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내가 만난 책들
아직 6월 초이지만, 곧 월말이 다가올 것을 직감하고 연휴를 이용해 상반기 책 결산 글을 쓰면 좋겠다는데 생각이 닿았다. 다른 때 보다 올 상반기는 책을 많이 사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회사 법카로 책을 쉽게 살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도 업무 관련 도서 구매 지원 제도가 있었지만, 결제를 올리고 어쩌고 과정들이 필요했는데 (심지어 정확한 방법 자체를 모르고 있었음) 지금은 책을 법인카드로 구매한 뒤 평소 회식비나 외근 택시비를 정산하듯 정산 처리하면 되기 때문에 절차가 간편해졌다. (tmi 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업무'와 관련한 책만 법카로 사고 있다)
둘째, <일잘러의 정리법> 때문이다. PUBLY 프로젝트 <일잘러의 정리법>을 집필하면서 (내가 집필이라는 단어를 쓰다니 허허) 책을 많이 사게 되었다. 뭔가 써야 하는 입장이 되어서 그런지 자꾸 읽고 싶어 졌고, 그래서 많이 샀다. 그렇게 책을 읽다 보니 관성이 생겨서인지 <일잘러의 정리법> 프로젝트를 마친 뒤에도 책을 계속 읽게 되었고 이제는 어느 정도 습관이 된 거 같다.
이번 결산은 책을 분야별로 나눠서 해보려고 한다.
1. 경제/경영
2. 기획/마케팅
3. 인문/에세이
4. 책 만들기
5. 외국어 학습
1번 [경제/경영]과 2번 [기획/마케팅]에 관한 책은 주로 회사 법인카드로 구매한 책들이고, 3번 [인문/에세이]부터 5번 [외국어 학습]까지는 모두 개인적으로 구매한 책이다. (분류를 해보니 이렇게 보니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 신기함)
책 목록의 대부분은 이번 상반기에 '산 책' 들이지만, 전에 사두었으나 읽지 않았거나 혹은 읽다 만 책 중 다시 읽게 된 책도 있고, 다 읽었지만 다시 꺼내서 한 번 더 읽은 책들도 섞여있다. 물론 '산 책' 중에 다 읽은 책도, 읽다 만 책도 있다. 이런 이유로 모든 책에 대해 코멘트할 수 없겠지만 이 참에 한 번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 배드 블러드 : 테라노스의 비밀과 거짓말 | 존 캐리루, 와이즈베리, 2019년 4월
- 에어비앤비 스토리 | 레이 갤러거, 다산북스, 2017년 6월
<배드 블러드>는 소설급 페이지 터너(page-turner)였다. 한 때 기업가치 10조 원에 달했지만 지금은 먼지처럼 사라진 실리콘밸리 의료 스타트업 테라노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이 사건의 전말을 파헤친 월스트리트저널의 존 캐리루 기자가 직접 쓴 책으로 결말을 알고 보는데도 충분히 재밌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것이 픽션이 아닌 실화라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온 게 아닐까 싶다. ('와, 말도 안 돼. 근데 이게 진짜 있었던 일이라니'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다.)
현재 스타트업에 다니고 있진 않지만 스타트업계에 발을 들인 지 10년이 되어가고, 그동안 여러 회사들의 흥망성쇠들을 지켜보다 보니 남일 같지 않은 부분들도 있어서 흥미로웠다. 이 쪽 바닥의 탐욕과 의리를 동시에 볼 수 있었다.
반면 <에어비앤비 스토리>는 재미가 그 반의 반의 반도 되지 않았는데, 첫 번째 이유는 이 책을 쓰신 분이 인사이더(에어비앤비 내부 사람, 직원 혹은 투자자)가 아니어서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해주지 못한 것 같고, 두 번째 이유는 내가 에어비앤비라는 회사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소식을 꾸준히 접해왔기 때문인 것 같다. 이 두 가지 이유로 이 책의 내용이 나에겐 전혀 새로울 것이 없었다. (방송이나 기사를 통해 다 보고 들었던 이야기들이 그냥 책으로 정리되어있는 수준이었다)
- 하이 아웃풋 매니지먼트 : 어떻게 성과를 높일 것인가 | 앤드류 그로브, 청림출판, 2018년 6월
- 파워풀 : 넷플릭스 성장의 비결 | 패티 맥코드, 한국경제신문, 2018년 8월
- 컬처 맵 | 에린 메이어, 열린책들, 2016년 6월
<하이 아웃풋 매니지먼트>는 정말이지 제목부터 나랑 안 맞는다. 대형서점 가판대에 이런 책이 놓여 있었다면 이 책을 집어 들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성공한 기업 경영자가 직원들 성과를 최대한으로 뽑아내기 위한 기술들을 모아둔 책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 기업의 부품으로 일하는 내 입장에선 달가울 리 없다.
이런 입장에서 책을 펼쳐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내용에 대부분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으론 이렇게 돌아가는 곳에 가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 뼛속까지 부품인가ㅜㅜ) 이왕 일을 할 것이라면 이렇게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제대로 된 시스템에서 일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지 않을까. 원리와 적용, 이상과 현실 사이에 늘 괴리는 있기 마련이지만...
<파워풀>은 너무 재밌어서 지하철에서도 읽은 책이다. (출퇴근을 위해 지하철에 몸을 싣고 있는 시간은 약 10분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마저 쪼개어 읽고 싶을 만큼 재밌었다) 넷플릭스 최고 인재 책임자로 14년간 일한 사람이 직접 쓴 책이라 더 몰입해서 볼 수밖에 없었다. (아는 사람의 이름이 등장하기도 했다!)
같은 책이라도 읽는 사람이 어떤 경험을 했고, 그 책을 읽을 당시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밖에 없다. <파워풀>이 재밌게 읽힌 것은 내가 전에 다녔던 회사들과 현재 재직 중인 회사의 여러 모습이 대조적으로 비쳤기 때문일 것이다. 넷플릭스라는 회사의 기업문화와 인사원칙 등에 격하게 동의하는 바이지만, 동시에 서슬 퍼렇게 살벌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주 잠깐 스치는 마음이었지만 넷플릭스에서 한 번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초예측 : 세계 석학 8인에게 인류의 미래를 묻다 | 유발 하라리, 제레드 다이아몬드, 닉 보스트롬, 린다 그래튼, 다니엘 코엔, 조앤 윌리엄스, 넬 페인터, 윌리엄 J. 페리, 오노 가즈모토, 웅진지식하우스, 2019년 2월
- 90년생이 온다 | 임홍택, 웨일북, 2018년 11월
- 원칙 Principles | 레이 달리오, 한빛비즈, 2018년 6월
- 팩트풀니스 :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 한스 로슬링, 올라 로슬링, 안나 로슬링 뢴룬드, 김영사, 2019년 3월
- 스킨 인 더 게임 : 선택과 책임의 불균형이 가져올 위험한 미래에 대한 경고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비즈니스북스, 2019년 4월
<원칙>을 인생 책이라 언급하시는 분들이 있어 볼까 하다가 책 두께가 흠칫 놀라(총 712쪽) 미루고 미루다 용기 내서 읽게 되었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3부 [일의 원칙], 2부 [인생의 원칙] 순으로 읽은 뒤 1부 [나의 인생 여정]은 읽지 않았다) 어떤 페이지는 거의 전부를 밑줄 그을 만큼 주옥같은 내용들이었는가 하면 다소 추상적인 언급들에 있어서는 고개가 갸우뚱했다. 결론적으로 나의 인생 책은 되지 못했다.
* 참고: [박소령의 올댓 비즈니스] 권력은 지위 아닌 생각에서 나온다
<팩트풀니스>는 의외로 마음에 쏙 든 책이다. 제목만 봐서는 별로 재밌을 것 같지 않았은데 완전 푹 빠져서 읽었다. 행동경제학 측면에서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해 이야기 한 책이 <생각에 관한 생각>이라면, 이 책은 통계를 근거로 들어 나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었다.
저자는 통계를 근거로 들어 세상은 생각보다 괜찮으며 나아지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어 하는데, 나는 그 점 보다 우리가 얼마나 세상을 잘못 파악하고 있는지, 그런 함정에 빠지는 요소들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더 흥미로웠다.
* 참고: The best stats you've ever seen | Hans Rosling | TED2006
(메인 저자 한스 로슬링이란 분은 TED로 이미 굉장히 유명한 분이신가 본데 나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 인스파이어드 : 감동을 전하는 IT 제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개정증보판 | 마티 케이건, 제이펍, 2018년 12월
- 훅 Hooked : 습관을 만드는 신제품 개발 모델 | 니르 이얄, 리더스북, 2014년 12월
- 기획자의 습관 | 최장순, 홍익출판사, 2018년 5월
- 기본으로 이기다, 무인양품 : 38억 엔 적자 회사를 최강 기업으로 만든 회장의 경영 수첩 | 마쓰이 타다미쓰, 위즈덤하우스, 2019년 2월
- 지적자본론 :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가 되는 미래 | 마스다 무네아키, 민음사, 2015년 11월
- 도쿄의 디테일 : 고객의 감각을 깨우는 아주 작은 차이에 대하여 | 생각노트, book by PUBLY, 2018년 11월
<인스파이어드>는 왜 이제야 읽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IT 서비스 기획이라는 일에 대한 정의가 회사마다 다르고 모호한 편인데, 이 책이 잘 정리했단 생각이 들었다. 꼭 기획자가 아니더라도 IT 서비스(제품)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잘 읽히고 두고두고 꺼내 보면서 정신 차리기에 좋은 책이었다. (물론 이대로 한다고 해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 진화된 마케팅 그로스 해킹 : 프로세스와 실행 전략 바이블 | 션 엘리스, 모건 브라운, 골든어페어, 2017년 11월
- 그로스 해킹 Grwoth Hacking : 스타트업을 위한 실용주의 마케팅 | 라이언 홀리데이, 길벗, 2015년 4월
- 마케터의 일 : 경험하고 공감하고 함께하는 | 장인성, 북스톤, 2018년 4월
<진화된 마케팅 그로스 해킹>의 경우 추천받아 읽다 말았는데 <인스파이어드>와 <훅 Hooked>에 데이터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다시 찾아서 읽었다. 읽는 김에 전에 읽었던 <그로스 해킹 Growth Hacking>도 다시 뒤적여보았다. (둘 중 한 권을 고르라면 <진화된 마케팅 그로스 해킹>을 추천합니다)
<진화된 마케팅 그로스 해킹>의 경우 두께가 좀 되는 편인데 (총 446쪽) 내용이 어렵지 않고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짜여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마케터의 일>의 경우, 꼭 마케터가 아니더라도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적용될 법한 이야기라 좋았다.
- 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 김영하, 문학동네, 2019년 4월
- 퇴사는 여행 | 정혜윤, 독립출판, 2019년 2월
- 나는 이 질문이 불편하다 : 나태함을 깨우는 철학의 날 선 물음들 | 안광복, 어크로스, 2019년 1월
- 아무튼, 술 : 오늘의 술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 한다 | 김혼비, 제철소, 2019년 5월
- 아무튼, 비건 : 아무튼 시리즈 17 | 김한민, 위고, 2018년 11월
- 저 청소일 하는데요? | 김예지, 21세기북스, 2019년 2월
- 심심X앙꼬 : 왕코 고양이 앙꼬가 쓰는 심심작업실 일기 | 정수연, 하모니북, 2019년 6월
- 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 문유석, 문학동네, 2015년 9월
- 쾌락독서 : 개인주의자 문유석의 유쾌한 책 읽기 | 문유석, 문학동네, 2018년 12월
어디선가 요즘 사람들이 문학은 잘 안 읽고 쉽게 읽히는 에세이만 읽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리하다 보니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인 것 같다.
어떤 작가가 신작을 내면 무조건 믿고 사는 경우가 있는데 김영하 작가가 바로 그런 작가 중 한 분이다. 마침 휴가를 내고 서울 여행을 갔던 때라 (경기 남부에 사는 우리 부부에게 강북은 날 잡고 가야 하는 그런 곳이다ㅎㅎ) 호텔 침대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깔깔거리고 읽기에 딱 좋았다. 이런 책을 한 달에 한 권씩 내주면 참 좋겠는데 그건 무리일까!
<퇴사는 여행>의 경우 독립출판물이다. 기성 출판물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책이었다. 표지, 글, 레이아웃, 폰트, 사진, 그 어느 하나 흠잡을 곳 없이 정성이 깃들어 있는 게 전해졌다. 예쁜 더스트백에 포장되어 왔는데 이 책의 콘셉트와 일맥상통하게 여행용으로 사용하라고 함께 온 선물이었고, 글 하나하나와 연결된 음악들도 음악 플레이리스트도 만들어 QR로 연결해 바로 들을 수 있었다.
저자가 회사를 그만두고 1년간 쉬면서 여행하고 경험한 것들을 풀어쓴 글인데 그 1년의 시간을 함께 쫓아가면서 그 여정을 함께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단돈 만 오천 원으로 값비싼 간접경험의 기회를!)
무엇보다 '아 혹시 지금이 다시 그 타이밍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만났던 한 스타트업 대표님 역시 일단 1년 정도 쉬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 마음먹었을 때 지금 하는 사업 아이템을 프로젝트로 시작하게 되었고 그 씨앗이 자라 지금의 사업이 되었다고 했다. 나는 그냥 이렇게 매일 판교로 출퇴근하는 삶에 안주해도 되는 건가. 생각이 많아졌다.
<나는 이 질문이 불편하다>의 경우, <어떻게 휘둘리지 않는 개인이 되는가>라는 책을 읽고 철학 관련 해설서들이 재밌다고 생각하던 차에 어크로스 출판사에 약간의 믿음 같은 것이 생겨 선택한 책이었다. 스스로의 생각도 정리해보면서 읽기에 어렵지 않은 책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강력한 한 줄은 "남과의 비교는 인생을 지옥으로 바꾸는 독약이다."
<아무튼, 술>은 소리 내서 웃으면서 읽었다. 김혼비 작가님 대박이다. 매력이 넘친다. 강력 추천한다.
실제로 주변에 <아무튼, 비건>을 읽고 비건 라이프를 추구하는 분이 있다. 구독하고 있는 일간 이슬아에서 김한민 작가님 인터뷰가 이틀에 걸쳐 다룬 것이 계기가 되어 책을 사서 읽게 되었다. 머릿속에 뭉개 뭉개 떠다니던 비건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도록 단호하고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한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비건이 되었냐고? 아직 아니다. 하지만 조금 더 비건적 생활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
* <아무튼, OO>은 제철소, 위고, 코난북스 3개 출판사가 함께 펴내는 에세이 시리즈이다.
- 사는 게 힘드냐고 니체가 물었다 : 피할 수 없는 내 운명을 사랑하는 법 | 박찬국, 21세기북스, 2018년 12월
-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 : 신경질적인 도시를 사랑하며 사는 법에 관하여 | 김도훈, 웨일북, 2019년 3월
- 다가오는 말들 : 나와 당신을 연결하는 이해와 공감의 말들 | 은유, 어크로스, 2019년 3월
- 일간 이슬아 수필집 | 이슬아, 헤엄, 2019년 1월
- 걷는 사람, 하정우 | 하정우, 문학동네, 2018년 11월
- 길 잃기 안내서 : 더 멀리 나아가려는 당신을 위한 지도들 | 리베카 솔닛, 반비, 2018년 11월
- 서평 쓰는 법 : 독서의 완성 | 이원석, 유유, 2016년 12월
- 비커밍 : 미셸 오바마 자서전 | 미셸 오바마, 웅진지식하우스, 2018년 11월
-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 김원영, 사계절, 2018년 6월
- 다시 책으로 : 순간접속의 시대에 책을 읽는다는 것 | 매리언 울프, 어크로스, 2019년 5월
한 달에 1만 원 구독료를 내면 월화수목금(주말 제외) 매일 글을 한편씩 이메일로 보내주는 서비스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도 청탁하지 않았지만 쓴다'를 모토로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셀프 연재 프로젝트라고 했다.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호기심에 구매한 <일간 이슬아 수필집>은 여러 측면에서 충격적이었다. 내용이나 표현이 뭔가 날것 그대로의 산문이었고, 매일 써서 모은 엄청난 분량에 압도되었다. 이 책이 '아직 읽고 있는 책'에 포함된 이유는 책이 2018년 3월부터 8월까지의 연재 글을 모두 모았기 때문에 분량 자체가 많거니와 (총 572쪽) 이 책을 읽고 있던 중간에 2019년 5월 구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2019년 4월호도 현재 이메일에 고이 킵해둔 상태) 매일 글을 한편씩 받아보는 경험은 신선했고, 뭔가 함께 살고 있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내일은 또 어떤 글이 배달될지 설레기도 했다. 다음 달 구독이 시작되기 전까지 잠시 짬이 있으니 마저 과월호들을 읽어야겠다.
덧붙여, 이런 것도 하나의 장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기 같지만 일기는 아니고, 그렇다고 소설도 아닌. 픽세이(픽션+에세이)라고 해야 할까. 글 하나하나가 이야기 하나로서 완결성이 충분했다. 느끼는 점도, 배우는 점도 많았다. 콘텐츠만큼이나 형식도 중요한데, 1일 1글 배달이라는 형식. 이 역시 충분히 매력적이지 아니한가!
* 참고: 이슬아 블로그
- MAGAZINE SEOUL BOOK CLUB Issue No.1 | 정승은, Autumn 2016
-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 : 한 사람만을 위한 서점 | 정지혜, 유유, 2018년 9월
- 출판하는 마음 : 은유 인터뷰집 | 은유, 제철소, 2018년 3월
- 책갈피의 기분 : 책 만들고 글 쓰는 일의 피 땀 눈물에 관하여 | 김먼지, 제철소, 2019년 4월
- 책의 역습 : 책의 미래를 밝다 | 우치누마 신타로, 하루, 2016년 6월
-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 김정선, 유유, 2016년 1월
- 책 쓰자면 맞춤법 :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맞춤법 안내서 | 박태하, 엑스북스, 2015년 8월
-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 (2019) | 열린책들 편집부, 열린책들, 2019년 2월
이 카테고리의 책들은 말 그대로 책에 관한 책들이다. 책을 만드는 방법과 관련된 책들도 있지만, 책을 만들고 파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책을 만들겠다고 본격적으로 마음먹은 지 벌써 1년이 넘었는데 욕심은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어서 책에 관한 책들도 꾸준히 보고 있다.
위의 책 중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와 <책의 역습>은 모두 <SEOUL BOOK CLUB> 잡지 인터뷰를 보고 구매하게 됐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책 처방을 내려주는 사적인 서점을 처음 알게 된 건 팟캐스트에서였다. <일상기술연구소>에 출연한 사적인 서점의 정지혜 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러모로 현명하단 생각이 들었었다. (더불어 내면의 단단함 같은 것도 같이 전해졌다) 책을 처방해주는 콘셉트의 책방을 열게 되게 까지 사연이 조금 더 궁금해졌고, 마침 직접 쓰신 책이 있어 찾아 읽게 되었다. 팟캐스트나 인터뷰에서 다뤄진 내용들과 많이 겹쳤지만 그래서 더 부드럽게 빈 틈을 채워가며 금방 읽을 수 있었다. 내가 만약 책과 관련된 일을 업으로 삼는다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출판하는 마음>은 작가, 번역가, 편집자, 마케터, 1인 출판사 사장님 등 책을 만드는 전체적인 과정에 참여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이 쪽 업계에 발을 들여보지 않은 사람의 입장에서 전체적인 프로세스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안타까웠던 점은 업계가 열악하다는 점. 처우나 환경이 앞으로 개선되기 쉽지 않아 보여서 더 속상했다.
<책갈피의 마음>은 편집자가 익명으로 일에 대해 썰을 푼 내용을 담고 있는데 <출판하는 마음>에 다뤄진 다양한 사람 중 '편집자'에 집중해서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업무의 성격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에서 서비스 기획자와 비슷한 부분들도 많이 보였다. 소위 개발, 디자인 빼고 다하는 게 서비스 기획자라고들 하는데 편집자가 집필과 디자인 및 인쇄를 제외하고 다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덤으로 편집자들에게 어필하는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팁을 얻을 수 있었다. 출판업계의 생태계와 팔리는 책을 만드는 방법도!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2019)>은 연휴에 서점에 놀러 갔다가 충동구매 한 책인데, 열린책들 신입 편집자가 오면 교과서처럼 주는 매뉴얼 같았다. 업계의 문외한에게 최소 이 정도 룰과 이 정도 용어는 알고 얘기를 시작하자는 느낌으로 만들어진 책이라 감사한 마음으로 짚어왔다.
- 중국어 번역을 위한 공부법 : 번역가 3인 3색 100일 번역마늘 프로젝트 | 신노을, 임혜미, 김정자, 더라인북스, 2018년 7월
- 김혜림의 중국어 통역번역 사전 : Korean-Chinese Terminology | 김혜림,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6년 11월
- 일본어 통번역사전 Japanese-Korean Terminology for Beginners | 우기홍, 넥서스재페니즈, 2007년 2월
- 중쇄를 찍자! 1, 2, 3, 4 | 마츠다 나오코, 애니북스, 2015년 8월
- 重版出來! 1, 2, 3, 4 | 松田奈緖子, 小學館漫畵文庫, 2013년 3월
- 이진영의 통역번역 기초사전 : 개정증보판 2판 | 이진영,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7년 8월
번역가나 통역가가 되는 것이 목표는 아니지만, 한 차원 높은 공부를 하시는 분들의 방법이라도 배워볼까 하는 마음에 <중국어 번역을 위한 공부법>이란 책을 사서 봤다. 그쪽 공부를 하시는 분들 사이에 공유하는 쏠쏠한 팁들을 건질 수 있었다. 당장 모두 실천에 옮기긴 어렵겠지만 자주 꺼내보면서 하나씩 적용해 볼 예정이다.
최근에 중국어, 일본어, 영어 통번역사전(총 3권)을 구매했다. 얼마 전 서점에 갔다가 번역 사전을 보고 매료된 것인데, 한마디로 고급 단어장이라 할 수 있다. 주제별로 사용되는 단어들을 모아 두고 간단한 설명까지 덧붙여져 있어 외국어 공부하면서 상식 공부까지 할 수 있어서 일석이조!
평소 회화수업을 듣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문제집을 풀어도 뉴스나 라디오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종류의 어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치, 사회, 스포츠, IT 등 주제별로 사용되는 단어들이 있는데 이런 단어는 수업교재에서 잘 다뤄지지 않기 때문에 기본 명사, 동사, 형용사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심심할 때 들춰볼 생각으로 일단 샀다. 무려 3권을 한방에! 사전은 한 두해 보는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보는 것이니 괜찮은 지름이었다고 합리화하고 있다.
<중쇄를 찍자>의 경우 드라마로 먼저 보았는데, 교훈적 메시지로 귀결되는 일본 드라마의 전형일지라도 내겐 특별하고 재밌어서 보고 또 보는 드라마이다. 만화가 원작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1권을 번역판, 일본판 주문해서 봤는데 학습 교재로 유용할 것 같아 2, 3, 4권도 추가로 주문했다. (드라마 대본집 느낌으로 구매했다) 왼쪽에 번역판, 오른쪽에 일본판을 펼쳐두고 하나씩 보다 보면 번역 연습이 되는 거 같기도 하고 드라마에서 들었던 대사가 귀에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4권 모두 보고 나면 나머지 5, 6, 7, 8권도 세트로 구매할 예정이다.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으로 많이 읽었고, 주로 집 거실 소파에서 읽었다. 책을 읽을 때는 항상 노란 색연필과 작은 포스트잇들을 곁에 두고 읽었다.
정리해보니 이번 상반기에는 문학작품을 전혀 안 읽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충격적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어디까지나 핑계라는 걸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잠깐씩 끊어 읽어도 괜찮은 비문학 책들과 달리 문학은 한 번 빨려 들어가면 좀처럼 그 세계에서 빠져나오기 싫어지기 때문에 큰 마음을 먹어야 읽게 되는 것 같다. 하반기에는 문학작품들을 의도적으로라도 손에 들어야겠다.
그리고 누군가의 읽은 책(혹은 산 책)에 내가 만든 책이 들어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