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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바람 Aug 16. 2023

절규

날 좀 이해해 줘 제발.

 눈을 감으면 내 내면이 자꾸만 소리를 지른다. 이게 화가 나선 지 억울해서 인지 아님 무슨 다른 감정이 있는 건지. 아마 모두 다 인 것 같다.

  날 이해해 줄 것 같은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주곤 한다. 그 덕에 참 많은 사람들에게 데었다. 사람은 마음이 약해지면 그 마음을 이용한다. 이성적으로든, 종교적으로든, 금전적으로든 여러 방면으로. 약해진 사람은 참 꼬드기기 쉽다.

"응 난 널 이해해, 난 네게 도움을 주고 싶어." 그렇게 시작한다. 상처를 받은 사람인만큼 경계할 거다. 그걸 일주일정도만 변함없는 태도인척 연기하면 된다. 그럼 의지를 할 거다. 그때부터 가스라이팅을 하면 된다. "듣고 보니 네가 잘못했는데?", "네가 좀 이상한 거 아닐까"그런 말들을 한다. 그럼 약해진 사람은 "어? 진짜 내가 문제였나 보다" 생각하게 된다. 그럼 상대방을 더 의지하고 믿게 된다. 참 다루기 쉬워진다.


 이걸 왜 아냐고?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내가 경험했으니 안다. 그럼에도 벗어날 수 있던 이유는 다행히도 같이 사는 친구가 있었고, 내게 신경을 기울이던 친구들이 내게 다가오는 주변인을 경계했다. 그리고 아닌 거 같으면 바로 싫은 티를 내고 왜 별로인지 내게 확실히 말해줬다.


 사건 당시 내가 경찰서에 가서 신고하는 걸 도와준 분이 있다. 아무래도 남성이고, 성범죄를 신고하는 거다 보니 믿을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경찰분이 의심했다. 그래서 완전한 격리 후 따로 진술을 했다. 새벽까지 진술을 하고 집까지 데려다줬다. 아니, 데려다주는척하며 피곤한 붙잡고 첫차까지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래, 신고를 도와준 사람이니까 하는 마음에 기다려줬다. 결국 첫차가 아닌 택시를 타고 갔다. 그 새벽동안 '넌 이게 문제고 저게 문제고 이렇게 고쳐야 하고 그 일 말고 이일을 해야 해'하는 소리를 늘어놨다.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신고를 도와준 사람이 메신저로 내게 고백했다. '사실 너에게 사심이 있어서 도와준 거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길게 왔다. 난 지금 너무 힘들고 연애할 상태가 아니라고 좋게 거절했다.

 그다음 날 가해자한테 전화가 왔다. 받지 않았다. 회사에서 뛰어나가 울었다. 너무 놀랐다. 울먹이며 지인에게 전화하니 신변보호 신청을 하라고 했다. 경찰서에 가서 신변보호를 하기로 했다. 신고하는 걸 도와준 분이 자기가 같이 가주겠단다. 부담스러웠는데, 그래도 경찰서에 가는 게 무서워서 알겠다고 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길에 다른 선배가 걱정돼서 내게 전화했다. 잘 가고 있냐고. 잘 가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말했다. 옆에서 신고 도와준 분이 누구냐고 물어봤다.

"아 복수전공 선밴데 아무래도 내가 걱정돼서 전화했나 봐"

"넌 이 선배 저 선배 다 기대고 다니냐? 그러니까 네가 그런 일을 당하는 거야"

라며 내게 말을 퍼부었다. 추악한 질투로 보였으나 명백한 2차 가해였다. "그런 얘기하지 마 그거 2 차가 해야"고 말했다. 씩씩대면서 내가 무슨 가해자냐고 화를 냈다.


경찰서에 다녀오고, 시간이 좀 늦어지자 내게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피자가 먹고 싶대서 피자를 사줬다. 피자를 먹는 중에 엄마에게 전화 왔는데 끊자마자 눈물이 나서 막 울었다. 신고 도와준 사람이 데리고 나와 좀 걷자더니 껴안으려고 했다. 너무 놀라서 밀어내고 각자 집에 왔다. 아는 언니랑 집에 통화하며 집에 가는데 신고 도와준 분의 부재중 전화가 50개는 찍혀있었다. 지인분이 이 얘기를 듣더니 핸드폰 줘봐라고 다신 연락하지 말라는 장문의 카톡을 보냈고 차단 결말을 맞았다.


 그 이후로도 내 약한 마음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종종 있어, 절대 약해진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마음이 약한 걸 이용하려는 간사한 사람은 늘 있다는 걸 꼭 기억해야 한다. 힘들면 이해받고 싶다. 남에게 기대고 싶다. 그걸 이겨내야 한다. 정말 믿을 만한 주변인들에게 기대거나, 그럴 사람이 없다면 국가에서 지원해 주는 상담제도도 있다. 특히 성범죄 관련 상담은 24시간 운영하고 있다. 1366이다. 우울증이나 상담 관련 기관도 찾아보면 모두 있고, 검색해서 적극적으로 이용하자. 아무리 힘들고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계속해서 들 거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내가 먼저먼저 나를 이해해야 한다. 절대 나를 비난해선 안된다. 내 상태를 계속해서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 적절한 자가처방을 할 수 있다. 힘들수록 강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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