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경성의 아파트를 찾아서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미국인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가 한국에서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아파트’라는 주거 공간이었다. 똑같은 모습의 고층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모습, 그 주변으로는 각종 편의시설이 몰려있는 모습, 그처럼 밀도 높은 곳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이 이방인인 그의 눈에는 신기하게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아파트’라는 단어였다고. 처음에 그는 아파트를 다분히 한국스러운 주거 공간을 뜻하는 한국어로 생각했고, 원래 단어인 ‘아파트먼트(Apartment)’에서 파생된 것으로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사실 미국에서 아파트먼트는 월세를 내는 공동주택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아파트와 같은 주거 공간을 미국에서는 콘도나 콘도미니엄(condominium)으로 분류한다. 그래서 미국인들에게 아파트라고 하면 헷갈릴 수밖에 없다. 그 단어가 아파트먼트에서 파생되었다고 설명하면 어쩌면 임대아파트라 이해할지도 모른다.
1930년대 경성의 아파트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주거 공간인 아파트는 오랜 세월 여러 나라를 거치며 개념과 단어가 변해왔다. 아파트의 어원은 18세기 프랑스 귀족의 대저택에서 여러 곳으로 나뉜 독립 공간인 ‘아파르트망(appartement)’에서 왔다. 그런데 프랑스 혁명 이후 아파르트망을 쪼개 시민들에게 임대하면서 그 개념이 변했다고. 대저택이 아닌 임대를 목적으로 하는 공동주택으로.
이를 19세기경 미국에서 ‘아파트먼트(apartment)’라 명칭을 붙이고 건축적 재해석도 하며 상품화했다. ‘프랑스식 일류 공동주택’이라며. 20세기 초반 일본은 미국의 다층 공동주택 개념을 받아들이고 명칭도 ‘아파트’로 줄였다. 다만 일본에서는 고급형이 아닌 보급형 공동주택으로 자리 잡았다.
(1930년대) 도쿄를 중심으로 일본 대도시에서 아파트 건설 붐이 일었고, 그 붐은 식민지 조선에까지 영향을 미쳐 경성을 필두로 평양과 부산, 대구 등에서도 건설 붐이 일었고, 아파트 시대를 부추겼다.
193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의 흔적을 찾아서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나라의 아파트를 연구한 《경성의 아파트》의 한 대목이다. 경성 등 식민지 조선의 큰 도시에 들어선 아파트는 오늘날과 달리 주로 2층이나 3층짜리 건물이었다. 그리고 복도형 구조가 대부분이었다. 복도를 두고 한 줄로 늘어서거나 복도를 중앙에 두고 마주한 방들이 늘어선 구조였다.
초기 아파트는 주로 한 사람을 위한 최소한의 시설을 갖췄다. 한 칸짜리 다다미방에 복도에 공동화장실이 있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아파트 중에는 공동 목욕탕을 설치한 곳도 있었다.
당시 아파트 외부 모습이나 내부 구조를 보면 오늘날의 작은 기숙사 건물이나 고시원에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지금의 아파트와는 큰 차이가 있다.
1930년대 경성 전화번호부를 보면 독신자를 겨냥한 숙박 업소들이 많았다. 여관하숙, 하숙옥, 고급하숙 등 그 명칭도 다양하다. 그 틈새에 아파트가 독신자들에게 새로운 주거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광고를 보면 서울로 유학온 학생들과 독신의 샐러리맨들이 아파트의 주 타깃층이었다.
위 책에 의하면 1930년대 경성에 30여 개의 아파트가 있었다고 한다. 이 수치에서 보듯 경성의 아파트는 도시에서 주류를 이루는 주거 공간이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주거 공간을 단층이 아닌 수직으로 쌓아 올린 그 시절의 아파트는 해방 이후 우리나라 주택 건축 역사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90년 된 옛 아파트의 흔적
해방 후 전쟁을 거치며 식민지 시절에 지은 아파트는 대부분 헐리거나 다른 용도의 건축물로 바뀐다. 하지만 아직 건재하며 존재감을 발휘하는 건물도 있다.
서울 충정로의 ‘충정아파트’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철근콘크리트조 아파트로 1932년에 준공됐다. 1960년대까지는 ‘도요타아파트’로 불렸고, 1970년대에는 유림아파트로, 지금은 충정아파트로 불린다. 1960년대 한때 ‘코리아관광호텔’로 용도가 바뀌기도 했다.
이곳은 드라마의 모티브가 될 만큼 오랜 빈티지의 풍경을 보여준다. 하지만 까다롭게 꼬인 재건축 이슈 때문에 몇 달 전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 당시 찍힌 허름한 내부 모습 때문에 외부인의 출입을, 특히 카메라의 접근을 막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니 건물의 권리 관계가 복잡하고 지주와 임차인의 이해도 크게 달라 재건축은 어려워 보인다. 물론 역사적으로 가치를 지닌 곳이기에 재건축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이외에도 남산 아래 회현동이나 남산동으로 가면 식민지 시절 아파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남산의 북사면은 주거의 중심지였다. 그래서 아파트가 여러 곳 있었다. 대부분 없어졌지만 명칭과 용도를 바꾸고 아직 남아 있는 건물도 있다.
남산동1가 16번지에는 미쿠니아파트였던 건물이 있다. 아무 정보 없이 골목을 지난다면 그 동네의 흔한 공동주택으로 여길 수 있다. 현재도 공동주택인 옛 미쿠니아파트는 3층 건물이다. 외벽과 내부를 새롭게 단장한 이 건물은 얼핏 보면 건축한 지 오래지 않은 건물로 보인다.
하지만 옛 자료에 나온 외부 기둥과 출입구 기단의 모습은 현재도 그대로다. 자료에 의하면 이 건물은 1930년에 준공됐다.
회현동2가 49번지에는 아일빌딩이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취산아파트’였던 건물이다. 해방 후 공공기관과 기업이 입주했었고, 현재는 사무실 임대를 하는 건물로 운영되고 있다.
“지은 지 아주 오래됐죠. 그리고 나름 유명했던 건물입니다. 예전에는 수산청과 대한통운 본사도 있었죠.”
건물 관계자의 말이다. 자료에 의하면 이 건물은 1936년에 준공됐다. 사무실 크기는 주로 10평이고, 6.5평과 18평짜리 사무실도 있다. 이 사이즈는 옛 경성 아파트의 평균적인 방 크기라 할 수 있다. 입주자들은 주로 남대문 시장 관련한 업종과 중국 무역 관련한 업종 종사자들이라고.
위에서 첨부한 사진처럼 건물 내부는 복도가 길게 펼쳐졌고 사무실들은 한쪽으로 늘어섰다. 복도형이었던 옛 아파트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가장 일반적인 크기인 10평짜리 사무실은 다다미가 깔렸던 옛 아파트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아파트 공화국
현재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은 철근콘크리트조의 고급 집합주택에 ‘만숀(mansioin)’이라는 명칭을 쓰고, 저층의 목조로 만든 임대형 집합주택에 아파트라는 용어를 쓴다.
미국에서는 우리와 같은 아파트를 ‘콘도’나 ‘콘도미니엄’이라 부르고, 임대형 공동주택을 ‘아파트먼트’라 부른다. 관련 학계에서는 5층 이상의 집합 주거 공간을 ‘아파트’라고 하는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본다.
한편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아파트와 지금의 아파트는 전혀 다른 개념의 주거 공간이다. 다만 공동 주거를 위해 수직으로 쌓아 올린 건물이라는 개념을 물려주었다. 오래전에는 홀로 머무는 이를 위한 임시 주거 공간이라는 개념이 강했다면 지금은 재산의 정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주거 공간이 되었다.
뉴스포스트에 연재 중인 글입니다.
https://www.news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944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