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생각

by 바다바람

1.

요 근래 한 달은 계속 아팠다. 정말 좋아하는 초밥을 잘못 먹어, 급성장염과 위염 식도염에 걸리질 않나. 한 달 정도 조심하다 겨우 나으니, 몸살에 감기가 걸리지 않나. 사건 이후로 가지고 있는 지병은 동반자로 늘 함께하질 않나.

며칠 동안 지속되는 미열과 통증에 꽉 차 있던 일정을 모두 빼고 하루 드러누웠다. 계속되는 불면으로 잠이 통 모자랐었는데, 그걸 모두 만회하듯 하루 종일 잠만 자고 먹었다. 푹 쉬고, 잘 자고, 잘 먹는 게 현답이 맞았나 보다. 꽤나 좋아졌다. 어느 순간 몸이 아프면 머릿속에 자리하는 생각이 있다. " 한심하게 몸관리를 안 해서 왜 아프지?"라는 것이다. 글에선 꽤 담백하게 한 문장으로 풀어냈으나. 아픈 내내 머릿속에 초조함이 떠나지 않았다. 몸이 아프면 생산성이 떨어지고, 일을 못하고, 제 일을 해내지 못하고, 공부도 하지 못하는데. 사회에 속한 일원인 내가 그 일을 못해내는 게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난 사회성이 없나를 머릿속으로 운운하는 게 아픈 몸에겐 미안하지만 그런 상념이 가득했다. 아픈 것이 조급해지고 불안한 건. 한국이라는 사회가 만든 한국인의 프레임 탓인가?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인가. 그런 끝없는 물음에 책이나 펴고 만다.

암, 잘 회복해서 다시 잘 해내면 되지 생각하면서.


2.

다시 책을 읽어치우고 있다.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과 나의 삶이 방향을 달리하고 있는 것 같다. 상상한 것과 현실이 또 달라 다른 방향으로 발길을 돌려봐야 할 것 같은데 그것을 또 찾아 헤매기가 어렵다. 20대 초반에 웹툰이나, 드라마 소설 소재에서 단골로 쓰였던 삶에 대한 방황이야기다. 회사를 다니며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파트 일을 하며 고민하고 아니면 다니지 않으며 고민하고. 그런 장면들이 무수히 스쳐 지나간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 된 것만 같다. 되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많다 늘 큰소리치고 다녔는데, 정작 무언가를 꾸준히 하고 '실전'에서 경력을 쌓아온 건 없는 것만 같다. 정말 내가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았나, 살아가고 있나. 현실에 치여 고민을 외면하는 선택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며 그저 책을 붙들어본다. 문학도 뒤적여보고, 경제경영서적도 철학서적도 뒤져본다. 저마다의 삶이 있고 저마다의 전문분야가 있다. 난 무언가에 전문가인가. 난 무엇의 전문가가 되고 싶은가. 아직 명확한 방향이 다시 정해지지 않았다. 아니 그 길이 희미해지 고있다. 그저 방황하고 사유하며 더 많은 길에서 길을 잃어봐야 되나 싶다.


3.

작년까지는 역마살에 낀 사람마냥 어디든 돌아다녔다. 전국이고 해외고 다녔는데, 이젠 광주에서 쳇바퀴 돌고 있다. 평탄한 삶과 같은 환경에 어느 정도 권태를 느끼고 있다. 내 생각이 한 곳에만 매몰될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아내고 있는지 궁금하고, 완전 다른 환경은 또 어떨지. 허나 장기적 목표를 따라가고 있기에 눈 돌리지 않게 노력하고 그것을 잘 해내도록 해본다. 그 역시 나의 선택이니.


4.

사주팔자를 한 달가량 배웠다. 기본적인 오행과 합, 12 간지 60 갑자를 이론상으로 익혔다. 교육봉사를 시작한 이후로는 수업에 잘 나가지 못하고 있다.

하나의 학문으로 봤을 때 세상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고, 우주와 만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화가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그런 것들을 들어보니 꽤 흥미로웠다. 과학적인 이론들에 사주역학의 요소는 어떻게 덧씌워져 있는지. 오행의 상생은 무엇인지. 오래되고 유구한 학문을 공부해 온 선생님의 식견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그 관점으로 미래를 예지 한다.(통계학으로 유추해 낸다는 것인데, 예지라는 표현을 써봤다.) 참 매력적인 학문이나, 어렵다. 술술 나올 때까지 암기해서 천천히 풀어내야 한다. 선생님은 시간 날 때 누워서 몇 분씩이라도 책을 펼쳐보라고 한다.

외할아버지가 생전 스님에게 사주를 배우셨다. 책을 보며 사주를 보시고, 부적을 쓰셨다. 그때 쓰신 부적은 아직도 내 품에 지니고 다닌다. 할아버지에게 배울 기회는 없었지만, 이 학문을 배운다는 자체가 할아버지와 연결된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그다지 친하지도 않았고, 자주 보지도 않았지만. 그것이 그리움인지, 어떤 알 수 없는 이끌림인지는 모르겠다. 그것에 힘 업어 많이도 아니고 조금씩 꾸준히 공부하다 보면 훗날 이 사주에 대한 글을 조금씩 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5.

바다가 그립다. 광주에 있게 된 이후로는 애를 써야 바다에 닿을 수 있다. 1시간 이상을 운전해 바다에 간다던지, 일정을 잘 맞춰 빼야 한다던지. 그런 노력말이다. 한때는 바다 근처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을 꿈꿨다. 언젠가 그 꿈을 남에게 말한 적이 있는데, 돈을 정말 많이 벌어야겠네!로 답했다.

그래 그 유유자적한 삶은 결국 내가 가꿔나가야 하고 쟁취해야 하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은 단순히 글만 쓰는 게 아닌 업무를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고, 뭔가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어디서든 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근데 그게 바다 근처면 너무 좋겠지. 그 바다에서 서핑을 하고 다이빙을 하고 수영을 하고, 누워서 태닝을 한다면. 행복은 거기 있을 것 같다.

한 무당이 말하길 산은 정기를 채워주고, 바다는 근심을 비워준다고 한다. 아직도 난 어떤 근심들을 비워내고 싶은가. 막연한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 치면 바다 근처에 산이 있어도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이 소망은 내게 너무 귀중한 것이라 당장 떠나는 요행을 부리고 싶진 않다. 내가 그럴 수 있는 자격이 되고, 준비가 어느 정도 됐을 때, 만족할만한 치열한 삶을 살아냈을 때 내게 보상으로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