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나는 디자인 연구를 강화하기 위해서 우리가 인지공학(cognitive engineering)에서 다루는 문제 해결 관점을 차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글에서는 그 주제를 확장하여, 디자인 프로세스에 적용하는 방법에 대해 탐구해보고자 한다.
우선, 문제 해결(problem solving)의 대상인 '문제(problem)'에 대해 정리한 뒤, 문제 해결을 인지공학의 관점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문제(problem)란 무엇인가?
Anderson (1990)은 문제를 '무엇인가를 바라지만 아직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규정했다.
하지만 이 설명으로는 디자인 실무자와 연구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니즈(needs)'와 문제를 혼동할 수 있어 추가적으로 설명하자면, 니즈는 인간이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요구사항이나 욕구이며, 이 자체로는 어떠한 부정적 결과를 도출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인간의 수면 욕구는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욕구일 뿐, 그 자체로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problem)'는 그 욕구를 충족하거나 원하는 상태에 도달하는 데 장애물이 있을 때 발생하는 것으로, 필히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촉발한다. 따라서, 문제가 발생했다면 필히 이를 해결하기 위한 문제 해결의 논의가 뒤따르게 된다.
문제 해결(problem solving)이란 무엇인가?
인지공학에서는 '문제 해결'이란 시초상태(initial state)에서 목표상태(goal state)로 천이시키는 행위를 이야기하며,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해답(solution)이란, 주어진 문제를 가지고 시초상태로부터 목표상태로 변화시키는 일련의순서를 가리킨다.
일반적인 문제 해결 방법으로는 연산법이 있다. 우리가 앞선 글에서 다룬 예시들과 개념은 주로 연산법에 대한 내용이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디자인 연구는 이와 같이 수학 문제의 해를 구하듯 연산 절차를 통해 정확한 답을 도출하는 영역에 해당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연산법은 문제 해결이 보장되는 절차인데, 어떠한 문제들의 경우에는 디자인이라는 수단을 통해 해결하지 못하는 것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발견법은 항상 최선의 답을 보장하지는 못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무난한 답을 제공한다. 어떻게 보면 디자인이 추구하는 해답(solution)은 발견법의 결과물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디자인 결과물이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상정한 결과물이 아니듯, 발견법 역시 우리가 항상 최선의 해답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디자인 연구 성과뿐만 아니라, 디자인 실무에서 도출하는 결과물(solution)도 해당하는 내용이라고 판단하였기에, 이 글의 제목에서 적용 범위를 디자인 프로세스로 확장한 것이다.
디자인 연구나 실무를 해 본 사람이라면, 디자인을 통해 도모하는 해결은 주로 연산법보다는 발견법에 가까움에 동의할 것이다. 우리가 만드는 디자인 결과물은 사람들이 겪는 문제를 '말끔히 소거(해결)'하기보다는 시초상태를 더 나은 상태(목표상태)로 변화시킴으로써 두 상태 사이의 차이를 감소시키는 쪽에 더 가깝다.
하지만 단순히 '차이를 줄인다'는 데 초점을 두면 쉽게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문제의 경우에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일순간 차이를 만들거나 기존의 차이를 증가시키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수반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러한 차이를 고의적으로 증가시키는 과정을 거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법이 '수단-목표 분석법'이다. 이는 사물을 그 기능에 따라 분류하고 목표, 요구되는 기능, 그리고 그들을 수행하는 데 요구되는 수단 간을 오가는 것이다. 이 방법은 Newell과 Simon이 1972년에 General Problem Solver (GPS)라고 칭하는 문제 해결 모형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에 적용한 것이다.
차이감소법이 시초상태와 목표상태를 줄이는 것에만 집중하여 그 과정에서 여러 조작자의 우선순위 및 영향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수단-목표 분석법은 큰 목표를 여러 개의 하위 목표들로 나눠 어떤 조작자가 즉각적으로 적용될 수 없어도 그것을 소거하지 않고, 더 낮은 우선순위로 유보한 뒤, 더 높은 우선순위의 조작자를 통해 후순위 조작자 적용을 봉쇄하고 있는 차이를 없애는 과정을 포함한다. 즉, 수단-목표 분석법에서는 시초상태에서 목표상태로 가기 위해 선결되어야 할 하위 목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UNIST 디자인학과의 '서비스 디자인 기초' 강의에서 '수단-목표 분석법'을 활용해 본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분석법이 생소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도출하는 데 특히 유용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해당 강의를 수강한 한 학기 동안 내가 개인 프로젝트로 선택한 주제는 '스타트업에서 근무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운동 동기부여 및 운동 습관 유지 보조'였다. 이 주제를 다루기 위해 나는 통계 자료 및 문헌을 바탕으로 스타트업에서 근무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운동과 건강에 대한 니즈, 그리고 이 니즈가 충족되지 못하게 방해하는 문제를 규명했다. 문제를 규명한 후에는 각 문제의 전제가 되는 하위 문제(sub-problem)를 규명하고 각각의 상관관계를 정리했다. 이 과정을 수차례 반복한 결과, 스타트업에서 근무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운동을 통해 건강을 유지 혹은 증진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문제들을 찾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루어야 할 하위 문제(요인)들의 우선순위를 정리할 수 있었다.
이렇듯, 발견법에 중점을 둔 디자인 해결책이 '모든 문제 상태의 해결'을 목표로 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목표-수단 분석법'이 문제를 구조화하여 해결책을 위한 핵심 요인을 도출하는 데 적합한 사고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디자인 연구와 실무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문제 해결의 관점과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며, 각 개인에게 잘 맞는 방식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과 방법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은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디자인은 단순한 외관적인 요소를 넘어서, 사용자의 니즈와 문제점을 깊게 파악하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과학'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지공학과 같은 분야의 접근법과 기법을 활용하여 문제 해결의 깊이와 폭을 확장시키는 것은 디자인 연구자 및 실무자에게 중요한 역량이 될 것이다. 특히, 과학 및 공학 기술과 디자인의 융합을 목표하는 경우에는 더욱 필수불가결한 역량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