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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희 Sep 04. 2022

삼각관계는 아프다

두랑이의 혈투

두랑이: 남아, 연령 미상. 두리의 남친.

            나쁜 남자 스타일.  

          길냥이치곤 제법 반반한 외모에

          꿀 보이스의 소유자.

   어느 날 갑자기 여친 두리를 데리고 와선

 " 얘도 돌봐주세요 " 하고 다짜고짜 들이민다. 하루 종일 코빼기도 보이지 않다가 다음 날은 마치 외박하고 들어온 남편처럼 두리에게 살갑게 굴면서 뽀뽀도 하고 종일 붙어 있는다. 여친에게도 밥과 간식은 한 치의 양보가 없다. 두리를 사이에 두고 두식과 삼각관계다.          


두식: 남아, 연령 미상, 상남자 스타일.

        넙데데한 얼굴에 심술궂은 인상, 느릿한 걸음걸이, 목쉰 듯한 저음의 ‘야옹’ 소리는 마치 드라마의 악역 배우 같지만 자세히 보면 나름 귀엽다. 처음엔 두랑에게 졌지만 특별 훈련이라도 받고 온 듯 일주일 만에 돌아와 두랑을 단숨에 제압한다. 오매불망 두리를 바라보며 지켜주는 짝사랑남으로 두리에게 밥과 간식을 양보하는 시크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다. 하는 짓이 꼭 아빠가 딸 보호하는 것 같다. ( 아무리 따져봐도 딸은 아님)두랑과는 친구인 듯 아닌 듯 데면데면 한 사이였지만 두리가 오고 나선 철천지 원수지간이 되었다.     

      

두리: 여아. 연령 미상. 똥그란 얼굴로 빤히 쳐다보고 '야옹'거리며 집사와 오빠들을 녹인다. 두랑과 두식이 자기 때문에 싸워도 ‘저 오빠들 또 싸우네’ 하고 힐긋 보고 마는 무신경한 성격이다

  두동의 ‘두’에 귀염성 있는 얼굴이 둘리를 닮아 두리라고 부른다. 늘 먹는 것을 탐하고 배가 불러 임신한 줄 알았다. 아직 어려 보이는데 새끼를 낳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단순히 털 찐 거라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두리는 아직 아기냥처럼  군다.  철은 없고 겁은 많다. 자기 몸 간수도 힘든데 2세까지 키우기에는 나도 두리도 무리일 듯하다.  두랑과 두식이 두리 곁에 있는 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것도 빨리.

  중성화 수술을 검색하던 중 길냥이 중성화 수술의 표식이 왼쪽 귀를 조금 자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리의 왼쪽 귀는 우리 집에 올 때부터 잘려있었다. 길냥이로 떠돌며 싸우다 생긴 상처로 여겼는데......

고마운 누군가 덕분에 나의 수고로움을 덜게 되었다. 그리고 싸우다 다친 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설마 두랑이가 수술시켜서 데려온 건 아니겠지. ㅎㅎ      

                         

외박하고 와서 달래는 두랑

                                                                      

 ‘야~~ 옹’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  한판 붙나 보다. 새벽 1시 40분. 오늘따라 더 심하게 싸우는 것 같아 뒷마당에 나가 보지만 이미 녀석들은 보이지 않는다. 요즘 따라 녀석들이 심상치 않다. 두식은 낮에도 두랑과 눈만 마주치면 으르렁거리고, 두랑이는 두식이 피해 다니기 바쁘다.

 두리는 오매불망 두랑을 좇고 두식은 두리만 바라보는 찐 삼각관계다. 쳐다보고 있으면 재밌다가도 두식이 안쓰럽다.      


“당신은 두랑이랑 두식이 중에 사윗감으로 누가 더 마음에 들어?"

남편이 묻는다.

“ 글쎄, 생각 안 해봤는데.”

“ 난 무조건 두식이야. 내가 딸 가진 아빠라면 난 두식이 편이야.” 딸이 좋아하는 것보다 딸을 좋아하고 아껴주는 남자가 최고지."

생각해보니 그렇다. 말수가 적은 건 점잖은 것이고, 경계심이 많은 건 신중함이리라. 가장 중요한 건 두리를 위한다는 점이다. 밥을 따로 주는데도 두리가 충분히 먹고 나서야 자기 밥을 먹는다.  두리가 어디선가 '야옹'거리면  평소에 그렇게 느린 걸음걸이가 육상 단거리 선수가 된다. 그러고 보니 1등 신랑감일세.   두리는 그 마음도 모르고 오직 두랑이만 목을 빼고 기다린다. 그도 그럴 듯이 떠돌아다니던 자신을 이곳에 데려다준 생명의 은인이 아닌가. 두리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법하다.

    

  아침밥을 주려고 나갔더니 두랑이 얼굴이 엉망이다. 얼굴 여기저기에 할퀸 자국에다 다리도 절고 있다.

 “아유, 꼴이 이게 뭐냐” 두랑이 밥 먹고 있는 동안 자세히 보니 꼬리 가운데 살점이 내 엄지손톱만큼이나 뜯겨 나갔다. 두식과 싸우긴 해도 그저 얼굴에 살짝 할퀸 정도이지 이렇게 큰 상처가 난 적은 없었다. 다행히 약을 발라도 도망가지 않는다.

“누구랑 싸운 거니?”


 저녁때가 되어도 두식은 보이지 않다가 다음날 아침 느지막이 나타났다.  두식이 콧잔등에 할퀸 자국이 선명하다.

혹시  다툴까봐 밥 먹는 동안 지키고 있었더니 두식과 두랑 사이 분위기가 뭔가 달라졌다. 살짝 겁을 먹긴 하지만 두랑이 두식이 앞을 지나다닌다. 게다가  두리와 꽁냥꽁냥까지. 두식은 으르렁거리지 않고 쳐다보다  체념한 듯  눈을 감는다.

아! 아마도 지난밤 두랑이는 두식이와 혈투를  벌인 모양이다.

그리고  영광의 상처를 훈장 삼아

 ”두리는 내 여자야 “라고 으스댄다.      


마음을 다친 두식은 밥도 마다하고 처연한 표정으로 허공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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