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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니마을 Sep 16. 2021

통시의 추억

점심 후, 갑자기 아랫배가 기분이 나쁠 만큼 신호가 왔다. 냄새를 잘 맡지 못하는 나는 향신료가 많이 들어간 인도 음식을 이것저것 가져다가 먹었다. 먹는 것을 보던 인도 교수는 신기한 듯이 쳐다봤다. 이방인에게는 먹기 힘든 음식을 잘도 먹어치운 것이다. 그 탓일까? 여행을 하면서 음식 때문에 고생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앞 뒤 생각 없이 섭취한  탓이다.


동행한 일행에게 양해를 구하고 밖에 있는 화장실로 갔다. 그런데 들어가 보니 휴지가 없다. 사무실 직원에게 휴지가 없냐고 물어보니 상당히 당황하면서 대답을 못한다. 부산 떠는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같이 식사를 했던 교수는 연구실 안에 있는 화장실을 사용하라고 친절하게 권한다. 사실 연구실에 있는 화장실을 사용하려다, 지도하고 있는 여학생 둘과 열심히 일을 하고 있던 터라 다른 화장실을 찾았던 것이다.

 

상황이 조금 급하게 되어서 염치 불고하고 연구실 안쪽 화장실을 사용하기로 했다. 문을 열고 먼저 화장지를 찾았다. 아, 역시 없다. 문을 급하게 열고 나와 그 교수에게 화장지 없냐고 물으니 천연덕스럽게 없다면서 자기들은 손으로 해결한단다. 아, 그렇구나 그래서 그들은 식사를 할 때, 왼손을 쓰지 않았구나. 그의 대답이 화장실에 화장지가 없는 이유와 휴지를 찾는 내가 그들을 당황케 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나라와는 반대로 그들은 왼손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구나. 우리 조상들을 왼쪽을 귀히 여겨서 밥 먹거나 일을 하는 것은 오른손이 하도록 했다. 벼슬도 우의정보다 좌의정이 높지 않았던가. 물론 요즘은 사정이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아무튼 낭패다. 급하니 체면이고 뭐고 알았다 하고 문을 닫고 급하게 일을 보기로 했다. 천둥급은 아니지만 요란스럽게 급한 것을 해결되고 나니 그때부터 슬슬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앉고 보니 어린 시절 시골에 있는 대부분의 집에 있었던 그 당시 '통시'라고 불렀던 변소가 생각났다. 물론 그것보다는 훨씬 좋은 시설이지만 21세기에 아무리 시골이라도 명색이 대학교 화장실 시설이 이러하다니! 정신이 들어 내가 앉아있는 꼴을 보니, 화장실에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좌변기와 거의 같은데 뚜껑이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엉덩이만 걸치게 되게 되어 있었다. 그 외에 수도꼭지가 앞에 있고 볼일을 보고 손을 씻을 수 있는 높이가 20센티미터 정도 되는 통에 수돗물이 담겨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 희망을 찾아보기로 했다. 윗옷을 입고 왔으면 수첩이 있어서 임시변통을 할 텐데, 그것도 지금 문 밖에 있었다. 엉덩이를 들어내고 문만 빼꼼히 내밀면서 옷을 달라고 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열심히 바지 주머니를 뒤지니 자그마한 뭉치가 하나 만져졌다. 간절한 마음으로 꺼내보니 영수증이었다. 얼마 전에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준다고 큰아이와 함께 샀던 기억이 났다. 아버지 노릇한 것이 그렇게 훌륭한 결과로 돌아오다니. 감격이었다.


아주 오래전, 기억도 가물거리는 어린 시절. 변소에 걸려있던 온 갖가지 억센 종이들. 그것을 열심히 비비면 부드러운 종이로 변했다. 그런데 이 영수증은 그때 종이와 비교하면 너무 좋았다. 게다가 코팅까지 되어 있었다. 그러니 비벼도 잘 부드러워지지도 않을뿐더러 조금 세게 문지르면 얇은 종이가 구멍이 날 정도다. 참 열과 성을 다해 조심스럽게 화장실용 휴지를 만들었다.


겨우 일을 마치고 물을 내리려고 버튼을 누르니 아뿔싸! 이건 또 무슨 낭패인가... 물이 나오지 않았다. 앞에 있는 물을 들어 해결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물을 부었으나 무심히 물만 빠져나갔다. 이제는 옷이라도 입었으니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나서니 여학생들이 민망한지 얼굴을 딴 데로 돌리고 있었다. 물이 좀 더 필요하다고 했더니 온 사무실이 난리가 났다. 직원을 불러 물을 가지고 오게 하고는 그냥 와서 앉으라고 했다. 참 고약한 인사일세. 개나 고양이도 자기 똥은 자기가 처리하는데 어찌 사람이 자기 똥을 다른 사람보고 치우라고 하겠는가? 허드렛일을 하는 나이가 제법 들어 보이는 직원이 한참 뒤에야 큰 통에 물을 찰랑찰랑 채워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가져왔다. 화장실 물이 또 그렇게 귀하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어린 시절 비라도 와서 변소에 물이 들어와 채워지면 변소 가는 것이 걱정이었다. 덩어리가 떨어지면서 똥물이 튀어 오르기 때문인데, 이를 피하는 것이 무슨 게임 같았다. 갑자기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 날이었다. 간절함으로, 추억으로, 몇십 년 된 영화를 한편 찍는 날이었다. 더운 날에 더 더운 일로 이미 땀으로 샤워를 하고도 남았다. 


2014년 8월, 인도 남부의 자그마한 도시 군터에서.


<2014. 8. 23>

지금은 갈갈이 풀어져 나가 인도의 일부가 되어 버린 한국산 영수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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