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바람 Aug 30. 2023

기분장애

두 번째 화살을 내게 쏘지 말자

 나는 기분장애를 앓고 있다. 참 정신적인 질환을 정말 정말 인정하기 싫다. 그러나 불현듯 쳐지고 무기력해지는 것은 기분장애라는 용어가 아니면 표현할 수 없다.

 언더아머에서 매장세일즈 일을 시작했다. 평소 하고 싶던 일이었다.  타 스포츠 브랜드는 캐주얼이나 패션브랜드 일상복적인 요소들이 섞여 운동복과 일상패션 그 중간의 포지션에 위치한 곳이 많다.  나, 언더아머는 진성 운동인들을 위한 스포츠웨어나 슈즈, 악세사리를 만드는 브랜드이기에 더 신이 났다. 땀이 많아 흡수가 잘되는 재질에 고등학생 때부터 집착 아닌 집착을 하게 됐는데, 가격대비 완전한 운동복 재질, 성능을 갖춘 브랜드가 딱 언더아머였다.

매장에선 언더아머만 입고 신어야한다.

그 때문인지 언더아머 단속반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이 생긴 것 같기도 하다. 스포츠 브랜드 매장에서 일을 하는 것은 대학시절부터 내 이상이었고, 마침내 시작하게 됐다. 평소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브랜드에서 추구하는 종목의 라인들, 브랜드 스토리와 기원을 찾다 보니 설레는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크지 않은 매장이지만, 점장님과 나 둘이서 일을 했고 휴무가 있는 날엔 매장관리 및 판매를 내가 해야 했다. '배울게 많아서 오히려 너무 좋은걸'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인스타와 블로그운영, 점장님도 원하는 바였지만, 2명이서 매장을 운영하기에 여건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 제가 해볼게요 하며, 여러 콘텐츠들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또 내 일을 만들었고, 세일즈뿐 아니라 지역 아웃렛에 위치한 매장의 인지도를 위한 디지털 마케팅도 맡게 됐다. 우선 블로그 개설까지, 그리고 이제 배너 디자인을 하고, 브랜드의 방향성을 공부해야 한다. 언더아머의 기원부터 시작해 펼치고 있는 사업들, 현재 어떤 선수를 인도스 먼트 및 스폰서십 하고 있는지까지. 그런 것들을 공부하면 글을 쓸만한 콘텐츠가 나올 거고 해당 키워드에 지속적인 검색 노출이 된다면 소비자 여정에 따라 구매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해는 생각이었다. 이에, 스포츠 브랜드나 운동복, 운동화, 액세서리 등의 재질 분석을 위해 티스토리까지 개설해 버렸다.

 하지만, 또 그런 생각들에 빠져있느라 세일즈를 위해 고용됐다는 걸 잊었다. 매장 내에 어떤 제품이 있는지, 어떤 재질인지, 어떤 용도에 적합한지, 제품의 특징은 어떤지, 가격대는 어떤지 그런 것들을 먼저 숙지해야 했다. 다른 곳에 정신이 새서 정작 세일즈를 열심히 해봐야지! 하는 게 뒷전이 돼버린 거다. 하루종일 리서치를 하고 콘셉트를 잡아보고 참. 본질적인 것에 집중을 하고, 그 이상을 해내야 하는 건데 본질을 잃은 나 자신이 조금 창피했다. 또 마음만 앞섰다.

 마음만 앞서는 것은 매번 있는 일이다. 일이 끝나고서는 주짓수와 MMA를 함께하는 도장에 가서 등록했다. 알아보니 광주 1등인 도장이며, 다들 운동에 미쳐있는 사람들이 가득하다고 한다. 3년 전, 함께 운동했던 고등학교 2학년 친구는 훌쩍 성인이 돼서 일본 아시아 선수권에 나가 메달도 따왔다고 한다. 한 곳에 잘 머무르지 못하고, 늘 하고 싶은 것이 많아 체력은 고려하지 못한 채 타이트한 스케줄을 안배해 버리고만 마는 나 자신에게 조금 지쳐버렸다. 결국 성과도 내지 못하고 이런저런 핑계로 나가떨어지고 마는 나 말이다. 그런 내가 좀 싫어서, 내가 좀 좋아졌으면 하는 마음에 수영도 하고, 일도 하고, 서핑도 하고, 글도 열심히 쓰고, 미뤄왔던 꿈들도 이루려 한다. 의욕이 넘치다가도 이내 파도처럼 밀려오는 무력감에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끝은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않는다.

지안이에게 책선물을 받았다. 캐나다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며, 류시화 작가님의 글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근래 힘든 일이 있다는 걸 알고 이 책을 선물로 보내줬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라는 책이다. 책에선 그런 말을 한다. 나 자신에게 두 번째 화살을 쏘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서 두 번째 화살은 타인의 평가나 말에 받은 상처를 되새김하는 행위인 것이다. 나는 끊임없이 되새김질하고 내게 수백 개의 화살을 쏘고 있다. 이 수백 개의 화살은 내 머릿속을 맴돌고, 결국 내 마음을 박살 내 모든 의욕을 상실시키고 만다.

화살을 그만 쏘자. 화살이 날아오면 그걸 어서 뽑아버리고 치료를 하자. 부정적인 사고와 되새김은 결국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냥 과거의 내 선택을 믿고 하면 되는 것이다.

맞아. 그냥 해버리면 된다. 힘들면 쉬면 된다. 체력이 바닥까지 소진되지 않게만 잘 관리하면 된다. 내 우울은, 내 기분은 체력이 바닥에 소진되면 더 심해지니까. 나를 좀 달래주자, 나를 좀 오냐오냐 해보자. 그래도 괜찮을 거다. 괜찮을 거다.

작가의 이전글 사회, 내면의 목소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