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떠나 온지 오래 전이라 중. 고등학교 친구와 만남이 거의 없다. 특별한 취미나 배움도 없으니 동호회도 없고, 오랜 직장생활로 동네 주민도 친한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주변엔 온통 교사밖에 아는 이가 없고 화제는 주로 학교와 아이들 얘기이다. 퇴직을 하고 나니 학교 얘기도 심드렁해진다. 그래서 전원주택으로 이사 오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또 다른 삶을 꿈 꿀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왔다.
내가 살고 있는 전원주택지는 공사를 맡은 사람의 장모님인 민여사가 땅 주인이고, 김사장이 처남과 동업하여 땅을 팔고 집까지 지어주는 곳이다. 그러니 이미 이 마을에는 농사를 짓고 살던 원 주민인 민여사와 김사장네가 살고 있었다. 우리는 1호로 집을 지었지만, 일정이 급한 두 번째 집이 이사는 먼저 오게 되었다. 첫 모임으로 먼저 이사 온 집이 사장 누나가 운영하는 함바 식당에서 간단한 술과 안주를 준비했다. 다행히 이사 온 집의 안주인은 나와 나이가 같고, 그녀의 남편은 내 남편에게 금세 형님이라 불렀다. 김사장네와 친분이 있던, 다른 동네 사는 부부가 합류 했는데 우리는 그 자리에서 담박 의기투합하여 서로를 언니, 동생, 형님, 아우님으로 부르며 술잔을 기울였다. 한 달 뒤 이사를 하고 주말에 집들이를 했다. 앞서 모였던 사람들과 김사장의 부모님, 누나네 식구들까지 모두 15명, 내가 치러본 가장 많은 손님이다. 밤 12시가 넘도록 함께 어울리며 즐겁게 보냈다. 초복엔 민여사 언니가 가마솥을 걸고 백숙을 끓여내고 중복엔 다 같이 모여 삼겹살을 먹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이게 내가 바라던 이웃과의 어울림인가 싶어 뿌듯했다. 텃밭의 채소를 나누고 안부를 묻고 그렇게 우리는 안심마을 주민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안심마을 주민으로 적응하는데 한몫 톡톡히 하는 녀석이 반려견 두강이다. 강아지가 없던 동네여서인지 녀석은 인기가 많다. 누구든 만나면 길바닥에 납작 엎으려 애교를 떠는 바람에 덩치가 커도 여기저기서 ‘두강아’라고 부르며 귀여워한다. 특히 김사장네 아이들에겐 놀이 친구이기도 하다. 처음엔 무서워하던 아이들도 주말이면 마당에서 함께 뛰논다. 아이들은 우리와도 친근해져 큰엄마, 큰아빠 라고 부르며 재잘재잘 수다를 떤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뜻밖의 문제가 생겼다. 처음엔 오히려 모임이 너무 잦을까봐 걱정이었는데 김사장네는 공사로 바쁘고, 민여사 언니는 식당일, 농사일로 바쁘고 2호집은 직장에 출근하니 서로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시간 되는 집만 약속을 잡기도 그랬다. 처음부터 다 같이 잘 지내다 보니 서로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부담을 가지다 보니 오히려 같이 하는 자리도 뜸해졌다.
공사는 계속되어 이사 온 지 일 년이 된 지금 6호집이 이사를 왔다. 점점 주민이 늘어가는 터라 편의상 이사 온 순서대로 1호, 2호 식으로 부르자고 제안했고 다들 그렇게 부른다.
이웃이 늘면 서로 자주 왕래 하면서 그야말로 이웃사촌처럼 지낼 수 있을 거라는 건 착각이었다. TV에서는 이웃이 친구처럼, 자매처럼 잘도 지내던데 현실은 다르다. 도시형 전원주택이라 그런지 각자의 집에서 생활하며 뭔가 꺼리가 생겨야 모이거나 인사를 나눈다. 심지어 3호집은 아직 인사조차 못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서로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모두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서인지 선뜻 다가서기 어렵다. 시골이라기 보단 마당 있는 도시 주택 같다고나 할까.
그러던 중 며칠 전 6호집이 이사를 왔고 다행스럽게 강아지 식구가 있다. 두강이보다 덩치는 크지만 순한 성격의 보리라는 반려견을 키우고 있다. 친구가 없는 두강을 위해 남편은 며칠째 아침마다 산책 중에 일부러 보리네 집에 들러 인사를 시킨다. 두강과 보리는 서로를 알아가는 중이다. 냄새를 맡고 엉덩이 인사를 하지만 쉽지는 않다. 하물며 개들도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은데 사람은 오죽하랴. 어떤 계기가 있다면 짧은 순간에 가까워지기도 하지만 각자 다른 방식의 삶과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이 한 마을에 산다고 금방 가까워지기는 어려운듯하다. 나부터 먼저 마음을 내고 한발 내딛다 보면 좋은 이웃이 되지 않을까? 내일은 앞집에 텃밭에서 수확한 가지를 나눠 줘야겠다. 담장너머로 넉넉한 인심이 오가고 하하 호호하며 자연스레 인사를 나눌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본다.
작가님, 집중해서 글 쓰기 좋은 새벽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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