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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바람 Aug 15. 2023

내면의 나

나는 억울하고, 슬프고, 화나있어.

 진정제를 먹고 한숨 더 잤다. 원래 어떤 시간에 자도 새벽 5시 30분에서 6시에 깨곤 하는데, 약 덕분인지 9시까지 눈을 더 붙일 수 있었다.


꿈에서 나는 소리 지르며 울었다. 왜 나를 이해해 주지 않냐며 소지리르고 울고 불고 했다. 테이블을 쾅쾅 치다가 몸을 감싸 앉고 덜덜 떨었다. 그 상태가 나아지니 진정제에 잠을 참아가며 어딘가로 비틀비틀 걸어갔다. 전에 일하던 곳에서 나를 이해하지 않으려는 태도와 그 묘한 무시하던 감각이 나도 모르게 상처로 남아있었나 보다. 그게 순간이 나왔다. 아마 진정제 특유의 감각이 꿈에도 영향을 미치 듯하다. 파도의 너울은 처음 보는 모양으로 (마치 코사인그래프 마냥) 일어나고, 갈라진 바다사이로 사람들은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나는 졸음을 참아가며 어딘가로 계속해서 걸어갔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니 다음날이었다. 그다음 날은 범죄를 당한 순간이었다. 또 멍하다가 알람소리에 잠에서 깼다. 영혼에 상처를 받았구나 나는. 꿈에서 그렇게 소리 지르고, 울고, 다시 트라우마로 인해 그 순간으로 회귀하고. 잠결에는 자꾸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거나 카톡을 하는데 깨고 나면 그게 꿈인지 아닌지 분간을 못한다. 성정이 많이 좋아지고 나아진 듯 보이나 계속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언제쯤 그 기억이, 그 불쾌감이 잊힐까.


요 근래 나는 좀 무리를 했다. 3주 내내 쉬지 않고 일하고, 서울에 넘어가 병원에 가고 운동을 하고, 다시 양양에 넘어갔다. 양양에 넘어가서 일을 그만두고 제대로 놀아보자며 또 하루종일 열심히 돌아다녔다. 양양의 5개의 해변을 다 갔다. 그리곤 서울에 올라와서 또 수영을 하고, 서울에 친구들을 만나고 포항으로 내려갔다. 포항에 도착하고, 다음날엔 태풍이 올 예정이었다. 태풍오기 전 파도를 타고 싶었다. 그 거센 파도에 들어갔다. 거센 파도에 들어가은 과정조차 즐겼다.

내 슬픔과 억울함 그리고 아픔을 다른 곳으로 환기하싶었기에. 전에 상담을 받을 때 상담사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다. 전에는 성범죄를 당하면 그거에 대해 깊고 파고드는 식의 상담을 했는데, 요즘에는 다른 것으로 환기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고. 나의 환기 대상은 여행과 서핑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이렇게 서핑을 사랑하게 된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태풍 후에 파도가 좋다는 말을 듣고 금-일 일정이었던 울릉도 입도 일정을 바꿨다. 태풍이 와서 서핑샵이 쉬는 이틀에는 하루종일 책을 읽고, 브런치 글을 쓰고, 블로그 포스팅도 하고, 지인이 부탁한 인플루언서 마케팅 쪽도 좀 공부하고, 반신욕도 했다. 가만히 있질 않았다. 금, 토, 일 내내 서핑을 했다. 그렇게 하루종일 서핑하는걸 파워서핑이라고 하는 것도 처음 알았다. 모두 다 바다에 홀가분하게 털어내고 내 상처가 바닷물에 씻겨나갔으면 했다. 바닷물은 태풍 탓에 잔여물이나 쓰레기가 흘러와 깨끗하진 않았는데, 그 바닷물 보다 내 마음이, 내 상처가 더 더러웠다. 외면하다 보니 곪아 터진 거 같다. 그 물론 바닷물로 내 상처를 씻을 수 없었나 보다.

일요일까지 서핑을 실컷 하고 그날 밤늦게 배를 탔다. 울릉도로 넘어와서도 하루종일 투어를 다녀 하루 만에 울릉도 한 바퀴를 다 돌았다. 이제 포항에 가서 본가인 광주만 가면 나의 여행 일정이 끝난다. 그다지 짧지도 길지고 않은 여행이었다. 이제 어느 정도 목적의식이 사라지고 이제 집 가서 좀 쉬어야지 하고 마음먹으니 외면했던 감정들이 한 번에 몰려온다. 난 상처받았다. 괜찮다고 말했지만 정말 힘들었다. 재판을 기다리는 것도, 그동안 무기력하게 있던 나 자신도, 샵에서 당한 불쾌한 일도, 그냥 스쳐가는 성범죄 기사들도, 관련된 용어들도 모두가 다 힘들다. 그러나 이겨내야지, 하지만 너무 힘들어, 그래도 이겨내야지. 이런 생각들의 반복.


꿈이 참 고맙다. 결국엔 내가 상처받은 것들을 다 보여줬다. 남에게 이해받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내 상처를 알았으니 내가 이해하고 보듬어줘야지. 결국 다 낫게 할 거다. 나를 지극 정성으로 지키고 간호해야겠다. 지금은 회복이 우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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