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는 어떤 사람들인가? 무엇을 어찌하는 사람들인가?
요새 부지런히 책을 읽고 있는데 경주마처럼 앞으로 읽어 나가기만 하고 통 글로 정리하질 못했다. 나의 언어로 남겨두지 않은 책은 읽은 게 아니다 라고 글을 써두었던 과거를 돌이켜 본다면, 책을 읽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일단 읽었던 책들을 한 번 정리하려는 시도를 먼저 해보려고 한다. 무조건 글 써야 다음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가혹한 룰은 뭐든 억지로 하지 않기라는 또 다른 과거에 내가 적은 글에 위배되기 때문에 일단 시도해보는 정도로 만족하기로 한다.
후기를 적지 않은 여러 책들 중 오늘 적어보려는 책은 바로 <JOBS EDITOR 에디터: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좋은 것을 골라내는 사람>이란 책이다.
매거진B와 브런치가 뭔가 함께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마침 지인이 이 책의 일부를 인스타그램에 올려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책을 발견하는 경로는 예전에 적었던 책을 발견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에서 크게 바뀌지 않았는데, 굳이 바뀐 점을 꼽자면 페이스북이 아닌 인스타그램이라는 정도다. 해당 시기에 가장 활발히 사용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책을 발견하는 것이 가장 흔하고 자연스러운 경로인 듯하다.
짝꿍이 광화문에서 어느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동안 나는 카페에서 책을 읽었다. (TMI지만, 우리 부부는 함께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결혼식에 동행하지 않는 편이다. 엄밀히는 결혼식 장소까지는 같이 가되 결혼식에는 한 명만 참석하고 나머지 한 명은 근처에서 기다리는 식이다.) 원래 다른 책을 가져가려고 했는데 가져가려는 가방이 작아 책이 들어가지 않아서 대신 작은 책을 골라 들었고, 그 책이 이 책이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인터뷰로 구성된 글이다. 유명 에디터들을 직접 만나거나 이메일을 통해 인터뷰한 내용이 정리되어있고, 중간에 에세이도 2편 들어있다.
<브로드컬리> 라는 로컬 숍 연구 잡지가 있다. 잡지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내가 보기엔 그냥 단행본 책 느낌이다. (브랜드 다큐멘터리 매거진 <매거진B>가 잡지지만 그냥 단행본 책인 것처럼!)
출판사, 편집자, 서점 등 책과 관련된 분야에 관심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쪽 관련 책들에 손이 가는데 그중 브로드컬리에서 나온 <서울 3년 이하 서점들: 책 팔아서 먹고살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과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솔직히 책이 정말 팔릴 거라 생각했나?>를 재밌게 읽었는데 그 브로드컬리의 주인공 조퇴계, 이지현 님 인터뷰가 실려있었다!
조퇴계님 공대 출신인 거 너무나 신선하고, 조퇴계님만 풀타임이고 나머지 멤버들이 파트타임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국제도서전에서 나한테 감자 과자 주신 분도 그럼 멤버이자 파트타이머셨나 보다) 로컬 숍을 직접 취재하러 다닌 이야기와 디자이너에게 전권을 넘긴 이야기 등 하나하나 소중한 경험들이 담겨있었다. (더 이상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으니 여기까지!)
동아리 선배 중에 패션지 에디터를 하는 선배가 있다. 우리 회사 근처에 업무차 오게 되면 가끔 연락을 주셔서 만나곤 하는데 내가 가끔 선배의 말을 못 알아듣거나 잘못 이해할 때가 있다. 그만큼 세계가 다르다는 것인데, 황선우 에디터님(이자 작가님) 에세이를 읽다 보니 그 선배 생각이 많이 났다. 이 선배는 이런 현장에서 이렇게 일하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떠오른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PUBLY 콘텐츠 매니저님과 에디터님들이었다. 종이로 출판된 책은 아니지만 어쨌든 디지털 리포트라는 형태의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들고 발행하는 과정을 함께 걸어보았기에 그분들 생각이 많이 났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듣똑라: 듣다 보면 똑똑해지는 라이프>에 북저널리즘 CCO 김하나 님편을 들어보면, 직접 콘텐츠를 생산하는 저자가 아니더라도 미디어를 기획하고 펴내는 사람이 저자로서 크레딧을 가질 수 있다는 개념을 이야기한다. 많은 것 중에 좋은 것을 골라내는 능력, 그리고 그것을 잘 풀어내는 능력. 모두가 에디터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되고 있는 동시에, 능력 있는 에디터들이 더 중요해지는 세상이 온 거 같다.
문득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발행의 즐거움에 적었듯 학부 때 학과지 편집을 하기도 했고 (글도 쓰고 편집도 했다) 학회지 학생기자, 일간지 인턴기자, 잡지 수습기자 등 에디터라고 보기엔 애매하지만 여하튼 언저리 어딘가에 기웃거려본 경험은 있지 않은가!
어느 날 갑자기 내 직업이 에디터가 되진 않겠지만, 브런치에 어떤 글을 쓸지 정하고 글을 쓰는 나도 한 명의 에디터가 아닐까 싶다. 늘 책을 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독립출판으로 책을 내더라도 전문 편집자의 도움이 필요할 거 같단 생각도 들었다.
- 김먼지, <책갈피의 기분>, 독립출판물
: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는 분이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적은 에세이다. 표지에 <책 만들고 쓰는 일의 피 땀 눈물에 관하여>라고 적혀있는데 실명을 밝히지 않고 쓴 책인 만큼 솔직하고 담백하고 유쾌하다.
- 이정훈, 김태한 공저, <기획자의 책 생각>, 책과강연
: (나처럼) 전문 에디터는 아니지만 책을 기획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 들어있다.
- 온유 인터뷰집, <출판하는 마음>, 제철소 / 김필균 인터뷰집, <문학하는 마음>, 제철소
: <JOBS EDITOR>와 동일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편집자들의 인터뷰뿐 아니라 작가님들과 업계 종사자분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을 엿볼 수 있다.
- 브로드컬리 시리즈
: 위의 인터뷰이로 등장한 조퇴계, 이지현 님이 만드는 로컬 숍 연구잡지 브로드컬리 시리즈들 재미있다. <서울의 3년 이하 퇴사자의 가게들>,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서울의 3년 이하 빵집들>, <제주의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 등이 있다.
- 김하나, 황선우 공저,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위즈덤하우스
: 이 책에 실린 에세이 <240번의 마감이 만든 근육>을 쓴 황선우 작가님이 공동으로 집필한 책이다. 두 분이 함께 대출을 받아 집을 사서 고양이 4마리와 함께 사는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인데 필력도 좋으시고 술술 읽힌다. 이 책이 잘 된 덕분에 두 분은 주택담보대출을 모두 갚으셨다고 한다. (너무 부럽다. 정말 부럽다. 진심 부럽다.ㅎㅎ)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에디터는 무척 매력적인 일로 보였다. '호기심'이란 키워드가 관통하는 걸 보면 나랑도 잘 맞는 직업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천직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아니었다.
'에디터'에 초점이 맞춰서 읽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좀 더 일반론적인 관점에서 읽었다. (내가 에디터가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고..) 어떤 하나의 일을 열정을 가지고 오래도록 해낸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약간의 감동이 있었고, 나도 한 업계에서 근 10년을 일했는데 10년 정도 더 일하면 이런 잡지에 인터뷰로 나올 수 있는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퇴계, 이지현 님의 인터뷰를 생각해본다면 전문성이라는 것이 꼭 일한 '기간' 만으로 산정하기엔 어려운 것이란 생각도 든다.
끝으로 책 값이 19,000원인데, 두께나 내용에 비해 비싼 편이다. 인터뷰이 비용과 고료 같은 게 많이 들었나. 물리적인 특성으로 봤을 때 그렇게 비쌀 필요는 없어 보였는데 책 값이 높게 측정된 이유가 궁금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이 책은 회사와 무관하게 자비로 구매했음을 밝힙니다.)
<매거진B>가 계속해서 브랜드들을 다루는 것처럼 <JOBS> 시리즈도 계속 일을 다룰 텐데 다음 일이 무엇이 될지, 또 어떤 흥미로운 사람들과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살짝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