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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탐험가 Oct 14. 2021

오징어 게임을 오징어 가이상으로 기억한다면

예언을 하나 하겠다. 다가오는 핼러윈에 〈오징어 게임〉에 나온 캐릭터로 분한 사람들이 전 세계의 거리를 휩쓸 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흥행 중이다. 넷플릭스가 서비스되는 많은 나라에서〈오징어 게임〉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자국에서 제작한 영상을 유독 좋아하는 인도에서조차 1위에 올랐다며 화제가 될 정도다.


이러한 인기는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에만 머물지 않는다. 글로벌 OTT 콘텐츠 순위 사이트인 ‘플릭스 패트롤’에서도〈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 TV 프로그램 부문에서 1위에 올라 있다. 심지어 달고나와 초록색 운동복처럼 〈오징어 게임〉에 나온 소품들도 전 세계 쇼핑 사이트를 장악했다.


한편 〈오징어 게임〉은 456억원의 상금이 걸린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포스터. (사진: 넷플릭스 제공)


경쟁자가 죽어야 내가 산다


영화에 ‘데스게임’이라는 장르가 있다. 외딴곳에 모인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게임을 하는 영화다. 2000년 일본에서 개봉한 〈배틀로얄〉이 대표적이다. 청소년들의 생존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중학생들을 무인도에 몰아놓고 서로 죽이는 게임을 시키는 내용이다. 잔혹하지만 흥행에는 성공했다.


이후 일본에서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비슷한 류의 영화가 계속 제작됐고 다른 나라 영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오징어 게임〉도 데스게임 장르에 속한다. 예전에는 매니아 중심으로 즐기던 하위 장르였다면 지금은 〈오징어 게임〉 덕분에 대중적 인기를 넘어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다.


50대인 기자의 지인 중에서도 〈오징어 게임〉을 감상한 이가 꽤 된다. 하지만 그들의 평가는 호불호가 갈린다. “한번 보면 끝까지 보게 만드는 흡입력이 있다”며 환호하거나, “잔인해서 리모컨을 돌릴 수밖에 없게 만든다”며 몸서리친 두 부류로 나뉜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나 ‘딱지치기’처럼 50~60대가 어린 시절에 즐겼던 놀이에 대한 추억이었다. 특히 제목이기도 한 ‘오징어 게임’은 그들의 대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오징어 게임이 우리가 어릴 때 하던 ‘오징어 가이상’을 말하는 거지?”


50대가 모인 어느 SNS에서 나온 말이다. 여기저기서 맞는다며 호응해 주었지만 반박도 있었다.


“아닌데.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오징어 달구지’라고 했는데?”


정리해 보니 서울의 한 지역에서 이 놀이를 즐겼던 이들은 ‘오징어 가이상’으로, 부산에서 즐겼던 이들은 ‘오징어 달구지’로 기억하고 있었다. 한편 대구 출신 어떤 이는 ‘오징어 땅콩’으로, 전라도 출신 다른 이는 ‘오징어 가이상’으로 불렀다고 했다. 그밖에 ‘오징어 이상’이나 ‘오징어 좋다’로 기억하는 이들도 있었다. 


‘오징어 게임’은 지역에 따라 같은 명칭을 쓰기도 했지만 같은 지역에서도 골목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기억하기도 했다. 다만 그들의 기억을 종합하면 이들이 즐긴 게임은 같은 놀이였다. 당시 우리는 몰랐지만 오징어 게임은 전국을 평정한 놀이였던 것. 


바닥에 선만 그으면 즐길 수 있었던 놀이


전자오락이나 컴퓨터게임이 없던 시절이었다. 어린이들은 TV에서 만화영화가 시작되기 전에는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집보다 바깥이 더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즐겼던 놀이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였고 ‘딱지치기’였다. 물론 공놀이나 고무줄놀이를 즐기는 어린이도 있었다.


그때 많이 하던 놀이 중에서 오징어 게임은 단순했지만 조금은 과격했다. 옷이 더러워지고 때로는 무릎까지 까져 어머니에게 혼난 기억도 많다. 그런데도 친구들과 즐기는 야외 놀이에 몰입했던 것은 승부 자체보다 친구들과 같은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안도감이 더 컸기 때문인 것 같다. 때로는 강한 편에 속해야 유리할 수 있다는 것도 배우고.




그런데 ‘오징어 게임’은 누가 만들었고 어떻게 전국에 퍼졌을까. 아마도 정확한 역사와 경로를 파악하기 어려운 질문인듯하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학술 연구를 시도하는 가설조차 세워지지 않았다. 다만 몇 가지 문헌에서 어원과 개념은 짐작할 수 있었다.  



가이생 : 일본어 ‘かいせん(合戰)’ (아이들 놀이). 편을 갈라 붙잡히지 않으려고 아래쪽에 갔다가 올라오는 놀이. 이런 놀이는 지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구교육대학교 김창규 명예교수가 민요나 규방가사 혹은 민속문화에서 채집한 단어들을 엮은 《야생문화사전》에 나온 해석이다. 단어 해석에서 묘사한 놀이의 모습이 ‘오징어 게임’과 유사하다. 다만 흔적 없이 사라지진 않고 다시 복원되는 현상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나무위키 사이트에서는 국립민속박물관 저작물을 인용하며 ‘개전(開戰)’의 일본어가 ‘카이센(かいせん)’으로 발음되기 때문에 오징어 게임의 이름이 여기서 유래한 것은 아닐까 하고 가정한다.


물론 이름으로만 보면 일본의 영향을 받은 놀이처럼 보인다. 실제 일본 관서 지방에 비슷한 놀이가 있다는 인터넷 게시물도 찾았지만 정확한 출처나 근거를 대지는 않았다.


역사학자 이치석은 《전쟁과 학교》에서 전 세계 어린이들이 즐기는 전쟁놀이의 유사성을 주장한다. 영국의 “전쟁의 지리적 전략을 이해시키는 놀이(Get rid of Huns)”와 독일의 “위치 이동을 하는 놀이(Die Fahrt durch die Dardanellen)”를 예로 들며 우리나라의 “십자가놀이, 오징어 불알 놀이, 일본 가이생도 비슷한 데서 유래한 것 같다”고 설명한다.


이치석에 따르면 전쟁놀이에서 파생된 놀이는 나라마다 있다. 선을 그어 경계를 가르고, 편을 두 개로 나누고, 상대방을 모두 제거할 때까지 진행하는 유사성을 보인다고. 오징어 게임의 원조를 찾기 어려운 이유다.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수 있겠지만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같은 뿌리를 지닌 놀이라는 것이다. 마치 창세신화나 홍수신화를 가진 문명권이 많듯이.


삶의 치열한 경쟁을 은유하지만 추억을 불러오기도 하는


오징어 게임도 그러지 않았을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천재가 창안한 게 아니었을 것이다. 땅바닥에 선을 긋고 놀다가, 세월이 흘러 사람과 사람을 거치며, 선이 도형이 되어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 잡은 건 아니었을까.


기자도 그러지 않았을까. 초등학교에 다니던 1970년대 어느 날 동네 친구들로부터 오징어 게임을 배웠을 것이다. 그 친구들도 동네 선배들이 하던 것을 따라 하게 되었을 테고, 그 선배들도 언젠가 그들의 선배들이 놀던 모습을 따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사람들은 왜 〈오징어 게임〉에 열광할까. 기득권에 속하지 않은 사람에게 세상은 오히려 지옥이라는 현실을 부각하고, 삶의 치열한 경쟁을 목숨 걸어야 하는 놀이로 치환하는 설정이 사람들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 세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한마디로 <오징어 게임>은 극한 설정이라도 사람들이 신선하게 받아들이고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열풍을 불러오는 것 같다.


나아가 50대 이상에게 <오징어 게임>은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딱지치기’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처럼 어릴 때 즐기던 놀이와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방아쇠가 되고 있다.




※ 참고 자료


김창규, 《야생문화사전》, 도서출판 박이정

이치석,《전쟁과 학교 》, 삼인


뉴스포스트(http://www.newspost.kr)에 실린 글입니다. (2021. 10. 13)

https://www.news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94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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