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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바람 Aug 28. 2023

사회, 내면의 목소리

사회가 새긴 물결을 지워내자

 지난 몇 년은 고통스러웠다. 아마 나의 내면의 목소리와 방향을 무시한 탓이겠지. 이런저런 핑계도 좀 대곤 했고, 사회적인 제약도 있었다. 여기서 사회적인 제약은 코로나로 인해 외출과 출입국이 자유롭지 않은 탓이다.


 난 줄곧 여행을 하며 글 쓰고 싶었다. 이 꿈의 기억은 16살 때부터다. 먼지 쌓인 내 꿈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무의식 중에 그 방향으론 가고 있으나, 원인 모를 방황이라 참 답답했다. 이젠 그 먼지를 거둬내고 직면했기에 명료하다. 답답하지 않다. 오히려 미래를 보며 셀레는 마음을 추스를 뿐.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한 사람의 삶을 알아가는 게, 고충들을 듣는 게 너무 재밌다. 오지랖이라곤 하지만 해결책을 찾아내려 하는 과정도 좋다. 학부생 시절 나는 기자로 활동했고, 담당 선생님의 말대로 '발로 며'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를 하면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제해 글로 전하는 게 행복했다. 비교적 좁은 사회인 그 대학에서도 수많은 이야기들이 많은데, 더 넓은 세상엔 얼마나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을까. 지금까지의 경험을 생각해 보자. 난 아직 어리고 어리석다. 배움도 적다. 아직도 우물 속 개구리다. 그래서 너무 신이 난다. 세상에 공부할게 투성이고, 세상의 원리를 하나하나 알아감으로써, 새로운 사람의 유형을 알아감으로써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 너무나 즐겁다. 아직 내가 모르는 세상을 얼마나 더 많을까. 내가 모르는 고통은 얼마나 많을지, 내가 모르는 행복은 또 얼마나 많을지. 난 어디까지 이겨낼 수 있을지. 그것들을 찾고 도전하고 싶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 내면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가족으로 이뤄진 작은 사회부터 시작해, 학교, 직장, 커뮤니티, 지역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 그 전부가 사회다. 내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가장 큰 사회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겠지?

 어떤 책에서 그랬다. 책을 먹어치우듯 읽으며 메모를 게을리한 탓인지 제목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사회는 우리의 몸에 물결처럼 남아있다고. 그 물결이 무의식 중에 사고를 지배한다고.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랬다. 나름대로 목포에서 나서, 광주로, 대학은 전북으로, 알바는 경상도, 경기도로, 강원도로, 회사는 서울로, 여행은 동해와 강원도의 여러 도시를 진전했다. 울릉도와 제주도 섬까지. 그렇게 경험한 지역사회의 어투(방언)와 사고는 다 조금씩 달랐다.


 음식에서도 지역사회의 차이가 뚜렷했다. 이 좁은 나라에도 있는 그 미묘한 차이들이 참 신기했다. 내가 어릴 적부터 먹어온 순대와 생고기가 그랬다. 우선, 광주는 순대를 초장에 찍어먹는다. 나는 초장에 들깨가루를 듬뿍 넣고 막 섞어서 순대와 내장, 곱창을 푹푹 찍어먹는 걸 좋아한다. 거기에 광주나 전남지역에서만 파는 암뽕순대가 제일이다. 양파와 함께 먹으면 느끼한 맛까지 잡힌다. 타지에 가서 암뽕순대, 초장에 대해  말하면 '그건 뭐야? 초장을 찍어먹는다고?' 하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떤 사람은 순대엔 소금이 제일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된장이 제일이라 한다. 그래도 초장 찍어먹으니까 맛있던데? 하면 헤헤하며 뿌듯한 미소를 짓는다. 암뽕순대 얘기를 꺼내면 "그건 처음 들어봐"라는 얘기를 한다. 그럼 나는 흥분해서 눈을 반짝이며, 광주나 전남에서만 먹을 수 있는 순대니 꼭 먹어보라 말한다. 강원도의 아바이순대 저리 가는 맛이라고 말한다.

암뽕순대와 들깨가루를 섞은 초장


 생고기도 그렇다. "광주에 생고기가 진짜 맛있어 꼭 먹어야 해"하면, "그건 또 뭐야? 대구의 뭉티기 같은 거야?"라고 한다. 대구의 뭉티기와 비슷하긴 하다. 전남의 생고기는 앞다리나 우둔살을 가져와 당일 도축된걸 얇게 혹은 조금 두텁게 기호에 따라 썰어 먹는다. 참기름과 초장, 마늘을 섞은 막장에 찍어먹어야 한다. 뭉툭하게 썰어낸 뭉티기와는 차이가 있다. 말 그대로 당일 도축됐기에, 아직 사후경직이 덜 풀린 상태라 더 찰지고 쫀득한 식감을 느낄 수 있다. 하루가 지난 고기는 육회라고 한다. 육회는 더 잘게 썰어 계란 노른자와 배와 함께 먹는데, 생고기는 그 본연의 맛과 식감을 해치지 않기 위해 무언가를 곁들여 먹지 않는다.

깨가 너무 많이 뿌려졌던 생고기
구이용처럼 썰어 한장씩 올린 생고기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육회와는 다르다. 서울의 육회는 갈아서 냉동된 상태이거나 작게 조사서 양념에 무친다. 아빠의 말로는 질이 안 좋은 걸 감추려고 하는 것이라고 한다. 약 한 달 전 강원도 양양에서 생고기가 있냐고 찾았으나, 당일 도축된 고기를 먹는 건 불법이라고 어디서 그런 걸 들었냐며 타박을 줬다. 나는 어릴 적부터 생고기를 먹어온 터라 오히려 타박을 주는 정육점 사장님이 이상했다. 또 알아보니 경매하는 소는 생고기를 떼어올 수 없는데,  내 축산에서 길렀거나 데려온 소는 떼올 수 있다고 한다. 전남에선 대게 후자의 방식으로 도축이 이뤄지기에 생고기를 흔히 먹을 수 있다. 1차 산업이 특히 발달된 전남에서만 가능한 일이지, 대부분 경매로 고기를 가져오는 타지에선 먹을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이렇듯 각자 당연하다 생각하는 게 살아온 환경에 따라 달랐다.  


또,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중국인 친구인 해천이와 나는 살아온 국가와 환경이 다르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서로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게 각자에겐 놀라운 것들이다. 해천이는 98년생으로 나와 동갑이다. 참 신기하게도 인생의 속도가 비슷했고, 고민도 비슷했다. 졸업할 때쯤에는 대학원과 취업에 대해 고민했고, 취업하고 나서는 임금과 집 물가에 대해 고민했다. 취업을 하고 나서는 나중에 각자의 국가에서 일하고 싶다는 고민을 토로했다. 그리고선 마지막은 각국에 언어에 대한 궁금증, 현지 사람이 느끼는 각 국가의 정서에 대해 이야기했다. 두 명다 평화주의자라 그런지 생각하는 게 대게 비슷했다. 하지만, 다른 점은 대학원에 대한 관점이었다. 한국에선 대학원에 가는 것에 대한 인식이 그저 그렇다. 긍정적이기도 하나, 금액이 드는 것, 취업이 늦어지는 것 탓에 부정적인 면도 있다. 대학원생은 사람이 아니며, 농담으론 전생에 죄지은 사람이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다.(물론, 학부생 당시 대학생들의 견해였다.) 하지만 중국에선 달랐다. 학사냐 석사냐 박사냐에 따라 임금차이가 천차만별이다. 오히려 직장에서도 대학원까지 졸업한 사람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부모들이 적극적으로 대학원 박사까지 가기를 희망한다고 한다. 한국에선 석박사를 취득하면 오히려 회사 측에서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하니, 해천이도 놀랐다. (또 아직 사회를 제대로 겪어보지 않은 초년생들의 대화다. 이 부분은 실제로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참 겪어온 사회의 물결의 형태는 너무나도 다르고, 그 물결은 사고방식을 넘어 기본적인 식습관에 까지 베여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사소한 물결들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아닐까? 나는 이런 태도를 가지고 늘 내 물결을 인지하고 타인의 물결까지 그걸 너머 내 물결을 다른 형태로도 바꾸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각자의 물결을 기록하는 사람 또한 되고 싶다. 가장 좋아하는 소설을 꼽으라면, 나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선택하겠다. 유명한 문장 하나가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이곳에서 압락사스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는데 신이기도 하고 악마이기도 하다. 나는 여기서 알은 사회이고, 알에서 나오려는 새는 그 사회에서의 고정관념과 선과악의 인식을 깨려는 시도로 받아들여졌다. 난 아직 알에 갇혀있고, 다리에 온 힘을 줘서 그 알을 깨려고 노력한다. 그 알을 깨기 위해선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듣는 것. 이것이 나의 내면의 소리이자, 나의 꿈이다. 내 몸에 새겨진 사회의 물결을 지우고 싶다. 온전한 나의 물결로 만들고 싶다. 허나, 명확한 나만의 윤리적 잣대는 세워놓은 채 말이다. 윤리 공부도 열심히 해야겠지. 난 결국 알에서 나올 거다. 알에서 나오기 위해 부단히 경험하고 노력할 거다. 그런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늘 되새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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