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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바람 Aug 11. 2023

트라우마 #1

성범죄 PTSD를 이겨내려 노력 중입니다. 근데 생각보다 훨씬 힘들어요.

트라우마는 오래간다. 종종 드라마에 단골 소재로 나온다. 어릴 적 학대경험이 트라우마가 된다던지, 어딘가에 갇혔던 경험에 의해 폐쇄 공포증이 생겼다던지, 자동차 사고로 인해 그에 두려움을 떤다던지.

예전에 난 그런 소재를 참 가볍게 여겼다. 아니, 가볍게 여겼다기보다 진지하게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저 인물은 그런가 보다. 그저 드라마 캐릭터의 하나에 콘셉트로 봤으니까. 내가 겪어본 상황도 아니고 그런 상황을 겪을 거라 생각조차 해본 적 없다. 그런 내가 트라우마가 생겼다. 정확하게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다.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듯, 이제 타인도 나를 봤을 때 그럴 것이다.


 트라우마나 PTSD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많다. 나조차도 그랬으니까. 대학시절 동기가 치킨을 먹다 공황장애가 왔다. 그 친구의 원인은 명확히 물어보지 않았으나, "그냥 가만히 놔두면 돼"라고 말하며 치킨집 앞에 쪼그려 앉아 숨을 천천히 고르고 있었다. 나는 당시 그 친구를 이해하기 위해 공황에 관한 책을 읽었다. 그대로 공황이 왜 오는 거지? 하는 의문이 가득했고 사실 근본적인 원인이 해소되진 않았다. 그저 옆에서 등을 두드려주며 가만히 있으면 되겠군! 하고 단순히 생각했으니 말이다.


최근에는 내 트리거가 제대로 눌렸다. 서류가 누락됨에 있어서, 그리고 가해자 측에서 자꾸만 시간 끄려고 하는 행위가 신경이 어쩔 수 없이 그곳에 쓰이게 된다. 최근에는 일하던 곳에서 신체부위를 도촬 당했고, 좋게 좋게 끝내고 나오려 했으나 그 또한 내 건강을 악화시키는데 한몫했다.

이게 참, 코끼리 생각하지 마!라고 하면 코끼리가 생각나는 것보다 더 심하다. 그냥 멍 때리다가 도 나는 그 상황으로 돌아가고, 지금 글을 쓰면서도 도촬, 그리고 준강간 이런 두 가지 생각이 생각난다. 그냥 다시 회상하려 노력하거나 누군가의 물음에 답을 하는 것도 그 행위자체에 구역감이 일어난다. 그럼에도 구역감을 참으며 이 글을 쓰는 것은 그저 이해를 바라는 마음에서 일지도 모른다. 나조차 이해를 못 했으니 근본적인 원인과 증상들을 나열하면 적어도 아 트라우마가 이런 거구나 직접 겪고 있는 사람은 그렇구나를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최근엔 상태가 정말 좋지 않다. 그래서 더 안 좋아지기까지 계속해서 내게 집중하고 초기 진압하려 한다. 공황이 오면 주변사람이 당황한다. 나 공황발작이 올 수도 있어라고 말해도 정말 그걸 마주하면 정말 당황스럽고 무섭기 때문이다. 당사자도 그렇다. 진짜 딱 당장 죽을 것 같은 심정이고, 어지럽고, 두렵고, 숨도 안 쉬어지고, 땅이 꺼지는 거 같은데, 눈물도 계속 나고 몸도 덜덜 떨리는데 병원에 가면 막상 할 게 없다. 주변사람도 그렇다. 그냥 당황하며 어찌할 줄 모르고 지켜보는 상황이다. 병원에서 진정제를 수액으로 맞고 귀가하는 그뿐이다. 그래서 평소에 스트레스, 그리고 내 사고가 어떤 방향으로 향하는지 계속해서 집중해야 한다.

최근엔 상태가 안 좋아서 약을 안 먹고, 계속 불안해서 좋은 상태는 아니야 라는 말이 이런 답변이 왔다."그곳에 신경을 쓰지 말고 생각을 하려 하지 마. 그걸 왜 계속 생각하면서 혼자 고통을 받는 거야?"라는 말을 들었다. 덧붙여, "하지만 그게 힘들지? 널 완전히 이해하지 않진 않아"라 말했다.

 침묵했다. 그게 되면 나는 1년 동안 병원에 다니지 않았을 거고, 불안장애가 없을 거고, 공황이 오지 않을 거다. 자각하지 않으려고 이걸 잊으려고 별일 아닌 걸로 넘기려고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그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유 모를 아픔이 있고, 원인을 모르기에 더 상태가 중해진다. 그렇기에 난 늘 원인을 예측한다. 불현듯 사건과 관련한 꿈을 꾼다. 꿈은 무의식이다. 그렇기에 전날 있었던 일을 분석한다. 분석해 보면, 성범죄 관련 기사를 봤거나 가해자와 닮은 사람을 봤다. 아니면 사건이 회상될만한 경험을 했다. 꼭 그런 다음날이면 정말이지 무기력하다. 무기력을 거슬러 올라가면 원인은 꿈이다. 꿈이거나 무의식 중에 흘러온 관련기억들, 그 무의식은 내가 막을 수가 없다. 프로이트의 자아와 초자아 이러 것들을 따져봤을 때 초자아에 그 기억이 강렬하게 박혀있을 거 기에. 아마 영혼에 상처가 남았다. 이런 표현이 맞을 거 같다.

악몽을 꾸면 의사 선생님은 꿈을 조절할 수 있는 약을 처방해 준다. 효과가 있는진 모르겠다. 아예 깊게 잠들게 하는 게 원리인 걸까? 이젠 꿈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는다. 약물로 별다른 변화를 느끼진 못하기 때문이다. 꿈을 조절하는 약이 정말 있을까? 진료를 받으면서도 종조의문을 품곤 한다. 난 꿈을 정말 자주 꾸는데 그걸 조절하는 게 가능할지. 의구심을 의사 선생님께 드러내진 않는다. 사건이 지난 지금도 몇 번씩 비슷한 꿈을 꾼다. 가해자의 생김새는 잊었지만 자꾸 비슷한 상황이 나온다.




 사건 다음날 난 오히려 아무렇지 않았다. 어, 나 무슨 일을 당한 거지 어안이 벙벙했다. 나는 굉장히 취해있었고, 제정신이 아닌 채로 지인에게 전화했다. 나 이런 일을 당했어. 지인은 험하며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곤 굉장히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을 했다. "너 그거 의식 없고, 동의 없이 성폭행당한 거야" 충격받았다. 오히려 그 상황을 외면하고 싶었다. 내가 성폭행 피해자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지인은 이어서 말했다. "너 당장 거기서 기다려 나랑 같이 산부인과 가자, 그리고 진짜 제발 부탁인데 여기 해바라기 센터에 꼭 전화해 제발 지금 네가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이 들어도 꼭 전화를 해" 지인은 정말 내게 애원했다. 김포에서 정반대인 이곳까지 지하철을 타고 갈 테니 내게 기다리라 말했다. 그땐 그냥 멍했고 내가 무슨 일을 당한 건가, 진짜 내가 피해자라고, 이게 범죄야?, 내가 범죄에 당한 거야? 이 생각뿐이었다. 지인의 성화에 못 이겨 해바라기센터에 전화했다.

"어, 제가 무슨 일을 당했는데 지인이 전화해 보라고 해서요"

"아 네 무슨 일을 당하셨나요. 구체적으로 성취행? 성폭력? 강간?"

"어 그 단어들이 좀 힘들고, 사실 어떤 건지 모르겠어요"

"삽입이 있었나요?"

"네에"

"그럼 강간이네요. 경찰병원에서 조사를 받도록 하죠 가까운 병원으로 안내드릴게요"

"아뇨 전 그냥 우선 산부인과만 가볼게요. 나중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강간이라는 단어가 성범죄라는 단어가 내가 피해자가 된 게, 모두 내 잘못인 것만 같았고 믿을 수가 없었다. 같이 살던 친구가 아침운동을 갔다 왔고 이런 일이 있다고 말했다. 간호사인 친구는 침착하게 핸드폰을 꺼내 근처 크고 시설 좋은 산부인과를 찾았다.




병원에 도착했다. 사실 나는 만취상태였고, 기억자체가 정확하지 않았지만 내가 그런 일을 당했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당사자에게 전화를 하기로 했다. 만약 그 사람이 피임도구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그런 생각까지 들어 덜컥 겁이 났다. 가해자는 자꾸만 내 연락을 피했다.

"어제 일 기억나?"

"아니 어제 일 기억 안 나는데? 우리 무슨 일 없었어"

"나 산부인과니까 어제 피임도구 썼는지 안 썼는지 당장말해."

"어, 어제 피임도구 썼고 위험한 일 없었으니까 안심해"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위험한 일이 없었다니. 생각해 보니 아직도 화가 난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내게 그런 짓을 해놓고 아무 일도 아니라니. 그래도 확신이 생겼다. 없던 일로 덮어버리고 싶던 내 마음이 그러지 않았을 거야라고 설득하는 것이 한편에 있었는데 가해자가 저리 대답하는 걸 보니 그 기억이 맞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덧붙이는 말]

2022년 7월, 1년이 넘은 제 기억을 토대로 그리고, 자료들을 토대로 상세하게 적은 실제 기억입니다.

현재 형사재판 중에 있습니다. 혹, 상대측 로펌에서 이 글을 찾아 말 한마디, 어투가 다른 것을 재판에서 꼬투리를 잡을 수도 있어 제출한 증거물과 워딩이 다를 수 있음을 명시합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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