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일 포스티노>
(스포일러 있습니다)
작은 섬의 우체국장은 네루다(Pablo Neruda: 필립 누아레 분)의 도착으로 엄청나게 불어난 우편물량을 소화하지 못해 고민하던 중 어부의 아들인 마리오 로뽈로(Mario Ruoppolo: 마씨모 뜨로이지 분)를 고용한다. 처음에 마리오는 천재적인 로맨틱 시인 네루다와 가까이 지내면서 섬마을 여자들의 관심을 끌려고 한다. 그러나 네루다 사이에서 쌓여진 우정과 신뢰를 통해 마리오는 아름답고 무한한 시와 은유의 세계를 만나게 된다. 또한 마리오는 아름답지만 다가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베아트리체 루쏘(Beatrice Russo: 마리아 그라지아 꾸치노따 분)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놀라운 것은 마리오가 베아트리체의 마음을 송두리째 사로잡기 위하여 네루다의 도움을 찾던중 내면의 영혼이 눈뜨게 되고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이성과 감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첫 영화는 <일 포스티노>입니다. 정보를 보니 1996년에 개봉한 영화네요. 오래된 만큼 아시는 분들이 많지는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또한 작년까지는 이 영화가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으니까요.
간단히 내용을 살펴보도록 할까요?
이 영화의 중심은 파블로 네루다와 마리오입니다. 파블로 네루다는 칠레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시인입니다. 하지만 그 사랑에도 불구하고 네루다는 칠레와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탈리아로 망명하게 됩니다. 네루다가 많은 사랑을 받은 만큼, 네루다에게 오는 편지의 양도 엄청났습니다. 그래서 네루다의 편지만 전담하는 우체부를 고용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마리오입니다. 네루다의 시집을 읽은 마리오는 네루다에게 어떻게 그렇게 잘 쓸 수 있느냐고 물어보게 됩니다.
그 중 가장 먼저 들은 답변은 "은유"에 관한 것입니다. 여기서 "은유"는 마리오가 네루다에게 처음 들은 답변인 동시에 영화의 가장 중요한 소재이기도 합니다. 전 이 부분에서 시인을 꿈꾸는 사람이든, 소설가를 꿈꾸는 사람이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체부로서 네루다의 집을 오가면서 네루다에게 시를 배우며 그의 사상을 이해하고, 그와 교감하는 마리오의 모습이 멋지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네루다에게서 시를 배우면서 "은유"의 '은'자도 모르던 마리오가 첫눈에 반한 베아트리체의 미소를 나비의 날갯짓으로, 은빛 파도로 은유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을 보면서 네루다의 가르침도 큰 도움이 됐겠지만, 베아트리체를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마리오에게 "은유"란 사랑하는 베아트리체를 사로잡을 멋진 도구이며, 사랑을 전달할 효과적인 매개물이기도 했으니까요.
마리오에게 "은유"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했지만,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해주는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처음에 마리오는 네루다가 섬의 아름다움에 대해 물었을 때, "베아트리체 루소"라고만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통해 은유를 하면서, 그는 섬의 아름다움에 대해 눈을 뜨게 됩니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은 베아트리체 루소 뿐이라고 생각하던 그에게 느껴진 섬 자체가 가진 본연의 아름다움. 이것은 단순한 인식을 하며 살아가던 무미건조한 삶을 벗어났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 중 하나는 섬의 아름다운 소리를 녹음하고 다니던 마리오의 모습입니다. 처음에 그는 네루다가 친구에게 보낼 것이라며 섬의 아름다움에 대해 자랑을 해보라고 했을 때, 제대로 말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네루다가 다시 칠레로 돌아간 후, 네루다를 기다리면서 그는 섬의 아름다움을 녹음하기 시작합니다. 작은 파도, 큰 파도, 절벽의 바람소리, 나뭇가지에 부는 바람소리, 아버지의 서글픈 그물소리, 신부님이 치시는 교회의 종소리,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아들 파빌리또의 심장소리……. 결국엔 그가 네루다와 교감을 하고, 은유를 하면서 섬의 아름다움을 다시 보게 된 것이겠죠. 이 장면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이 영화는 마치 "은유"가 없으면 이어질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순간순간마다 "은유"를 하는 네루다와 마리오의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에. 시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그가 네루다에게서 "은유"를 배운 후, 마리오의 삶은 마치 "은유"로 가득 찬 것처럼 살아갑니다. 물론 베아트리체와 은유, 이것이 가장 정확하겠지만요.
처음부터 끝까지 은유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은유"가 없으면 이어질 수 없는 듯 느껴지니까요. 네루다가 마리오에게 들려주는 "은유"도 멋졌지만, 마리오가 베아트리체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들려주는 "은유"는 멋지기도 했지만 아름답기도 했습니다.
서로 다른 듯 하면서도 닮은 네루다와 마리오. 그들 사이에는 "은유"도 있었지만, "우정"도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가 더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단순히 "은유"만 가득 찬 것이 아니라, "사랑"도 존재하고 "우정"도 존재하기에.
영화 <일 포스티노>는 우리에게 은유가 무엇인지 말해주기도 하지만, 마리오의 순수한 사랑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그만큼 따뜻하고 감동적인 것이, 포근한 솜이불을 덮는 것마냥 기분이 좋습니다.
느긋함을 느끼고 싶을 때 한 번 쯤 보면 좋을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