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성당 방문기] 01
이번 시리즈에서는 세계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들러 보았던 천주교 성당들과 정교회 성당들에 대해 다룹니다. 마음이 내키면 성공회 성당 얘기를 할지도 모릅니다만, 일단 주제는 천주교와 정교회 성당입니다. 세계 곳곳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하였지만, 한국 또한 세계의 일부분이므로 가끔씩 한국의 성당들에 대한 이야기도 할 것입니다. 신앙의 관점보다는 성당 건물 자체의 특성과 그 안의 분위기, 그리고 성당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주로 적고자 합니다.
- 등급 : 공소(집회소)
- 소재지 : 일본 오이타현 유후시 유후인초카와카미 451-12 (大分県由布市湯布院町川上451-12)
- 관할 : 천주교 오이타교구
- 찾아가는 길 : JR큐슈 유후인역(또는 유후인버스터미널)에서 자동차로 5분
유후인은 한국인에게 제법 익숙한 온천 관광지입니다. 보통 후쿠오카 여행을 갈 때 묶어서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유후인이 마치 후쿠오카에 속해 있는 것처럼 쓰여 있는 관광 리뷰도 많습니다만, 아무리 빠른 특급열차를 타고 가더라도 후쿠오카의 중심지 하카타역에서 유후인의 중심지 유후인역까지 가려면 적어도 한 시간 반 이상이 걸립니다. 소속 지자체도 다릅니다. 후쿠오카는 후쿠오카현(福岡県)이라는 광역자치단체에 속해 있고, 유후인이 소재한 유후 시(由布市)는 오이타현(大分県)이라는 광역자치단체에 속해 있습니다. 한국 사람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자면, 후쿠오카가 부산광역시라고 했을 때 유후인은 경상남도 어딘가에 있는 시골 온천마을이나 진배없는 것입니다.
천주교 차원에서 봐도, 유후인은 후쿠오카와는 관할지가 다릅니다. 천주교는 마치 우리나라로 치자면 도나 특별시, 광역시처럼 전 세계를 적절한 크기의 지역구로 나누어 관리합니다. 이를테면 서울특별시는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경기도 남부는 천주교 수원교구가 관할하는 식입니다. 천주교 신자 비율이 바닥을 박박 기는 일본에도 각 지역별로 교구가 설정되어 있습니다. 큐슈에는 총 세 개의 교구(후쿠오카/오이타/카고시마)와 한 개의 대교구(나가사키)가 있는데, 후쿠오카는 후쿠오카 교구 관할, 유후인은 오이타 교구 관할입니다.
한국인에게 널리 알려진 관광지인 만큼 유후인에 있는 성당에도 한국인이 제법 왔다갈 법하고 리뷰도 여럿 발견할 만도 한데, 의외로 리뷰를 발견하기 쉽지 않습니다. 놀러 와서까지 미사를 보러 갈 생각은 안 드는 것인지, 아니면 메인 스트리트에서 제법 떨어진 산 속에 말 그대로 '숨어 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실제로 필자가 찾아갈 때에도, 택시 기사님에게 '가톨릭 유후 교회로 가 달라'고 말씀드렸더니 알아듣지 못했을 정도니까요. 원래는 긴린코 근방에 공소가 있었는데, 2016년 지진을 계기로 보다 산 속에 있던 여자수도회 건물로 옮겼다고 합니다. 참고로 유후인 중심지 근방에 '일본크리스트교단 유후인교회'라는 이름의 교회가 있는데, 이것은 개신교 교회이므로 헷갈리지 않도록 합시다.
미사는 일요일 오전 10시에 있습니다. 구글 리뷰에 보면 평소에는 잠가 둔다고 하는데, 상주하는 사람이 없는 공소이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매주 일요일에 오이타에서 기차를 타고 오시는 신부님이 미사를 집전합니다. 울타리에 붙어 있는 '가톨릭 유후 교회(カトリック由布教会)'라는 팻말과 공소 지붕 아랫벽에 붙어 있는 은빛 십자가만 아니면 그냥 평범한 동네 가옥이라고 해도 믿을 법하게 생겼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본래 수도회 수녀님들이 사용하시던 살림집을 공소로 고쳤을 뿐인 건물이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관광객의 신분으로는 알기 쉽지 않은, 큐슈 지방의 평범한 단독주택 살림집의 구조를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평범한 가정집 현관으로 이어집니다. 어둑어둑한 복도에서 신발을 벗고 있으면, 안에서 신자인 듯 보이는 분들이 나와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어봅니다. 서너 분의 할머니와 한두 분의 할아버지, 그리고 아주머니가 한 분입니다. 노령화 문제가 심각한 일본 천주교회의 특성상, 못 보던 젊은 사람이 성당에 들어선다면 새삼스러워하는 반응을 마주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미사 참례를 하러 왔습니다"고 이야기하니 모두들 반가워합니다. 한 분 섞여 있던 아주머니가 성가책과 주보가 놓여 있는 선반을 보여 주고, 경당으로 안내해 주십니다. 이 경당이란 것이 또 한국 사람에게는 특이한 경험입니다. 한국에서 신자 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천주교도라면 아마 이곳에서 보는 경당이야말로 일생 본 것 중 가장 작은 경당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관으로 들어와 어둡고 짧은 복도의 오른쪽을 보면 바로 경당입니다. 가정집의 거실을 개조해 만든 티가 팍팍 납니다. 일체형 책걸상이 한 줄에 다섯 개씩 두 줄, 총 10석 놓여 있습니다. 벌써 의자에 앉아 눈살을 찌푸리고 열심히 주보를 읽고 있는 영감님도 있습니다. 일본 가정집 거실이라면 보통 존재하는 장식용 공간인 도코노마(床の間)에는 십자고상이 벽에, 성모상이 마루에 놓여 있습니다. 도코노마가 원래 불가에서 불상을 두던 습관에서 비롯된 공간임을 생각하면 이루 말하기 어려운 묘한 기분이 듭니다. 신자들이 하나둘씩 자리에 들어와 앉고, 마침내 키가 180은 족히 넘어 보이는 덩치 큰 신부님이 들어오면 이 공간은 완전히 꽉 차게 됩니다.
미사가 끝나니 신부님이 우리를 불러 이런저런 이야기를 물어봅니다.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알고 왔는지 등등의 이야기입니다. 다른 신자분들도 삼삼오오 모여듭니다. 외국에서 놀러 온 젊은 사람들이 기특하게도(?) 이렇게 촌구석에 있는 성당에 시간 맞춰 미사를 드리러 왔다는 것이 퍽 신기한 모양입니다. 한국에는 천주교 신자가 많아 부럽다는 얘기, 한국에 놀러갔을 때 명동성당에 가 본 적이 있다는 얘기 등, 우리가 묻지 않았는데도 신자 분들이 되레 신이 나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습니다. 할머니 신자 한 분은 아내(당시에는 여자친구)가 읊던 사도신경이 무척 이채롭게 들렸는지 "그게 혹시 라틴어 사도신경이우?"라고 묻기도 하셨습니다. 한국어라고 하니까 무척 신기해 하시더군요.
외국에서 온 젊은이들이 퍽 반가웠는지, 아니면 이게 시골의 정인지는 모르겠으나, 신부님과 신자 분들 모두가 우리에게 "시간 괜찮으면 아침 식사라도 하고 가라"고 붙잡으셨습니다. 안에서 미소시루 끓이는 구수한 냄새도 새어 나오고, 마침 아침을 굶고 나오기도 해서 무척 솔깃한 제안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같이 여행을 갔던 다른 친구들과 시내에서 만날 예정이었기 때문에, 정중히 거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택시를 부르고 잠시 기다리는 동안에도 할머니 신자분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가장 연세가 많아 보이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한 할머님과의 대화가 그 중에서도 얼마나 웃겼는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젊은 사람들인디 어떻게 이렇게 구석테기까지 미사를 드리러 왔디야. 우리는 인자 신자도 이게 전부여. 맨 노친네들이랑 애들 엄마들밖에 없어. 젊은 사람들은 도통 올 생각을 않에."
"에이 뭐, 저희도 대도시 아닌 동네는 다 비슷비슷해요."
"어떻게 유후인은 좀 맘에 드시는가? 잘들 놀고 있는겨?"
"아유 그럼요, 너무 좋아서 거의 매년 한두 번씩은 옵니다."
"아이 그러들 말고 걍 여기 와서 살지 그라요. 여그 집값도 싸고 응, 먹을 것도 맛있고, 경관도 좋고. 애들 키우기에도 딱이라니께."
"그러게요, 하하하. 저희도 맘 같아서는 그러고 싶은데 당장은 어렵죠. 매년 오니까, 내년에도 들르면 어르신 또 뵐 수 있겠죠."
"뭔 소리여, 그 때까지 내가 있을지 없을지 어떻게 안디야? 허허허."
그 때는 역시 할머님들의 입담은 이기지 못한다는 생각에 그저 유쾌한 기분만이 들었는데, 막상 코로나가 터지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일본 여행이 어려워지면서 정말로 제법 오랫동안 유후인에 가지 못하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때 그 어르신께서는 안녕하신지, 부디 별 탈 없이 건강히 살고 계시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또 다음에 방문할 때에는 걱정 없이 동네 분들과 식사 한 끼를 같이 하면서 정을 쌓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글을 적으면서 문득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큰 도시도 아닌 이곳 유후인에, 심지어 주일 미사에 꼬박꼬박 나오는 인원이라고는 채 열 명도 안 되는 듯한 곳에 공소를 아득바득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湯布院キリシタン墓郡|カトリック大分司教区Webサイト (oita-catholic.jp)
답은 오이타 교구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유후인초 카와카미 부근에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유후인 키리시탄 묘역군'이 있을 만큼, 예전 유후인은 초기 일본 가톨릭교회(당시 용어로 '키리시탄キリシタン')의 본거지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이 지역 향사인 누루유 사바스케(奴留湯左馬介)가 1580년 부하와 함께 세례를 받은 이후 영주의 보호 하에 유후인의 천주교 신자 수는 점점 불어나, 전성기에는 1500명에서 2000명 넘는 신자가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제법 훌륭한 성당이 건립되기까지 했는데, 유후 지역 최초의 성당이 세워진 것은 1580년부터 고작 6년이 지난 1586년입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에도 막부가 들어서고, 1614년 대대적인 키리시탄 탄압이 자행되면서 유후인의 신자들은 대다수가 죽거나 신앙을 버렸습니다. 개중에는 이른바 '잠복 키리시탄(카쿠레키리시탄隠れキリシタン)'이 되어 막부의 눈을 피한 신자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유후인의 곳곳에는 여전히 키리시탄들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큰 것이 이 '유후인 키리시탄 묘역군'으로, 십자가가 그려진 무덤과 카쿠레키리시탄들이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들 몇 기가 혼재되어 푸른 이끼로 뒤덮여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유후 공소에서 만났던 할머니 할아버지 신자들은 그 옛날 목숨을 걸고 숨어들어 신앙을 유지했던 잠복 키리시탄들의 후손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일본의 천주교 순례지라고 하면 보통 '평화의 성모상'으로 잘 알려진 나가사키와 '일본 최초의 천주교 도래지'인 카고시마를 꼽곤 합니다만, 한국인들이 관광으로 많이 찾는 유후인에도 천주교 선교와 박해에 얽힌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천주교 신자이거나 천주교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이렇듯 숨어 있는 유후인의 천주교 유적을 찾아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 이 글은 2018년에 유후 공소를 방문했을 때의 경험을 적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