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인지하고 싶지 않고, 늘 외면하지만 그 사건에 대한 재판에 대해 관심이 쏠린다. 최종선고는 10월 10일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했고,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음에도 자꾸만 그날짜가 상기되면 불안함에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은 이유가 없는 일은 아닐 거다.
사건을 1년 넘게 진행하고, 겪어오고 버텨오면서 느낀 건 세상은 참 음양오행의 균형이 잘 잡혀있다는 거다. 한 사람 때문에 큰 상처를 입었지만, 그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내게 여러 명을 내려줬다. 그중 한 분은 강변호사님, 그리고 의사 선생님, 도영이 혜인이 재은이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 참 고생을 많이 했다. 나를 케어해 주고 옆에서 격려해 주고 북돋아 줬다. 그 때문에 나는 지금까지 살아있는 거겠지. 이렇게 살기 위해 엄청 큰 일을 주고 또 그걸 이겨낼 사람과 능력을 준다. 이게 있어선 안될 일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이 일이 있었기에 단기간에 성장을 좀 했다. 조금 시니컬해지기도 하고, 현실을 목도하며 세상을 알아갔다. 그래도 타협은 잘하지 않는다.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져야 마땅하고, 내가 생각하는 잘못된 것의 기준은 사람에게 피해가 가는 것이기에. 상처를 주는 것이기에. 이런 기준으로 여러 관점을 가지면 참 어려운 문제지만. 이런 것에 균형을 가지고 여러 관점을 알기 위해선 많은 공부와 경험이 필요할 터.
성폭력위기센터상담을 다녔다. 1366에서 근처 위기센터를 연계해 줬고, 나는 거기서 상담을 받았다. 갑자기 안 좋아지면 무조건적으로 그곳에 전화해 엉엉 울기도 하고, 이런 일이 있었다. 자꾸만 생각난다. 너무 힘들다. 하며 절박하게 애원했다. 선생님들은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씀을 주셨다. 그렇게 상담을 받다가 전문적인 상담이 또 받고 싶었다. 사실 받고 싶었다기보다 주변 지인이 나를 걱정해서 당장 하루에 1번씩 상담을 다녀도 모자란데 일주일에 한 번 다니는 게 무슨 말이냐며 어서 상담을 잘 다니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상담의 횟수보단 그냥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줄 사람이 필요했고, 내가 부당한 일을 당했다는 걸 계속 말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참 많은 질문을 들었다. 그 사람과 연인이었냐, 썸이 아니었냐, 내가 여지를 준 것이 아니냐, 동의를 한 것이 아니냐 같은 그런 질문들 말이다. 해당사항이 전혀 없다. 그렇기에 명백한 것이다. 나는 술에 취해 기억이 중간중간 끊겼고, 추후 재판에서 cctv를 보니 몸조차 혼자 못 가눠 바닥에 쓰러지기 직전이었던 사람이었다. 처음엔 마냥 자괴감과 수치심과 이유 모를 불안과 미칠 것 같은 심장 두근거림에 그리고 계속 상기되는 그 하나하나 잊지 못할 기억에 미치는 줄 알았다. 무기력함에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아무것도 안 하며 지내는 나날들. 하나, 이제 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선 내가 확실한 태도를 보이고, 이 상처에 대해 가해자가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형사소송을 거쳐 나는 민사소송까지 갈 거라는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형사고소를 갈동안 가해자 측에서는 미안하다는 연락 하나 조차 하나 없었다. 변호사를 통해 합의하자는 말도, 자신의 잘못이라는 말도 없었다. 이건 시간 끌기다. 인정을 하게 되면 벌을 받게 되고, 벌을 받게 되면 무조건 감옥에 가게 되는 죄목이다.
'준강간 치상' 이것도 원래는 그저 '준강간'이었다. 이렇게 죄목이 달라진 것에는 이유가 있다. 자신의 잘못을 부정하며 시간을 보내다 증인참석으로 피해자인 나를 2번째 형사재판에 불렀다. 증인이 참석으로 재판장에 불려 가게 되면 교통비 5만 원을 주더라. 나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전날 병원에도 가서 더 센 약으로 처방을 받았다. 그리고 혜인이도 손을 잡고 같이 가줬다. 강변호사님도, 위기센터 상담사님도 대동해서 참고인 대기실에 다 함께 앉아 있었다. 나는 괜히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시답잖은 농담을 하며 앉아 있었고, 변호사님과 상담사님은 명함교환을 했다. 혜인이는 내 손을 잡고 '잘할 수 있어'라고 계속 되뇌었다.
마음이 든든했다. 강변호사님은 또 이렇게 말했다. 증인으로 참석했을 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온 것은 처음이라고, 내가 좋은 사람이라 그런 거라고 그런 말을 하셨다. 그런 말을 해주시는 변호사님이 좋은 사람이면서.
진정제를 집에서 한 봉지 먹고, 대기하면서 한 봉지를 더 먹었다. 그리고 시간이 돼서 재판장에 들어갔다. 내 오른쪽에는 가해자 측 변호사가, 그리고 왼쪽에는 검사님이 정면에는 판사님 3분이 계셨다. 내 나이 만 24 형사소송도 겪어보고 재판장에 앉아있는 경험도 해보게 된 것이다. 경험욕이 많다지만 이것까지 경험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데. 아무튼.
그 재판에서 나는 참 많이 공격을 받았다. 상대측 변호사의 말도 안 되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상황이 기가 막혔다. '피해자가 먼저 만나자고 했죠? 그렇죠?'부터 시작해서, '모텔에서 부끄러우서 안기신 건가요?'라는 질문까지. 기가차고 어이없는 질문들이 많았다. 부끄러워서 안겼다는 말이 참. 가해자 측에서 나의 아픔을 하나의 포르노 소설로 작성해 낸 그 의견서가 스쳐가더니 기분이 아주 x 같았다. 그거 참 어이가 없던 말인데 잘됐다. 라 생각하며, 침착하게 말했다. (나는 화가 나면 침착해지는 편이다)
"제가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는 변호사님이 어떻게 아는 부분인 건가요? 그건 객관적 지표가 아니라 제 감정을 어림짐작한 것이 아닌가요?"
"그래서 모텔에 처음 간 사람은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자료가 있습니다. (자료 발췌 : 네이버 지식인) 부끄러움을 느끼셨나요? 느끼셨는지만 대답해 주세요"
하머 나를 몰아붙이는 것이다.
"전 당시 그 감정을 느끼지 않았고요, CCTV자료가 있다면 제가 확인하고 싶습니다."
라 말했다. 재판장에서 판사님들과 검사님. 그리고 가해자 측 변호사가 있는 자리에서 그날의 모텔 영상이 틀어졌다. 나는 안겼다기보다 쓰러지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그 영상을 보자니 더 구역질이 밀려왔다. 불안발작의 전조증상이었다. 영상 속 쓰러지는 나를 보며 헛구역질을 해댔다. 뒤에 있던 혜인이가 내 손을 꼭 잡았다.
"참고인 힘들면 다음 재판에 오셔도 됩니다. 재판을 중단할까요?"
"싫습니다. 다른 영상은 더 없나요? 다른 영상을 더 보고 싶습니다."
약을 한 봉지 꺼내 약을 먹었다. 진정제를 너무 많이 먹었다. 그럼에도 증상이 계속 올라왔다. 그럼에도 이 사건이 늦춰지는 게 너무 싫었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하루하루 고대하며 기다리는 건 내게 너무나도 큰 고통이었다. '만약 그 사람이 무죄면, 내가 잘못이 있는 거면, 재판장에서 그렇게 보는 거면.' 하는 걱정을 하다가도 주면의 다 괜찮을 거라는 말에 풀어지고. 그런 것들의 반복이었다.
나는 그 구역질을 참아내고, 증상들을 약효로 눌러가며 변호사와 설전을 벌였다. 이 영상을 보고 어떻게 그런 감정을 유추해 낼 수 있느냐고 따져 물으며 논리 없는 언쟁으로 번졌다. 재판장님의 제지가 있었다. 내가 증상을 그렇게 보인 이후로 재판장님들이 조심스러워졌다. 내게 민감할 수 있는 질문은 다 넘기고 다른 질문만을 했다. 그 질문들이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데, 참 피해자 입장에서 너무 못된 질문이고, 어떻게든 내가 먼저 그런 일이 있도록 주도하는 질문이었다. 다행인지 아닌지 그간 1년을 나 혼자 자책하는 시간이 아닌,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보냈다.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주변에서 기어이 나를 잡고 끌어올려줬던 사람들이 태반이었어서, 내게 그런 질문들은 나를 건드릴 수 없었다.
그렇게 못된 질문들을 받다가, 재판장님의 질문이 끝나고. 증인참석이 끝났다.
"피고인 질문할 게 있나요"
재판장님이 말했다. 그제야 가해자가 같은 공간에, 방에 들어가 내가 하는 말과, 내 증상들을 모두 듣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방안에 들어가 있고, 철저하게 격리된 공간이었다. 퇴장할 때쯤에야 그곳을 인지하고 응시했다. 가해자는 한마디의 질문도 없었다. 지금 무슨 생각 일까
내 기억 속 가해자는 과선배였고, 함께 수업을 들었고, 이것저것 잘 알려주려 노력하는 좋은 선배였다. 그런 선배가 내게 그런 짓을 했다는 것도 정말 충격인데, 내가 그런 사람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가지게 했다는 그 상황도 너무 충격이었다. 사람을 미워하며 살고 싶지 않은데, 이 상처는 너무 커서 내가 용서를 할 수가 없다. 1년이 넘게 아파왔고, 앞으로도 그 사건으로 인한 후유증은 계속될 것이기에.
그렇게 증인참석을 하고 남은 건 기다림. 그리고 또 기다림 뿐이었다. 나 자신을 추스르며 이제 슬슬 일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며 시작했던 서핑샵 일에서 비슷한 일을 겪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내가 겪었던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 말했다. 어찌 보면 너무나 큰 송사, 사건을 겪어서 다른 일은 이제 내게 작아져 버린 거다. 그리고 문두에 10월 10일이 최종선고 일이라고 했는데, 10월 5일이 최종선고이었다.
참 신기했다. 어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아침부터 참 기분이 묘했고, 오랜만에 트라우마 시리즈를 적어 내려야겠다 마음을 가지고 구토감을 참으며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기운이 너무 달려 덮어두고 도서관에 갔다고 오고, 우체국에서 선물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 쉬고 있는데 강변호사님께 재판결과가 어떻게 됐냐는 연락이 왔다. 10월 5일 2시 바로 당일이었던 거다. 어쩐지 기분이 참 이상했다. 4시 30분 정도 재판 결과가 '내 사건조회'에 바로 떴다. 결과는 실형으로 법적구속을 당했다. 가해자는 바로 실형을 살게 됐다. 처음 해보는 법정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거다. 이런 일련의 과정으로 내 상처는 한시름 나아지고, 이걸 겪어냄으로써 한층 더 성장했다. 그러나 그걸 견뎌내는 매 순간순간이 참 힘들었다는 말은 꼭 하고 싶다.
이제 새로운 시작이다. 가해자는 지금껏 합의 요청을 한 번도 하지 않았고, 경찰조사 때부터 변호사를 선임했으며 아직까지 자신이 무죄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쳐내고 있다. 그탓에 괘씸죄가 가중됐겠지만. 바로 민사소송에 들어가려고 한다. 아마 다음시리즈는 민사소송을 겪어내며 풀어내는 이야기일 것 같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가장 먼저 강변호사님, 그리고 위기센터, 도영이, 혜인이, 재은이, 주형형, 지민언니, 그리고 나의 x들. 그리고 수많은 사람덕에 이런 결과를 이뤄냈다. 참 감사하다. 세상에 갚아내며 살 거고, 성공적인 케이스의 피해자(?)가 돼서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직 내 송사를 끝마치지 않은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만 말이다.
4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