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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희 Sep 15. 2022

죽을병도 아닌데 죽을 만큼 힘든 병

메니에르야 가라!

 감기몸살 약을 먹고 잠들었다 깨니 귀에서 매미 소리가 들린다. 철 지난 매미들이 100마리도 넘게 찾아왔다. 매미 떼의 공격은 여름보다 봄, 가을 환절기에 시작된다.

 ‘ 또 손님이군 ’ 마음의 준비할 여유조차 없이 불쑥 들이대는 염치없는 손님이다. 더 심해지기 전에 약을 찾아 한입에 털어 넣는다. 열 손가락 끝으로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 움직일 수 조차 없다. 손오공의 머리띠처럼 옥죄어 오는 편두통은 머리를 깨 부시고 싶은 충동마저 들 정도이다. 그뿐이랴, 언젠가 한번 타본 적 있는 다람쥐통이라는 놀이기구가 있다. 마치 그 다람쥐통 안에서 끝도 없이 돌아가는 것 같다. 침대와 한 몸으로 묶여 돌아가거나 깊은 수렁 속으로 빠지는 것 같다.  

   


  2006년 봄. 아침부터 어지럽고 쓰러질 것 같았다. 수업 중 몇 번이나 넘어질뻔하여  교탁을 붙들고 지탱하다 급기야 주저앉았다. 겨우 교무실에 돌아와 엎드렸지만 진정되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옆에 있는 동료 선생님께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혈압이 높고 과로해서 그렇다고 하는데 주사 맞고 약을 먹어도 좀체 증세가 호전되지 않았다. 머리도 깨질 듯이 아프고 귀에서 소리도 들린다. 어지럽고 무기력한 증세가 며칠 동안 계속되어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았다. 어느 내과에서 이비인후과를 가보라고 한다. 아무래도 메니에르 같다나. 처음 들어 보는 병명이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다.   

  

 메니에르 : 갑자기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움, 귀에 이명, 왼쪽 또는 오른쪽 귀가 먹먹해지고 청력 저하와 난청이 오기도 한다. 증상이 갑작스럽고 반복적으로 생기는 질병으로 병의 정도에 따라 네 가지의 모든 증상을 경험하는 환자도 있고, 한두 가지 증상만 경험하는 환자도 있다. 달팽이관, 전정, 반고리관을 지칭하는 속귀의 기능 이상으로 발생한다. 1861년 프랑스의 의사인 메니에르가 이 병을 발견하였다.    

  

  내가 겪는 증상과 똑같다. 이 모든 증상이, 그것도 매우 심하게 나타난다. 때로는 구토 오심 현상이 나타나 약조차 먹지 못한다. 그 후로 몇 해 동안 봄이면 오던 병은 가을이 되면서도 나타났고 어느 해부터는 일 년에 서너 번을 반복하고 있다. 한 번 시작되면 보통 한 달 동안 약을 복용한다. 2주 정도는 증세가 매우 심하고 그다음은 회복기에 접어들어 어느 정도의 일상생활은 가능해진다. 이명 현상은 처음엔 메니에르가 올 때만 나타났었다. 몇 년 전 앓고 난 다음부터는 일상적인 증세가 되어버렸다. 귓속의 소음을 견딜 수 없어 혼자 있을 때나 밤엔 음악을 틀어야 잠들 수 있었다. 수업을 하다가는 내 목소리가 울려 멈칫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지금은 낮은 음역대의 청력이 약해져 TV 볼륨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임이 확실하다. 이명도 익숙해지니 견딜만해졌다. 편두통, 어지럼증, 이명 이 모든 증세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면 운전은 물론 걷는 것도 힘들다. 7년을 남기고 이른 퇴직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 이유도 바로 이 메니에르란 놈 때문이다.      


 나의 메니에르는 면역력이 약해질 때 급습해온다. 주로 감기몸살 끝에 방광염, 위경련, 심한 근육통 같은 녀석들과 사이좋게 손잡고 찾아온다. 게다가 어지럼증만큼이나 견디기 힘든 고통은 머리가 멍하고 무거워지면서 기억력, 집중력이 뚝 떨어지는 뇌 안개, 즉 브레인 포그 증상을 겪는다는 것이다. 의지박약 한 나는 한꺼번에 몰아붙이는 시시껄렁한 녀석들을 이겨내지 못한다. 심신을 단련시키기는커녕 갈수록 더 나약한 인간으로 만든다. 혼돈의 숲에서 우울함과 맞닥뜨리게 되고 신경은 송곳 끝처럼 변해간다.     


 11호 태풍 힌남노가 휘몰아치던  새벽. 비를 맞으며 길냥이를 돌보다 감기몸살에 걸렸다. 병원을 다녀와도 차도가 없더니 다음 날 올 것이 왔다. 꼼짝없이 누워 있는 신세다. 추석 지낼 준비도 하고 아들도 맞아야

하는데......

남편은 분주하다, 비가 새면 큰일이니 태풍으로 부서진 썬룸 지붕도 수리하고 망가진 두강이 집도 고쳐야 한다. 이를 악물고 정신을 차리려고 애써보지만 세상은 빙빙 돌고 손끝에서 물건들이 미끄러진다.    

 



  메니에르는 큰 병은 아니다.  외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죽을병도 아니다. 그러니 모르는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심지어 가족조차도 그렇다. 자주 겪는 일이니 그러려니 여긴다. 겉으로 나타나지 않으니 견딜만하면 움직여야 한다. 직장도 가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한다. 그래서 마음은 더 외롭고 서럽다.

 2022년 추석 연휴를 메니에르 따위로  빌빌대고 있다. 이제 이골이 날 만도 한데 고통을 이기기는 쉽지 않다. 16년 동안 찾아오는 진상 손님 따위 꺼지라고 돈봉투라도 집어던지며 고함치고 싶다.  

아! 지금 당장 머릿속 안개를 말끔히 걷어내고 9월의 눈부신 하늘 아래 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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