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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바람 Aug 13. 2023

그래서 어쩌라고

공감하지 않으면 티발놈이 되는 사회

 '공감' 참 중요한 대화의 방식이다. 나도 한때 공감을 갈구하고, 그게 무조건적인 방법인 것처럼 '응 힘들었겠다', '고생했어' 이런 말들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리고 그런 공감하는 방법이 대화의 올바른 방법이며, 경청하는 방법이라는 서적도 정말 많이 나왔다. 그래서 정말 노력하고 나름 F라는 거에 대해 자부심(?) 도 가지고 살았다.


 회사생활을 시작하면서, 그 성향이 많이 바뀌었다. 회사생활 0년 차 처음 배워보는 일에 실수라도 하면, '어떡하죠? 죄송해요.'를 말하곤 했다. 그럼 상사분들은 상황설명 먼저 하라고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해결을 한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해결됐으니 다음부턴 이렇게 하면 된다고 해결책을 알려준다. 물론 당당하게 이거 실수했어, 상사님이시니까 해결해 주세요. 이런 태도는 잘못된 거다. 죄송한 태도를 보이며 상황을 신속, 정확하게 잘 커뮤니케이션하는 게 중요하다. 해결이 완료되면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 한마디. 물론 이건 직장생활 1년 겨우 할까 말까 한 애송이의 견해다.


이런 연유로 해결을 중시하는 성향이 좀 됐다. 사실, 그러기엔 1년 전의 나, 그리고 아직까지 감정에 잠식돼 주변사람에게 히스테리를 부리곤 했다. 너무 힘들어,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나 잠을 못 자 그렇게 말하고 혼자 엉엉 울었다. 당시 옆에 있던 사람들은 정말로 힘들었을 거다. 처음엔 그냥 타인에게 감정을 전가하고 이해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그랬는데, 근본적인 원인을 모르니 무작정적인 찡찡거림만 되는 거다.


 당시 내가 이상하는 독립적인 사람과 그렇게 남에게 기대는 내 모습에 엄청난 괴리감을 느꼈다. 이게 내가 원하는 게 아닌데. 기운을 다시 찾고 감정과 관련한 책을 계속 읽었다. 말하는 법에 대한 책도 읽었다. 당시에는 엄청 신기한 인과관계였다. 유레카! 하는 느낌? 말에는 감정이 섞여있고, 그 감정을 돌아보고, 유년시절의 트라우마까지 들어가서 내가 어떤 거에 트리거가 있는지. 그런 것들을 모두 돌아보고 나를 이해해야 말을 잘할 수 있다는 거다. 대화의 어투에는 사람의 인생이 들어있던 거다. 어릴 적부터 학대를 받았다거나, 싸우는 부모님 사이에서 자랐으면 그 말투를 그대로 받아 짜증 내는 말투나 욕설을 자주 쓸 거다. 어릴 때부터 사랑받고 자랐으면 그 사랑 넘치는 말투를 배워 배려 넘치고 사랑 넘치는 말을 자주 쓸 거다.

공교롭게도 나는 전자에 해당하는 편이었다. 아무래도 당시에는 맞벌이가 빈번했고, 늦은 시간까지 육체적으로 지친 상태에서 부모님은 감정을 다스릴 수가 없었을 거다. 육신이 지치니 사소한 것이 신경이 거슬리고, 그 신경이 거슬리면 또 거친 말이 나오고. 이해를 통해 그래 힘드셔서 그런 거겠지, 그렇지만 참지 않는 성격 탓에 아빠랑도 많이 싸웠다. 말을 왜 그렇게 하냐고도 싸우고, 엄마한테 너를 낳지 말았어야 했어라는 말도 들어보고, 아빠한테 심한 욕설도 들어봤다. 생각해 보면 부모님이랑도 뒤지게 싸웠다.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부모님도 마음이 편해졌는지 말투가 전보다는 온화해졌다. 그래도 그 습성이 남아 "잘하는 짓이네요", 라든가 "애가 대책 없이 왜 그러냐", "엄마보다 얼굴이 크다"이런 얘기를 종종 듣곤 한다. 그럼 "내가 알아서 할게", "아빠 피가 섞여서 그렇지 어떻게, 나도 엄마를 더 많이 닮고 싶었어"라는 말로 받아친다. 그럼 오히려 부모님이 전투력을 잃어버려 KO상태가 되기도 하는데 그럴 땐 가서 애교도 좀 부리고 달래준다. 뭐 종종 싸우긴 하지만 사이가 좋다. 또 싸워줘야 갈등이 해결되는 거니까. 이젠 그러려니 한다.




 공감은 남에게 이해와 공감을 바라고 하는 건데 요즘은 그조차도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최근의 일이다. 같이 일하던 여자애가 내게 엄청 짜증을 내며 "넌 왜 공감을 안 해주는데, 너랑 얘기하는 거 너무 답답해. 넌 내게 이렇게 대했고, 저렇게 했고..."라고 말을 하는데, 그냥 감정을 내게 쏟아내는 느낌이었다. 그 자리에서 말을 자르고 말했다. "난 친한 친구한테만 공감해 줘, 넌 내 친한 친구도 아니고 그냥 같이 일하는 사람이야. 네 감정을 내가 감당할 이유가 없어. 네 감정은 네가 다스리고 본론만 말해" 참 그 친구는 늘 내게 감정을 쏟아내고 공감을 바랐다. 그렇게 잘못 스트레스를 받으면 공황발작이 올 위험성이 있는 나로선(그리고 애초에 일하는 사람이고, 친하지도 않은데 그러는 건 잘못된 거다.) 그걸 받아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말했더니 손님이 많이 있는 자리에서 욕설을 뱉으며 소리 지르고 가버렸다. 속으로 뭐 하는 짓이야 이렇게만 생각하고 말았다. 감정을 다스리고 있는 나로선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감정을 혼자 다스리니 오히려 편했다. 나 발롬이 된 건가? 이런 게 티발롬이라면 차라리 티발롬 하려고 한다.


요즘 사회에선 해결책을 말하면 "너 티야?"라는 소리를 듣는다. 물론 신나는 자리에서 초치는 말을 했을 때 그런 말을 하는 맥락인 거 같지만, 그 범위가 넓어져 자기가 원하는 공감이 나오지 않았을 때 그 말을 남용하는 풍조가 있다. 내가 구독하는 JACKY작가님의 글에서 "자 나 힘들다고 말했어 이제 공감해"라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에서 깨달았다. 아 그걸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구나. 내가 너무 F라이팅을 당하며 살았구나. 그렇다. 공감을 남용해야 하는 삶은 피곤하고 힘들다. 각자 적당히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남을 감정쓰레기통 취급하는 건 삼가야 한다. 그렇게 정제된 감정에 대한 공감과 해결책은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근데 이런 나를 티발롬이라 말하면 티발롬으로 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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