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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희 Sep 06. 2022

썬룸 천장이 부서졌는데 웃음이 웬 말인가?

냥님은 안녕하시다.

  무시무시한 태풍 힌남노가 집을 휩쓸고 갔다. 아파트에 거주할 때는 나의 안녕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걱정이 앞섰다. 전원주택으로 이사 오니 일기예보에 민감하다. 비, 바람, 가뭄 등의 자연재해가 무섭게 느껴진다.


 지난밤 9시경부터 비바람이 불었다. 고양이들에게 일찍 밥을 먹이고 자러 가라 했는데 두랑이와 두리가 여전히 마당 테이블 밑에 있다. 지금까진 우리 집 위 비닐하우스가 아이들의 잠자리였다. 길냥이라 그런지 뒷마당에 집을 만들어 줘도 들어가질 않는다.  어젯밤은 아랫집에서 태풍 단속으로 하우스 문을 잠갔다. 갈 곳이 없어 저러고 있나 싶어 애가 쓰인다. 저녁 무렵 마당에 있는 두강이 집에 넣었더니 금방 튀어나온다. 비가 많이 오면 어디든 들어가겠지 싶었는데 10시가 넘어도 여전히 테이블 밑이다. 두리를 억지로 안아서 썬룸에 데려 왔더니 울고 불고 난리다. 다시 두랑이를 데려와 문을 열려는 순간 두 녀석은 도망가고 내 팔에 두 줄만 선명하게 남았다.      


  12시. 비바람이 점점 거세진다. 다시 마당으로 가보니 냥이들은 아직도 테이블 밑에서 서로를 의지 삼아 붙어있다. 다시 데려오려고 시도했지만 또 실패다.     

 

  새벽 1시 30분. 간식으로 유혹해봐도 잡히지 않는다. 평소에 두 녀석 다 서로 만져 달라고 몸을 비벼대는데 눈치가 백 단이다. 녀석들은 잡히지 않으려고 물바다가 된 잔디밭 한가운데로 도망가더니 ‘야옹’ 소리만 들리고 보이지 않는다. 비바람 속에서 “두리야, 두랑아”를 외치며 불러 봐도 다시 오지 않고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안타까움에 눈물이 절로 난다. 울면서 불러도 오지 않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들어 왔다. 생명과 인연을 맺고 지키는 일은 참 어려움을 깨닫는다. 비옷을 입었는데도 흠뻑 젖었다. 머리를 대충 말리고 누웠는데 잠이 오질 않는다.    

 


           비바람을 뚫고 일으켜 세운 두강이집


  6시. 설핏 잠이 들었다가 세찬 비바람에 놀라 깼다. 남편은 지붕 위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이 날아갈까 봐 안절부절못하더니  주방 창으로 밖을 내다보다  갑자기 분주하다. 두강이 집으로 사용하려고 설치한 조립식 창고가 바람에 날려 가고 있다. 창고는 높이 2m, 가로 1.5, 세로 2m의 크기다. ' 우째 이런 일이 ' 생각도 못한 일이다. 남편은 더 이상 망가지기 전에 개집을 눕혀 둬야 한다며 비바람 속으로 나갔다. 그냥 들어오라며 안에서 발만 동동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쿵, 와장창’ 소리가 들린다. 맙소사! 태양광 패널 하나가 썬룸 유리 지붕을 뚫고 떨어졌다. 유리가 박살 났다. 남편은 5분 전 썬룸을 통해 바깥으로 나갔고 다시 그 문으로 들어올 참이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9시. 비는 거의 그치고 바람도 잦아들고 있다, 마당으로 나가 고양이들을 찾았다. 보이지 않는다. 혹시 몰라 “ 두리야, 두랑아 ” 몇 번을 부르니 하우스 안에서 희미하게 “야옹” 소리가 들린다. 두리 목소리다. 아이들이 살아있다. 자세히 보니 하우스 옆쪽에 구멍이 나 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당에 나뒹구는 물건들을 주섬주섬 치우고 있는데 두리가 왔다. 물 한 방울 묻지 않은 뽀송하고 말간 얼굴로 나타나 애교를 떤다. 뒤이어 두랑이 등장. 녀석들은 간밤 일은 잊은 듯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며 애교를 떨어댄다.

“ 야~~ 옹, 빨리 밥이나 달라냥 ”     

오늘따라 밥이 더 맛있다냥


  녀석들의 안녕을 확인하니 집이 엉망진창이 되고 남편이 다칠 뻔했는데도 이 와중에 비실비실 웃음이 나온다. 예전 같으면 이런 일에 화, 짜증, 속상함 이런 단어가 붙어 다녔다. 유리 범벅이 된 썬룸을 치우느라 하루가 다 갔다. 급 피곤이 몰려온다. 태풍이 몰아친 밤과 새벽 사이. 남편은 태양광 패널 걱정에 잠을 설치고, 철없는 아내는 길냥이 걱정으로 밤을 지새웠다.      


이 밤. 부서진 썬룸 지붕 위로 추석을 부르는 달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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