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흥겨운 책 대잔치에 다녀오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코엑스에서 서울국제도서전이 펼쳐진다. 유명한 사람이 와서 강연을 하기도 하고 출판사들이 부스를 차려놓고 책을 판매하기도 한다. 재작년에 참석했다가, 올해 다시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석했다.
재작년에는 우발적(?)으로 참석했던 터라 현장에서 표를 구매했는데, 올해는 참석하려고 일찌감치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5월쯤에 사전 예약을 하면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다. 날짜를 미리 정하고 네이버 예약을 통해 뚝딱 예약을 마쳤다.
행사를 신청한 건 5월 초였어서 한 달 넘게 도서전을 기다렸다. 마치 어벤저스 영화 개봉일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어릴 때 소풍 가는 날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설렜다.
서울국제도서전에 가서 책을 안 살 수 없기 때문에 무거운 책을 들고 오려면 차를 가져가야 하는데 그렇다고 코엑스에 차를 대기에는 주차료가 너무 비싸다. 그래서 카카오주차 앱을 통해 미리 코엑스 근처 주차장을 물색한 뒤 종일권을 예약했다. 주차한 건물에서 코엑스까지 조금 걸어야 했지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편히 둘러볼 수 있어서 좋았다.
특별히 어디 가서 무얼 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구경삼아 간 것이다 보니 발길이 닿는 대로 돌아다녔다.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장강명 작가님의 사진! SF 전문 출판사 '아작'의 부스였다.
장강명 작가님의 신작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이 나오는 걸 알고 있었고, 바로 받아보려고 예약 구매 걸어둔 상황이었는데 도서전에서 책을 팔고 있었다! (1차 충격) 오늘 일단 사고 기존 걸 취소할까 어쩔까 생각하고 있던 찰나에 최근에 김영하 작가님이 <여행의 이유>를 동네서점 에디션 별도로 낸 것처럼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도 표지가 2가지 버전으로 나와있었다. (내가 온라인 책 구매 사이트를 통해 예약한 건 일반 버전이었다) 그럼 이왕 이렇게 된 거 동네서점을 구매하기로 마음먹고 책을 샀다.
그런데 오늘 장강명 작가님 사인회가 있다는 거다. (2차 충격) 책을 사면 번호표를 준다고. 사인회가 언제냐고 물었더니 10분 뒤 시작이라는 거다. 세상에나. 생각도 안 하고 왔는데!
그래서 책과 번호표를 고이 들고 작가님이 오시기를 오매불망 기다렸다. 생각보다 금방 줄어들 줄 알았던 줄은 생각보다 빨리 줄지 않았다. 왜냐면 작가님이 한 명 한 명 너무나 정성스럽게 이야기도 나누고 싸인도 해주고 요청하면 사진도 찍어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그만큼의 시간을 할애해 주실 테니꽈!
내 순서가 다가왔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살포시 책을 내밀며 내 이름을 말했다. 그리고 전에 한 번 사인받은 적이 있다고 말하면서 그때 찍어둔 사인 사진을 슬쩍 보여드렸다. 그런데 세상에나 나를 기억하고 계셨다! (3차 충격) 정말 어디 가서 내가 어느 대학 나왔는지, 무슨 전공했는지 묻지 않으면 먼저 말하지 않는 사람인데 장강명 작가님 앞에서는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연결고리로든 엮어보고 싶은 마음에 ㅜㅜ
전에 사인받았던 것이 북바이북이라는 사실과 내가 다니고 있는 직장까지 기억해주셨다 (4차 충격) 그렇게 꺄아를 연발하며 간단히 대화(우리 과 출신들이 얼마나 다양한 업종에 종사하고 있으며 그중에 97학번 선배님 부부와 나의 동기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를 나누고 소중히 사인을 받았다.
그렇게 하고 나니 뭔가 기대치 않게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이제 아무거나 하다 집에 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부스를 둘러보니 작가 사인회가 이곳저곳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82년생 김지영>으로 유명하신 조남주 작가님은 신작 <사하맨션> 출간 사인회를 하고 있었고, <7년의 밤>으로 유명하신 정유정 작가님은 <진이, 지니> 출간 사인회를 하고 계셨다. <스페인 너는 자유다>로 전격 여행작가로 이름을 날린 손미나 작가님은 <내가 가는 길이 꽃길이다> 사인회를 하고 있었다. 그중 단연 가장 길었던 줄은 조남주 작가님 줄이었다.
내가 두어 시간 머무르는 동안 이렇게 많은 분들의 사인회가 진행되고 있었으니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5일간 얼마나 많은 작가님들의 강연회와 사인회가 있었을 것인가! 더 알고 갔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사람 중 한 사람으로, 브런치 부스도 인상 깊었다. 샤넬 매장에 줄 서서 입장하는 것처럼 검은색으로 고급스럽게 꾸며둔 부스에 입장하기 위해선 줄을 서야 했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진행요원의 설명을 듣고 주제를 골라 글을 추천받았다. 고급진 종이를 주셔서 반납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그냥 가져가라고 하셨다! 쏘쿨! 언젠가 나도 브런치 출신(?) 작가로 이름을 날릴 날이 올 것인가!ㅋㅋ
코엑스 전시장이 워낙 크다 보니 한 두 바퀴 돌고 나면 힘이 다 빠져서 볼 것 다 봤겠거니 하고 전시장을 나왔다. 그런데 막상 집에 오고 나니 '아차' 싶은 것들이 있었다.
- 귤프레스 부스에 계시던 분은 <며느라기> 신수지 작가님이었다. 알았다면 인사도 드리고 사인이라도 한 장 받으며 작품에 대한 감사를 표했을 텐데!
- 홍갈작가님 책이 나와서 한 권 직접 사고 싶었는데 부스를 찾지 못했다.
- 안전가옥 부스도 둘러보고 싶었는데 역시 발견하지 못했다.
오늘 글을 쓰다 보니 2017년 서울국제도서전 후기도 브런치에 적어두었었는데, 같은 말이 적혀있다. 미리 좀 잘 알아보고 가서 챙겨보면 좋겠다는. 그래도 2년 전에 비해 책도 더 많이 읽게 되었고 관심도 높아져서 확실히 더 재밌게 느껴졌다. 아는 게 많으면 보이는 게 많고 그럼 또 느끼는 게 많아지기 마련이니까.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는데 뒤에 서계시던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나라에 책 읽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고. 기다림에 지쳐서 한 말인지, 출판계 종사자인데 책이 팔리는 것에 비해 사람이 많아서 그리 한 말인지 알 길은 없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가깝게 여기고, 더 다양하고 즐거운 독서 생활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여...
이 날은 관람을 마치고 분당중앙공원 파크콘서트에 갔다. 넬(NELL)이 온다고 해서 얼쑤 좋다 하고 갔는데 정말 대박이었다. 무료 공연이라 네댓곡 하시는 건가 하고 갔는데 거의 콘서트 급이었다. 심지어 '파크' 콘서트답게 돗자리를 깔고 볼 수 있었는데 (앞자리는 앉아서 보는 곳이었지만 그분들은 무척 일찍 와서 자리 맡으신 분들 이리라) 인당 점유 공간이 여유롭다 보니 정말 좋았다. 누워서 하늘 보면서 넬을 기다리다 약 90분 정도 귀호강 눈호강을 하니 더 바랄 것이 없었다. 무엇보다 나의 최애 곡인 <Ocean of Light> 해주셔서 여한이 없는 공연이었다.
오래간만에 꽉 차게 행복한 하루였다.
소중한 기억들 내 마음속에 저. 장.
:)
관련 글: SIBF 서울 국제도서전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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