화 리스트 하나쯤은 있잖아요?
백만 명이 나의 영화를 봤다면 나는 그들이 백만 개의 영화를 보길 원한다.
- 쿠엔틴 타란티노 -
10. 폴 토마스 앤더슨 <펀치 드렁크 러브> (2003)
마이클 키튼에게 <배트맨>이 있다면 애덤 샌들러에겐 이 작품이 있다. 지루한 일상과 번뜩이는 설렘에 스며드는 그로테스크 코미디가 절절하면서도 유쾌하다. <언컷 젬스>, <허슬> 등으로 명배우의 입지를 인정받은 애덤 샌들러의 떡잎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 PTA의 천부적인 연출 감각을 구경하는 것도 큰 재미다.
9. 요르고스 란티모스 <더 랍스터> (2015)
사랑에 대한 강박을 철저하게 짓뭉개는 잔혹우화. 스산한 침묵 속에서 펼쳐지는 일렉트로닉 댄스는 광기 어린 충격을 선사한다. 우울증에 걸린 히치콕이 영화를 만든다면 이렇지 않을까. 회백색의 안개와 메마른 들판, 그리고 무표정한 침묵만으로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8. 짐 자무쉬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2013)
현대 영화사에서 가장 점잖은 뱀파이어들이 써내려가는 생존 서사. 괴랄한 듯 허술한 B급 플롯을 겹겹이 쌓인 감정의 층위로 메우는 짐 자무쉬의 능력은 이 작품에서 가장 빛을 발한다. 죽은 도시 디트로이트 하나만으로 뱀파이어들의 모든 순간은 당위성을 얻는다. 달콤한 헛소리도 무시할 수 없는 매력이다.
7. 에단 코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007)
<싸이코>와 <샤이닝>의 광기를 공기총 하나에 모두 담았다. 안톤 시거는 차분한 집착이 얼마나 지독하고 무서운지 보여준다. 메마른 황야를 누비며 거듭되는 살육이 러닝타임 내내 목을 조여온다. 로버트 알드리치의 <키스 미 데들리>, 조나단 드미의 <양들의 침묵>을 잇는 서스펜스 스릴러.
6. 크리스토퍼 놀란 <다크 나이트> (2008)
악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가장 이상적인 혼돈. 조커의 아나키즘과 투 페이스의 동전만으로 가식적인 현대 사회를 발가벗기기에 충분하다. 코믹스라는 한계는 영화 어디에서도 떠오르지 않는다. 아카데미의 높은 콧대를 꺾어버린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영화사에서 기념비적인 전환점을 마련한 수작.
5. 알레한드로 이냐리투 <버드맨> (2014)
몰락한 영웅이 쏘아올린 부활의 신호탄. 영화 속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이 품은 무료함을 비트는 격정적인 대사와 삿대질은 브로드웨의의 네온사인만큼 눈부시다. 내적 분열처럼 표현되는 주인공의 독백은 뒤뚱거리는 카메라 워크처럼 휘청대는 감정을 소설의 감정선처럼 섬세하게 다독인다. 마이클 키튼을 대체 불가의 배우로 만든 작품.
4. 라스 폰 트리에 <멜랑콜리아> (2012)
누군가 인류에게 가장 큰 절망을 선사하라면 이 작품을 보여주길. 삶의 끝자락에 선 우울한 표정과 주인공의 하얀 드레스가 자아내는 앙상블만큼 지독한 비극이 또 있을까. 세상 모든 유가 무로 돌아가는 과정은 과할 만큼 서늘하고 비정하다. 라스 폰 트리에의 담담한 시선은 격정 하나 없이 빽빽하게 응축된 두려움을 표현해냈다. 덕분에 정제된 종말이 주는 허무함도 물씬 느낄 수 있다.
3. 폴 토마스 앤더슨 <데어 윌 비 블러드> (2007)
서부극이라는 옷을 입은 한 남자의 잿빛 연대기. 석유만큼 기름진 탐욕은 영화를 채우는 어떤 대사로도 지워지지 않는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차가운 얼굴과 폴 다노의 무구한 얼굴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비정한 현대 자본의 초입부로 우리를 안내한다. 비열한 인간의 파멸을 원하는 우리에게 PTA가 날리는 조소가 대미를 장식하며 철옹성 같은 현실의 벽을 체감하게 한다.
2. 로만 폴란스키 <피아니스트> (2003)
포격 소리에 얹히는 선율만으로 전쟁이 주는 절망을 가장 적확하게 체현해낸 작품. 피아노가 아닌 머리를 감싸는 주인공의 손가락은 황폐해진 일상 그 자체다. 노래가 노래로 존재할 수 없는 시절만큼 비극적인 시대가 또 있을까. 21세기 전쟁 영화 중 가장 섬세한 모큐멘터리.
1. 폴 토마스 앤더슨 <마스터> (2012)
인간이 가장 연약해질 때 드러나는 감정의 균열. 그리고 그 균열을 시종일관 건드리는 PTA의 호기로움. 이 영화는 불완전하고 의존적인 인간에게 세상이 얼마나 혹독한지 보여주는 경고다. 유아기에 머무른 어른이 다시금 겪는 성장통은 뼈저리게 아프다. 호아킨 피닉스와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열연은 그 성장통을 선명하게, 하지만 허무하게 벼려낸다. 시대가 주는 상실감에 아파하는 현대인을 위한 가장 섬세하고도 완벽한 심리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