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는 언제나 어렵다. 흔히 사람들은 연애를 시작하기 직전 나오는 설렘이 좋다고 말한다. (내 주변 사람들은 그랬다.) 그러나 나는 그 설렘을 썩 좋아하진 않는다. 불안증이 있어서일까, 설렘과 불안을 구분하지 못한다. 이 사람에게 있어서 느끼는 게 설렘인지 아니면 잃게 될 두려움인지. 그런 감정들이 마구 밀려오고 나면 마지막엔 구토감이 인다. 마지막엔 두려움만이 나를 덮친다. 대게 그 두려움의 원인은 '상실'이다.
상실하지 않을 편안함을 추구해, 편안한 사람을 갈망한대도 결국 어떤 것이든 인연의 끝은 상실이다. 맺고 끊음이 확실한 연인관계에선 상실이 더 도드라진다. 백년가약을 맺을 상대가 아닌 이상 그 관계는 시작부터 끝을 향해 달려간다. 끝에 다 달으면 그 인연은 더 이상 걷잡을 수 없다. 끊어진 연을 애도하는 수밖에.
그 끝이 싫고, 상실이 싫고 허전함이 싫어서 친구라는 이름으로 혹은 지인이라는 이름으로 남고자 한 사람도 있었다.
이별 후의 전화.
"있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너만큼 얘기가 잘 통하는 사람은 없어. 그냥 친구로 지내자."
"그래 나도 여전히 너랑 이야기하는 게 제일 즐거워 근데 왜 날 찬 거야?"
"그건 미안해,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냐면.."
그렇게 2주간의 한 손 안에 셀 수 있는 통화. 아무리 쿨한 척을 해보고, 웃음으로 때우려 해 봐도 진보된 관계는 다시 돌아설 수 없다. 상처받은 마음에는 몇 겹의 벽이 쌓여버렸다. 진보가 없는 관계는 미래가 없고, 그런 관계는 놓아주는 게 맞다. 놓아서 잘 보내고, 잘 정리해야 새로운 인연을 맞이할 수 있기에. 결국 그런 욕심은 서로의 미련과 이기심임을 알기에.
그렇다고 인생에서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내 인생에 이미 지나간 순간을 함께 했고 그 순간은 더 이상 사라질 수 없다. 마음껏 애도하고, 마음껏 그리워하고, 마음껏 미워도 하고. 거기서 내 기호를 발견해 본다. 난 이런 다정함을 좋아하는구나. 난 이런 덤덤함을 좋아하는구나. 난 이런 편안함을 좋아하는구나. 다음번엔 난 그래야지, 다음번엔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성장해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