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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입만산 Feb 28. 2023

분노하지 말고, 울어라

"이 성적에 의대 합격?"

 

 얼마 전 무려 수능 5등급의 지원자가 '지역인재저소득층 전형'을 통해 국립대 의예과에 합격했다는 사례(이하 '5등급 사례')가 온라인상에 등장했다. (알려진 바로는 국수영과 순서로 4,2,2,3,5) 이에 대한 반응은 당연하게도 매우 뜨거웠다. 수시도 아니고 그나마 공정하다고 알려진 정시를 통해 합격한 학생의 성적이 상대적으로 매우 낮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역차별'을 말하며 분노했다.



 '공정'은 언제든 타오를 수 있는 기름 같은 이슈이다. 특히 2030들에게는 자신들의 상황과 밀접한 만큼 더 뜨거운 문제이다. 몇 차례 불공정한 과정을 목격한 그들로서는 이에 분노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지 모른다. 그 때문인지 그들 사이에서는 온전한 능력주의 사회를 통해 정의를 바로 세우자는 의견들이 옹호를 얻고 있다. 어떤 특혜도 없이 철저하게 능력에 비례해서 결과를 분배하자는 주장이다. (혹은 능력에 맞는 역할을 부여하자는 의견)


옳은 말씀이다.

  

 



'정의롭다'는 것은 어떤 경우와 유사한 것에 대해 일관되게 처우하는 것, 즉 규칙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날의 가장 대중적인 규칙은 바로 더 좋은 성과를 낸 자가 더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가령 각종 시험에서의 높은 성적으로 대학이나 직업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권을 부여받는 것이 그러하다. 이는 앞서 '5등급 사례'에 분노하는 자들의 입장과 동일하다.     


 이 규칙을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공과(성적)에 따라 분배(대학, 직업)가 적용되어야 한다'라고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더 많은 기여를 해낸 사람에게 더 좋은 결과를 주는 것이기에 매우 상식적이며, 기능적으로도 우수해 보인다. 그런데 이 규칙을 우리가 납득할 수 있는 근본에는 각자에게 모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졌다는 사실에 대한 동의가 필요하다. 정말로 그러한가?




 1. 필자가 찾은 바에 의하면, 위 사건의 문제가 되는 A대학의 '지역인재저소득층 전형'에서는 크게 '기초수급자', '차상위계층', '한부모가정지원자'에 대해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앞의 두 기준은 언뜻 보아도 그 어려움이 커 보였기에 적어도 경제적 배경에 대해서는 그나마 완만해 보이는 '한부모가정지원자'의 기준을 한 번 알아보았다.   


 그 명칭에서도 드러나듯 한부모가정지원자는 사별 또는 이혼을 통해 홀로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에 대해 지원하고 있는 제도이다. 구체적으로는 중위소득(대한민국의 모든 가구를 소득에 따라 순위를 매겼을 때 가장 중간에 위치한 가구의 소득)의 60퍼센트 이하인 한부모가정에 대해 그 자격을 부여하고 있는데, 이는 올해 23년도 기준 2인가구 월소득 인정액으로는 207만 원, 3인가구 기준으로는 265만 원 남짓이다. 한부모가정에 자녀가 1명 혹은 2명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대부분은 위의 기준에 해당할 것이다.


 이 기준을 갖고 A대학에서는 의예과 정시 모집 인원 48명 중 3명을 모집했다고 한다. 이는 전체 모집인원의 6% 정도인데 이 속에 앞서 언급한 '5등급 사례'의 학생이 있었던 것이다. 입시에 무지한 필자가 알기에도 A대학의 의예과는 서울대학교의 여타 학과의 입학 성적보다도 높다. 해당 학생의 성적이 다른 입학생에 비해 매우 부족한 것은 틀림없다. 이에 대해 우리는 정의의 규칙이 위반되었음을 비판할 수도 있겠으나 다르게 생각하면 이러한 성적의 차이가 가능했던 이유는 오히려 경제적 수준에 따라 높은 성적을 얻을 기회가 매우 다르게 주어짐을 보여주는 증거일 것이다.




 2. 한국장학재단에 따르면 2020년 의대입학생 중 가구 소득 8 분위 이하의 학생이 19.4% 뿐이라고 한다. 다르게 말하면 대한민국의 소득을 10구간으로 나눌 때 최상위 두 구간에 해당하는 학생으로만 의대학생의 대부분이 채워져 있다는 것인데, 이는 2022년 4인가구 기준 월 소득인정액 1000만 원 이상을 말한다. 참고로 가장 높은 10 분위는 1620만 원 이상(22년도 기준)으로 전체 입학생 중 43%를 차지했다고 한다. 이는 중위소득의 30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기회는 정말 동등했는가?

 

 정말 기회가 동등했다면 특정 소득구간에 입학생의 비율이 편중되지 않았을 것임은 물론 '5등급의 학생'은 저소득층 전형에서 같은 소득 수준의 더 좋은 성적을 가진 학생들에 밀려 입학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앞서 언급한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규칙에 의문을 제기한다. 정말 공과에 따라 결과가 분배되는 것만이 최고의 규칙일까? 그것이 분명히 불평등한 기회에 의한 것이라면 때로는 그 규칙을 뒤집어버리는 것이 보다 정의롭지 않은가? 필자가 느끼기에 공과에 비례해서 결과를 분배하자는 정의의 규칙에 우선하는 선행의 원칙이 분명 존재한다. 그러니 필자는 규칙 위반에 분노하기 이전에 불평등에 울고 싶다.





*본 글은 필자가 실천교육교사모임을 통해 2023.02.13. 에 포스팅한 글입니다.


*생명을 다루는 직업에 요구되는 능력이 있다는의견에 대해 위 링크 속 댓글을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참고 자료>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2204146143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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