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널 죽이지 않을 테니 너도 날 죽이지 않기로하자.

by 바다바람

삶이 선명해졌다. 시간도 공간도 기억도 흐릿하던, 삶의 해상도가 맑아졌다. 지난 몇 년간 흐릿한 삶을 살아냈다. 요즘에 비로소 내 삶의 시계가 다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에는 불안한 감각과 격하게 한 번에 올라오는 감정이 싫어 흐리멍텅한 삶을 이어갔다. 수면에 빠지기 30분 전의 사고가 절단된 느낌이라고 하면 되려나. 삶의 흐름이 느껴지려 하면 PRN을 먹었다. 단절하고 싶은 감정이 나오면 몇 알이고 삼켜버렸다. 아주 단순한 방법으로. 모든 감정을 죽였다.


그러나 지금은 좀 더 복잡하게 해결한다.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는 음악을 틀고, 몸을 움직이고, 호흡을 하고 글을 써서 생각을 정리한다. 어쩌면 많이 건강해졌다.

죽고 싶고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어느 정도 걷히니 현실적인 문제가 눈앞에 두드러졌다. 아픈 김에 정상적인 생활이 안 되는 김에 공부 더 해야지 하는 생각 한 1할로 갔던 대학원의 졸업문제도 마주했고. 수업을 듣다 보니 이래저래 정말로 풀타임일을 못하게 되니 경제적 문제도 마주했고. 경제적 문제를 마주하다 보니 일이 하고 싶어 졌다.


일이 하고 싶어 졌다. 가르치는 일을 말이다. 3년 전과는 전혀 다른 업무로 또 1년 전과는 전혀 다른 업무로 말이다. 정신건강상의 이유로 죽으냐 사냐가 문제였던 내가 그냥 보통 사람처럼, 아니 사람이 아닌가? 보통의 대학원생처럼 일을 하고 싶다 느끼니. 이게 괴롭고 심각한 고민이었다가도 나 많이 좋아졌네라며 혼자 대견해하고 있다. 남들과 비교를 하며 난 왜 이렇게 뒤쳐졌지 하다가도 과거의 내 모습을 생각하면 참. 트라우마도 나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건가? 그 사건과 밀접하게 관련된 단어나 상황을 느끼면 서늘하고 소름 돋는 불쾌감을 느끼지만 그게 증상으로 이어지는 게 줄었다. 그럼 사실 또 다 나은 건 아닌 거 같다. 팔이 부러졌다고 치면 통깁스는 푼정도이려나. 그래도 아직은 완전히 뛰지는 못하겠다. 어서 낫고 싶어 무리하다가 공황발작이 왔던 기억이 나를 무섭게 하니까 말이다. 몰려오는 불안과 그 불안이 날 죽일 듯 압박하고, 그 압박은 실질적으로 내게 위해를 가하진 않는다. 그저 몸이 굳고 그것에 압도될 뿐 응급실에 가도 의료진이 해 줄 수 있는 건 없다. 그저 안정되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중요한 순간에, 또 남이 보는 순간에 그 상태가 될까 봐 두렵다.


새롭게 날 알게 된 사람들은 그냥 보통의 사람인 줄 안다. 보통의 건강한 사람. 운동을 하기에 그냥 건강한 사람. 그런 상황에서 내가 아픈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싫고, 굳이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싶지도 않다. 나 아프다고, 이런 일을 겪었다고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 그 누군가에게도. 굳이 굳이 말해도 사회에선 직장에선 통용되지 않는 증세니 말이다. 어쩔 땐 그게 내 숨통을 조인다. 새로 알게 된 사람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너무 깊게 알고 싶지도 않고 날 더 알게 되는 것도 싫다. 사소한 행동이라도 그게 판단이 돼서 평판이 된다. 그 평판을 위해 행동을 조심하고 거리를 둔다. 그게 나 사회성 부족한가?라는 생각을 들게 하지만. 아직은 그게 더 편한 건 반기를 들 수 없다.


보다 선명해진 삶은 내게 더 넓은 주의를 가져왔고, 그 넓은 주의는 또다시 사회와 동떨어진 구간에 자꾸 나을 몰아넣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야기한다. 사실 불안은 그냥 어디에나 존재하는 공기 같은 게 아닐까. 그러면 불안아 함께 잘 살아보자. 나도 널 죽이지 않을 테니, 너도 날 죽이지 않기로 하자.

매거진의 이전글무감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