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란 걸 물체로 나타내면, 온갖 색이 마구 섞여있는 클레이와 같은 형상이 아닐까? 감정은 너무나도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가장 기본적은 감정은 좋다와 싫다이다. 좋아. 이건 이성으로서 좋은걸 수도 있고, 친구로서 좋은 걸 수도 있고 물건으로서 좋을 수도 있다. 감정으로 더 나아가면 동질감으로 좋을 수 있고, 측연함으로 좋을 수 있다. 아니면 이 모든 게 합쳐졌을지도 모른다. 내가 저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는, 측연함과 동질감 그리고 애정, 동경 이런 것들. 그래서 좋다는 형태는 그 안에 함축된 의미가 너무나 다양하다. 같은 감정의 혼합으로 좋다가 되더라도 그 퍼센트가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서도 결이 다르다. 감정도 엄청난 다면성을 지늬 고있다. 그렇기에 좋아 싫어, 이 감정은 질투심이야라고 딱 잘라 정의를 내리면 딱 떨어져서 좋지만, 그 함의를 고려하지 않는 게 아닐까.
어떤 일련의 사건을 겪고, 사람에 대해 저 사람이 싫어라고 정의를 내렸음에도 괴로운 건 이러한 사실 때문인 것 같다. 사람 또한 감정과 같이 여러 한 면을 가졌고, 내가 어떤 면을 보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감정은 매 순간 달라진다.
어떤 사람이 갑자기 내게 잘해준다면, 그건 감사함과 좋음, 동경이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동일한 사람이 분명 내게 손해 되는 일을 했음에도 너를 위해한일이야 라며 가스라이팅을 하거나 생색을 낸다면, 이건 감사해야 하는 건가? 아니 억울한 건가? 아니 저 사람이 싫은 건가, 저 사람이 내게 가진 감정은 뭐고 의도는 무엇일까. 난 저 사람에게 어떤 감정이 드는 거지?라는 혼란이 얽매인다. 그럼 난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저 사람이 왜 내게 그런 일을 했을까? 그 의도도 중요하지만 내가 알아낼 순 없다. 그 사람의 의도와 감정도 굉장히 다면적일 것이기에, 간단히 추려낼 수 없을 뿐더러 내가 그 사람이 되기 전까진 전혀 알 지 못한다. 그럼 여기서 내가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건 나의 감정이다. 난 저 사람의 의도가 어떻든, 그의 행동으로 수치심이 들었고, 위축도 좀 됐으며, 어이가 없고 배신감을 느꼈다. 한땐 이 사람이 좋을 때도 있었다. 그 좋음과 이 모든 감정이 합쳐지면?
감정의 클레이는 마구 섞여 회색에서 검정과 비슷한 색이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걸 검은색이라고 정의할 순 없다. 모든 감정이 얽힌 응어리기 때문에.
그렇기에 감정은 참 어렵다. 그런 감정을 일으키는 주변 사람들도 참 어렵다. 내 감정을 읽어내는 것도 어려운데, 남의 감정은 어떻게 알겠는가. 그저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지 않고, 사람과 감정의 복잡함을 늘 상기해야지. 그렇게 노력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