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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희 Mar 31. 2023

학구열에 불타는 작은 생명

7화. 달콤쌉싸름한 교직 이야기

런, 1학년 때 맡았던 녀석들은 두엇밖에 보이지 않는다.

익숙한 얼굴들이 많으면 한 점 먹고 들어가는 건데 죄다 낯선 얼굴들이다.

그뿐이랴. 밤톨 같은 머리통은 어디 가고 벌써 코밑에 수염이 거뭇거뭇한 산적 같은 놈들 투성이다.

한 해 동안 먹은 밥그릇 수만큼 아이들이 자란 탓일까?

아니면 제비 뽑기에서 덩치 큰 놈들만 모아 놓은 걸까?      


45킬로 남짓의 삐쩍 마른( 볼륨감이 없어 누가 봐도 날씬이 아니라 마른) 몸에 구부정한 어깨.

눈알이 뱅뱅 돌 것 같은 두꺼운 안경을 걸친 나 (제발 상상하지 마세요!)는 무지막지한 놈들의 담임이 되었다. 기억의 왜곡인지 모르겠으나 내 눈엔 우리 반에 유독 덩치 큰 아이들이 많았던 것 같다.


청소 시간에 거의 들과 함께 움직인다. 책상을 밀거나 빗자루로 교실 뒤편을 쓸고 있으면

지나가던 옆 반 선생이나 학년 부장은 번번이 아이들에게

“너거 담임 샘 오데가싰노?”라고 물을 정도였다. 덩치와 허세는 비례하는가 보다. 쓸데없는 기싸움과 대책 없는 장난질은 시시때때로 나를 냉탕과 온탕으로 데려다 놓았다.     


나는 숲 속의 거인들에게 포위당한 작은 마녀였다.

아이들은 천사의 날개를 부러뜨리고, 마녀의 빗자루를 쥐어주었다.

그 당시는 중 2병이란 말은 없었다. 하지만 중 2의 속성이 어디 가랴?

오죽하면 북한이 중2가 무서워서 못 내려온다는 우스개가 있을까?


정체불명의 호르몬이란 녀석은 어른 흉내나 내려는 덩치만 큰 놈들을 미쳐 날뛰게 했다. 아이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처럼 나를 불안하게 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생길까 늘 더듬이를 곤두세웠다. 걸핏하면 여선생에게 불손하게 대들거나 쌈박질을 했다. 심지어 손바닥보다 큰 자동차 백미러를 가져와 여선생의  치마 속을 비추는 놈도 있었다. 내게는 절대 안했다는데 그것도 모를 일이다. 교실에서 공놀이하다 천장 텍스가 깨지는 일은 차라리 애교스러웠다. 유리창이 깨져도 다치지 않으면 괜찮다. 요즘처럼 친구를 괴롭히는 사악한 짓은 없었다.

한편으론 다행으로 겼지만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학교 건물은 겉은 5살로 멀쩡했지만 속은 오래 묵은 고목 같았다. 학교는 주택가와 아파트가 바로 붙어 있었다. 그때는 교실, 복도 어디 할 곳 없이 마룻바닥이었다.

그래서인지 미키(미키마우스)와 미니친구들이 많았다. 물론 걔들처럼 귀엽진 않았다.


학구열에 불타는 쥐들은 시도 때도 없이 등교해서 도둑 수업을 받았다. 방학 중 당직 근무를 서는 날이면 아예 의자 위로 양발을 올리고 엉거주춤하니 불편한 자세로 하루를 보냈다. 교무실 이쪽 끝에서 끝으로 단거리 육상 선수처럼 뛰어다니는 날쌘돌이 같은 놈. 씨름 선수처럼 통통하고 덩치 좋은 놈들이 시도 때도 없이 같이 놀자고 덤볐다. 밀린 일을 하기에도, 교재 연구를 할 수도 없었다.


날이 더워져 교실 앞 뒷문을 열고 수업을 할 때였다. 까만 눈알을 빛내며 뒷문으로 들어오려던, 작지만 절대 귀엽다고는 말 못 할 생명체와 눈이 마주쳤다. 그놈은 다시 쏜살같이 앞문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나는 교사의 체통이고 나발이고 다 팽개치고 ‘엄마야’를 외쳤다. 아니 입에서 저절로 터져 나왔다.

작은 짐승은 내 목소리에 놀라

‘니가 더 무섭다.’는 표정으로 달아났다.


한 번은 수업시간에 침을 튀기며 열과 성을 다해 설명하는 데 아이들이 킥킥대며 자꾸 웃었다.

'아! 뭐지 실수라도 했나' 하며 속으로 뜨끔했다. 한 학생이 손으로 내 머리 위를 가리킨다.

‘뭐? 왜, 어쩌라고.' 멀뚱한 표정으로 쳐다봤더니 이번엔 여러 명이 동시에

“샘, 머리 위에 ~”

‘오 마이 갓’ 교탁 바로 위 구멍 난 텍스 사이로 까만 눈알을 빛내며 녀석이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난 “고 녀석 참, 내 수업이 그렇게 재밌나?”하고 농을 던졌지만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속으론 자지러지고 있었다.      


요즘 남학생들은 교실에 벌만 날아들어도 ‘엄마야’를 외치며 질겁을 해댄다.

선생님 놀랄까 봐 잡아 주긴 커녕 얼굴을 숨기고 도망가기 바쁘다. 그리곤 나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낸다.

‘날더러 어쩌라고, 나도 무섭다. 임마.’

아무렇지 않은 듯 창문을 열고

“벌도 눈 있다. 나대지 말고 가만있어”라고 말한다.     

그때 맡았던 중 2 아이들은 달랐다. 벌 따위가 뭔가. 교실에 출몰한 까만 녀석을 축구하듯 코너에 몰아

나 보란 듯이 잡아 두고 의기양양하게 굴었다.     


문제의 그날.

아이들은 선을 넘었다. 마침 수업이 없어 교무실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반장이 헐레벌떡 사색이 되어 뛰어왔다. 생물 선생님이 쓰러졌단다. 생물선생은 이제갓 발령 받은 새내기다.

가녀리고 어여쁜그녀는 아직도 대학생 같이 풋풋하다. 그런 그녀가 하필이면 우리 반에서 쓰러지다니.

왜?

구급차에 그녀를 실어 보내고 탐문조사를 시작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언제나처럼 몇 놈이 교실 청소도구함 뒤에 숨어 있던 작고 까만 쥐 한 마리를 찾아내어 즉결 처분을 내렸다.


허세와 영웅심리가 중2병에 걸린 한 남학생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창식(가명)이 주동자가 되어 급식으로 먹던 빈 우유갑에 쥐의 X를 담아 교탁 안에 넣어 두었다. 그리곤 수업 도중 생물 선생에게 교탁 안의 우유갑을 보도록 했다. 얼마나 끔찍했을까? 그 와중에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 여긴 나의 천박한 이기심이여! 교실에 도착했을 땐 공범들은 증거물을 은폐했다.(그건 잘한 짓이었다.!!)     


다음 날.

출근한 그녀의 얼굴은 아직도 파리했다.

그녀를 마주한 나는 자식 잘못 둔 어미의

심정이나 다를 바 없었다. 아이들을 대신하여 용서를 구했다. 그녀 앞에만 서면 고해성사를 하러 간 죄인이 되었다.

그해 남은 기간 동안 그녀의 책상 위에 슬쩍 빵이나 과자, 커피를 올려 두었다.

생물 선생은 고운 성정으로 더 이상 마음 쓰지 말라 했다.

일년이 다 가도록

아이들은 여전히 철이 없었고 미안함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대문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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