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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바람 Aug 03. 2023

진정제

버텨내는 삶

 사건 이후로 나는 아주 예민해져 있다. 쿵쿵 뛰는 불안정한 맥박과 심장소리,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미쳐버릴 거 같다. 이런 증상을 진정시키기 위해선 진정제를 먹어야 한다. 처음 불면과 불안 증상이 나타났을 때 그저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 증상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렸다. 잠에 들기 위해 진정제를 먹었다. 3개월가량은 진정제만으로 잠에 들 수없었다.


수면제를 쓰길 꺼려하시는 의사 선생님이, 이제 수면제를 내줬다. 뉴스에서 종종 말이 나오는 졸피뎀이다. 졸피뎀을 먹고 다른 진정제를 먹고 그렇게 약을 조합하니 잠을 잘 수 있었다. 정신과약은 다른 약처방보다 좀 더 어려운 것 같다. 우선, 약을 먹고 이틀정도 나와 맞는지 맞지 않은지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 만약 맞지 않으면 약을 바꿔야 하고 때때로 부작용에 시달리기도 한다.

한 번은 우울하다는 말에 의사 선생님이 항우울제를 처방해 주셨다. 이유 모를 어지러움이 지속됐다. 길을 가다가 땅이 꺼지는 느낌이 들고, 생전 처음 겪어보는 부작용이었다. '내가 *메니에르병에 걸린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 중 한 명이 메니에르병을 진단받고 땅이 꺼지는 어지러움증이 있었대서, 전화를 해봤다.

"혜인아 나 요즘 어지러움이 너무 심한데 나도 메니에르인 걸까?"

"나 우울증 약 끊고 어지러움 사라졌어, 그것 때문일 수도 있으니까 의사 선생님한테 물어보자"

그렇게 항우울제 복용을 중단했다. 서서히 어지럼증이 사라졌다. 이 날이후로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것에 대한 엄청난 반감이 생겼다. 이후로 종종 우울감을 느끼고 자살사고를 느꼈다. 선생님은 유럽에서 자주 먹는 우울증 약이라며 이번엔 부작용이 없을 거라고 다시 항우울제를 처방해 줬다. 그 항우울제도 나와 맞지 않았다. 복통을 유발했다. 찾아보니 속 쓰림과 복통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일부러 그 약을 먹지 않았다. 바로 의사 선생님께 가서 투정을 부렸다. 이 약도 나랑 안 맞아서 너무 먹기 싫다고. 선생님은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알겠다고 하셨다.


그 이후로 항우울제는 처방해주지 않는다. 부작용도 부작용이지만 이미 수면제와 진정제, 약의 힘을 빌려 일상생활을 연명해 가고 있는데, 항우울제까지 먹으면 내 안의 허용치를 한참 넘어버리는 것 같았다. 어떤 고집인 줄은 모르겠다. 난 빠른 시일 내로 호전할 거고 단약을 할 거다. 약을 먹고 버티는 삶이 내 목에 어떤 족쇄를 걸고 있다 생각한다. 그러기엔 벌써 1년째 약의 힘의 빌려 살고 있지만 말이다. 졸피뎀이 아닌 졸민을 복용하고, PRN도 처음보다 훨씬 미리수가 높아졌지만 말이다.


어떤 곳에 장기간 체류하려 해도 우선 약부터 생각한다. 수면제를 복용하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고 그렇게 잠을 자지 못하면 그날 하루를 날려버리기에. 필요시 약도 그렇다. 증상이 올라올 것 같을 때 그걸 잠재우기 위해 먹는 약을 필요시(PRN)이라 하는데 불안감을 느낄 때, 공황이 올 것 같을 때 그 약을 먹는다.


조금의 스트레스에도 불안증세가 올라오고, 약간의 충격에도 공황이 오는 나는 마치 개복치 같은 사람이 돼버렸다. 강인한 사람. 단단한 사람. 독립적인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나의 이상과는 아주 먼 사람이 됐다. 기질도 예민해졌다. 아무 곳에서나 곧 잘 자곤 했는데, 이제 장소가 달라지면 제대로 수면을 취하지 못한다. 한 번은 친구와 갔던 여행에서 약을 깜빡하고 두고 왔다. 그날 저녁에 감정이 올라왔고 PRN약도 들지 않았다. 그날은 심장이 뛰어 잠 못 들지 못했다. 그러다 왈칵 눈물이 났다. 억울했다. '나도 잘 자고 싶어. 난 왜 제대로 잘 수도 없는 거야'라며 짜증 부렸다. 온갖 감정이 같이 온 친구에게 향했다. 감정을 조절할 수 없었다. 진단서에 보면 '기분장애'도 기입이 돼있다. 내가 아무리 괜찮아지려 노력해도 마음이 아픈 건 쉽게 조절할 수 없었다. PTSD라곤 하지만 그 내부에는 여러 가지 진단들이 나열돼 있었다. 하지만 난 그것들을 보고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내가 아픈 걸 인정할 수 없다.  


감기에 걸리면, 목이 아프고 콧물이 나온다. 골절에 걸리면 붕대를 감고 뼈가 붙을 때까지 주의한다. 하지만 정신적 질병은 내가 어떤 상태인지 가늠할 수 없다. 괜찮다가도 갑자기 안 좋아진다. 상담선생님과 의사 선생님의 말로는 호전이 됐다가, 그만큼 더 안 좋아지고, 또 호전이 됐다가 더 안 좋아지고 이런 게 반복되다 보면 비로소 나아지는 것이라고 한다. 약처방을 위해 찾은 회사 근처, 강남의 한 병원에서는 그런 일을 겪었으면 2년은 꾸준히 약을 먹어야 한다고 한다. 숨이 턱 막혔다. 그렇게 좋아지려 노력했는데, 2년 동안 또 족쇄가 채워진 채로 살아야 한다니.


 종종 단약을 하라는 주변인이 있다. 정신과 약이 중독성이 있고, 이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좋지 않다고 말하며. '나도 약 먹었는데, 그거 그냥 끊어도 돼' 가볍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당장은 내 수면과, 내가 공황이 오지 않는 게, 일상생활을 견뎌내는 게 더 중요했다. 이런 말 또한 내게 상처였다. 의사 선생님과 상담선생님께 상황을 말했다. 두 분 다 비슷한 결의 말을 했다. 당장 내가 잘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는 거고, 다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지금까지 심한 공황은 3번이 왔다. 한 번은 혼자 있던 밤 갑자기 공황이 와서 응급차를 타고 서울 아산병원에 갔다. 새벽 3시였다. 같이 사는 도영이는 광주에 내려갔고, 나는 누군가에게 전화할 사람이 없었다. 평소 나는 어떤 환경에도 잘 살아갈 수 있는 강인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몸이 안 좋으니 그토록 의지할 사람이 필요했다. 병원에 가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고 의사 선생님과 30분가량 진료를 받고 진정제를 수액으로 맞았다.


의사 선생님은 수액을 맞고 나서 몽롱하기에 집에 돌아갈 때 보호자가 필요할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 내게 와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몽롱한 상태로 비틀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재영이가 집에 찾아왔다. '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라는 말에 재영이가 일 끝나자마자 오겠다 말했고, 간호사인 재영이는 어떤 응급실에 가야 할지, 지금 의사 선생님이 있을지 소방관과 직접 통화해 지시해 줬다. 정말 집에 와서 나와 함께 있어줬다. 나를 살게 하는 건 주변의 친구들이다. 내 삶의 버팀목이자, 평생 갚아야 할 빛을 갖게 하는 내 친구들.


두 번째 공황은 버스정류장이었다. 회사를 그만둔 뒤 나는 올림픽수영장에 가서 수영강습을 등록했다. 원래는 따릉이를 타고 다녔는데, 집 앞에 따릉이 정류장이 사라져 버스를 타고 간다. 1번의 환승을 거쳐 수영장에 간다. 어느 날과 다름없이 환승을 하기 위해 정류장에 앉아있었다. 어떤 할아버지가 인도와 도로사이의 보도블록에서 발을 잘못딪여 도로 쪽으로 넘어지셨다. 무릎이 원래 안 좋으셨고, 그 때문에 한참을 일어나지 못해 행인들이 몰려 부축해 119를 불렀다. 나는 가만히 지켜봤다. 평소의 나였으면, 먼저 나서 119를 불렀을 텐데 갑자기 구토감이 일었다. 구토감을 시작으로 또 땅이 꺼질 듯 머리가 어지럽고 호흡이 가빠져왔다. 비틀거리며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았다. 식은땀이 나고 이제 주변상황이 인지되지 않았다. 그냥 딱 죽을 거 같다는 표현이 맞겠다. 가쁜 숨을 쉬며 식은땀을 흘리고,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 20분가량 지속됐다. 환승을 하기 위해 기다린 버스는 이미 지나친 지 오래였다. 어느 정도 상태가 호전되고 나는 택시를 잡고 다니던 병원에 갔다. 계속 눈물이 났다. 도착한 정신의학과에선 담담히 접수를 받았다. 공황발작이며, 사소한 스트레스라도 주의하라고 말했다. 1시간가량 진정제를 맞았다. 1시간 동안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그러다 잠들었다. 이 두 번째 공황은 내겐 엄청난 충격이었다. 사건과 관련한 일도 아닌데, 그냥 지나가는 사고를 봤을 뿐인데 갑자기 내가 이런 상태가 되다니. 앞으로의 내 삶이 막막해지며 덜컥 겁이 났다.


세 번째는 오늘(23년 8월 2일)이다. 일을 시작하며, 스트레스가 조금씩 쌓였다. 양양에 와선 좋은 공기와 풍경 그리고 매일 바다에 들어갈 수 있는 환경. 이런 환경은 내 감정을 쉽게 컨트롤할 수 있게 했고, 서핑과 요가를 매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일하며 만나는 사람들과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그리고 자꾸 생기는 갈등들을 풀려 노력하지 않고 힘들다는 이유로 회피하는 환경에 조금씩 스트레스가 쌓였다. 여러 가지 갈등이 있고, 그걸 풀어가는 과정이 있었지만 그건 생략하도록 하겠다. 요 며칠간은 처방받은 약을 먹으며 버텼다. 몽롱하고 몸이 쳐지고, 하지만 그래도 묵묵히 할 일을 했는데, 약을 5알을 먹어도 그날은 유독 감정 컨트롤이 안 됐다. 그러다 갑자기 터져버렸다. 혼자 방에 올라가 상태를 가라앉히고, 엉엉 울며 구급차 좀 불러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응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도 공황발작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저 가라앉기만을 혼자서 버티거나 진정제를 맞는 수밖에. 내가 간 병원 의사 선생님은 진정제 투약을 하지 않는 의사 선생님이라고 했기에, 투약은 하지 못하고 또 약을 2알 더 먹고 버텨냈다.


정신과 질환이 또 어려운 게 결국 내 내면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 의사 선생님과 라포가 형성되지 않으면, 아예 진단자체가 어렵다. 상황을 알고 어떤 약이 맞는지를 꾸준히 이야기하고 먹어보고 해야 제대로 된 약을 찾는 건데. 갑자기 1회성의 병원을 가게 되면 그렇게 된다.


  진정제 투약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감정이 컨트롤되지 않은 상황은 정말 스트레스다. 그리고 이런 감정을 남이 받아줄 의무도 없다. 내가 안 좋아지면 그 감정은 내가 관리를 해야 하는 거고, 그 감정이 유발된 원인을 찾아내 해결을 하던가 다스려야 한다. 물론 나는 이 과정에서 진정제의 힘을 빌리지만 말이다.


내게 힘들 때마다 강변호사님은 내게 이렇게 말한다. '00 씨, 나중에 얼마나 큰 사람이 되려고, 지금 이런 시련들을 겪을까요.'라고. 정말 힘든 일들이 많았다. 하지만 딱 죽기 전까지 버틸 만큼의 힘든 일이었다. 이런 힘든 일이 있으면, 꼭 내게 좋은 사람을 보내 다 이겨내게 한다. 내 주변 사람들은 또 그렇다. 날 버텨내게 한다. 훗날, 나도 버텨내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받은 이해와, 관용은 평생 갚아도 모자라기 때문에.


난 나날이 좋아질 거다. 그렇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결국에 엄청 단단한 사람이 돼서 어떤 일에도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역량을 가질 거다.



용어

*메니에르 : 어지럼증, 청력 감소, 귀울림, 귀 먹먹함 등의 증상이 갑작스럽고 반복적으로 생기는 질병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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