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 맛이지. 고소한 아몬드와 쌉싸름한 초콜릿 맛이 혀끝에 와닿는다. 자몽의 옅은 신맛에 아로마향이 감미롭다. 오늘 내린 커피는 예멘 모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침마다 커피를 내려 마신 게 9년째다. 업무나 집안일을 시작 하기 전 커피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연다.
커피 내리는 일은 물을 끓이는 일부터 마무리까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직장 다닐 때 커피 한잔 마시며 하루를 여유 있게 준비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출근을 서둘러야 한다. 아침시간 10분은 꽤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생각보다 길고 유용한 시간이다. 바쁜 아침 시간을 쪼개 커피 내리는 일에 정성을 쏟는다. 하루에 보통 두 잔 아니면 세잔을 마신다. 그리 많은 양은 아니지만 거르지는 않는다. 혹 건강에 이상 신호가 잡히면 참았다가 견딜만하면 다시 찾는다. 이쯤 되면 커피 중독이 틀림없다.
게임에 빠진 적이 있다. 컴퓨터로 하는 프리셀이다. 프리셀은 윈도우에서 제공하는 기본적인 카드게임이다. 52장의 카드를 배열하여 위치를 옮겨가며 모든 카드를 맨 위의 홈셀로 올리면 게임이 끝난다. 일 번에서 삼만 번까지 있다. 한 번호도 건너 뛰지않고 모두 끝냈다. 몇 년 동안 한 우물만 판 셈이다. 어떤 번호는 쉽게 넘어가지만 몇 시간 동안 눈이 빠지게 들여다봐도 통과하기 힘든 게임도 있다. 화장실 가는 것도 참고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그 정도면 오기까지 더한 중독이다.
스마트폰으로 바꾸면서 프리셀을 그만뒀다. 이번엔 모바일 게임이다. 중독까진 아니지만 휴일에 틈만 나면 빠진 게임은 애니팡이다. 휴대전화에 앱을 설치할 무렵 이미 유행이 지난 게임이었다, 그래도 심심풀이로 하나는 있어야 할 것 같아 시작한 것이 십 년이 넘었다. 손이 느려 잘하지도 못하고 점수도 형편없다. 그래도 한다.
가족들은 나 때문에 애니팡 게임을 없애지 못하는 것 같다며 회사에서 상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놀린다. 주어진 하트 5개를 사용하고 나면 보통 10분 정도가 걸린다. 지금도 글쓰기 전이나 집안일하다 잠시 쉴 때 나도 모르게 애니팡 앱을 누른다. 하지만 하루에 두세 번 정도니 중독에서는 벗어났다.
애니팡과 프리셀게임(다음 이미지)
프리셀이나 애니팡에 한창 몰두할 때는 눈앞에 화면이 불쑥 나타난다. 특히 잠자리에 들면 천장에 카드가 쫙 펼쳐지면서 이리저리 움직인다. 애니팡 화면 속의 원숭이나 토끼, 고양이가 폭탄을 맞고 팡팡 터진다. 한번 맛 들인 것을 끊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아무래도 또 뭔가에 중독된 것 같다.
밥을 먹다가도 생각나고 집안일을 하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떠오른다. 심지어 한밤중에 잠에서 깨고 보면 어느새 생각이 거기에 미쳐 있다. 아무래도 수상하다.
프리셀이나 애니팡에 몰입할 때 가족들은 ‘또 시작이냐’ ‘못 말리겠다’ ‘작작 해라’ 같은
야유와 조롱을 퍼부었다. 하지만 이번엔 ‘열심히 해 봐라’ ‘괜찮네’ ‘잘하고 있어’라며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 반응이 달라졌다.
나는 끈기와는 거리 두기를 확실히 하는 편이다. 어릴 적부터 진득하니 앉아 수예나 뜨개질을 해본 적도 없다. 성인이 되어 잠깐 시도했던 피아노나 드럼도 다른 일을 핑계로 그만두었다. 요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나한테 맞지 않다며 내팽개쳤다. 건강을 위해 꼭 해야지 하던 만보 걷기도, 스트레칭도 몇 달 하다가 흐지부지되었다. 이런 내가 무언가를 오래 계속한다는 것은 나 자신도 믿음이 가지 않는 일이다.
브런치에 글쓰기를 시작한 지 팔개월이 되었다. 처음엔 길고양이와 반려견 두강과 함께 하는 순간들을 남기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다. 내 글을 읽어 주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하찮은 글이 ‘누군가에게 작은 공감이라도 줄 수 있을까’ 걱정과 두려움을 안고 썼다. 한편으론 고양이 사진을 보며 잠깐 미소라도 짓지 않을까 싶었다. 무작정 쓰다 보니 생각보다 하고 싶은 말이 꽤 있었다. 글감은 계속 생겼고, 쓰는 일은 재밌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딱 그 짝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끄러웠다. 브런치 작가님들 글을 읽으면 부럽고 부끄러웠다. 다양한 주제와 깊은 사고가 담긴 글들은 내 글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글쓰기를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나도 내 글은 여전히 걸음마 수준이다. 사람과 현상에 대한 통찰력은 부족하고, 사고는 확장되지 못한 채 내 안에만 머무르고 있다. 어휘력도 일상의 단어 사용에 그치는 정도다. 부끄러움과 자괴감, 그래도 이 정도면 읽을만하지 않나 하는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글쓰기에 자신을 잃었다. 괜히 시작했나 후회도 밀려온다. 주춤거리고 흔들리는 내게 브런치에서의 댓글과 라이킷은 큰 힘이 되었다. 마음으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내치락들이치락하며 급물살을 탔지만 글쓰기를 놓지 않은 이유다.
그만둬야 할지 고민하고 갈등하며 써야 할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다. 글쓰기가 내게 어떤 의미인지 헤아려봤다. 나는 나약하고 성급한 인간이다. 이기적이고 감정에 치우친다. 글쓰기는 내 마음과 생각을 누군가와 나누는 행위다. 적어도 글을 쓰는 동안은 삶을 돌아보고 주위의 사람을 살피게 된다. 글쓰기는 내 안의 나를 추스르게 하고 선한 마음이 되게끔 힘을 주었다. 망설이고 화가 나고 두려웠던 건 욕심을 가져서가 아닐까.
남들처럼 쓰지 못해 속상한 마음은 글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 마음이 아니었다.
비교하고 자책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니 오히려 쓰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글을 쓰는 행위는 이전의 나와 다른 삶을 내다보는 눈을 가지게 해 준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소한 일상에서 길어 올린 생각들이 내 안에서 말이 되고 글이 되고 나눔이 되어 그 누군가에게 닿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살아가는 이야기와 하고 싶은 말들을 잘 버무려 사람 냄새나는 글을 써보고 싶다.
글쓰기를 계속하겠다고 마음을 정하고 나니 자꾸 생각이 난다. 밥을 먹다가도 산책길에 나섰다가도 고양이와 인사를 나누는 아침에도 생각이 난다. 문득문득 단어나 느낌이 떠오른다. 다른 사람과 얘기를 나누다가도
‘오, 이건 글감인데’ 하고 어느새 머릿속 저장 버튼을 누르고 있다.
이왕 써야 한다면 좀 더 그럴듯하게, 독자들에게 제대로 다가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았다. 글쓰기에 도움이 될만한 책을 몇 권 골랐다. 어렵지 않은 것으로 택했지만 역시 독학은 어렵다. 밑줄을 그으며 열심히 읽은 내용들은 머릿속으로 들어간 후 손끝으로 나와주지 않는다. 하지만 매일 쓰는 일이 일상이 되다 보면 시나브로 나아지지 않을까. 가랑비에 옷 젖듯 글력이 키워지지 않을까 생각하기로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이번엔 제대로 걸렸으면 한다. 금방 뜨거워졌다 식어버리는 어설픈 중독 말고 벗어날 생각조차 들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