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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입만산 Feb 27. 2023

피고 '핼러윈'에 대한 대한 변호

너무 쉬운 결론은 결론이 아니다

 일요일 저녁, 학교 알리미를 통해 안내장이 하나 나갔다. 심플한 제목을 가진 해당 안내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핼러윈, OO데이 등 교육 지도>

"교육적인 차원에서 우리 고유의 행사가 아닌 다른 나라의 축제 행사나 상술로 만든 행사에 학생들이 참여하지 않도록 관심 바랍니다. 특히 괴이한 복장으로 등교하거나... 비교육적 복장으로 등교하여 어린 학생들이 공포를 느끼지 않도록 해주시고...(이하생략) 11월 11일 농업인의 날을 맞아 과자보다는 몸에 좋은 농산물을 먹으며 기념하길 바랍니다."

보는 순간 말문이 탁 막혔다. 때마침 SNS에는 '노핼러윈 운동'이라며 어처구니없는 포스터도 한 장 돌아다닌다.


              혼란하다. 혼란해...

 우려스럽게도 이는 비단 필자의 학교에서만 벌어지는 흐름이 아니다. 최근 교사 커뮤니티에서도 지금껏 '옆 교실'에서 이루어져 온 핼러윈 파티에 대한 성토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한 글에는 핼러윈이 1)우리 전통과는 관련 없는 '서구의 풍습'이라는 점, 2)기업들에 의한 '상업적인 문화'라는 점, 3)어떤 교훈도 담고 있지 않은 '단순 놀이 문화'라은 점 등을 들며 핼러윈이 학교 현장에서 제시되기에 부적합하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이 모든 근거는 '비교육적'이라는 단어로 함축되고 있다.


 필자는 그런 생각도 충분히 일리 있음에 수긍한다. 적어도 앞선 세 가지 근거들은 핼러윈이 갖는 어떤 모습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비교육적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 그것이 교육이 아닐(非) 수도 있겠다. 교육을 정의할 능력이 안 되는 필자의 사견은 빼놓고 단어의 의미만 알아보고자 한다. 사전(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서는 '비교육적'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사회생활'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 및 바람직한 인성과 체력을 갖도록 가르치지 않는 것


 만일 해당 비판들이 '전통적이지 않고, 상업적이며, 놀이 문화인 핼러윈'이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견해라면, 필자는 그것이 적어도 비교육적일 수 있음을 이해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모순으로 남아있는 한 부분이 있다. 바로 교육이 '학생의 삶을 행복을 위한 것'이라는 당위적 사실이다. 교육에 대해 각기 다른 철학을 가진 여러분도 이 명제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렇다면 우리 삶이 '사회생활'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만큼 삶을 즐기는 다양한 방법을 교실에서 습득하는 것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는 '비교육적'일 수는 있어도 절대 '반(反) 교육적'이지는 않다.




 우린 간혹 문제가 발생한 모든 것을 불태울 때가 있다. 재난 대처가 미흡할 때 관련 정부기관을 없애거나, 전염병이 퍼졌을 때 성소수자에게 그 죄를 묻기도 했던 과거가 그러하다. 아무래도 원인을 찾아 고치기보다 '죄인'을 찾는 것이 더 쉽게 때문일 것이다. 이는 문제의 결론을 더 쉽고 빠르게 내리기 위해 본질을 왜곡하는 무의식적 행위로 보인다. 그러나 핼러윈이 그 책임을 감당하기에 이 참사는 너무나 무겁고, 애통하다.


 마음속 이 감정에 충실히 애도하자. 단, 쉽게 결론 내리지는 않겠다. 너무 쉬운 결론은 종종 결론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본 글은 필자가 실천교육교사모임 홈페이지를 통해 2022.11.14. 에 포스팅한 글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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