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희 Aug 29. 2022

화락장안

 슬기로운 은퇴생활

  고양이가 똥을 싼다. 

남편이 애지중지 가꾸는 잔디밭에.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내게 거실 창 너머로 남편이 부른다. 길냥이 두리가 잔디밭 위에서 똥을 누고 있다. 

변비라도 걸렸는지 한참 걸린다. 남편은 고양이 똥을 치우고 나서 “고양이 교육 잘 시키라이. 아무 데나 똥 싸면 밥 안 준다 해라”란다. 고양이나 개의 대소변은 생각보다 독해서 잔디를 누렇게 말라 죽인다. 벌써 군데군데 자국이 보인다.  저 푸른 초원까지는 못 되지만 고양이들의 대형 화장실이 되게 둘 순 없다.

‘특별 훈련을 시켜야겠군’     


  남편과 나는 이른 퇴직을 생각하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긴 휴가를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고민을 했다. 나는 다른 이들에겐 부드럽고 이해 잘해주는 선배이자 동료였다. 그러나 집에 오면 달라졌다. 남편이나 아들이 두 번 물으면 신경질적으로 답했고, 뭔가 할 일을 말했을 땐 바로 행동하지 않으면 인상이 구겨졌다. 이런 나를 두고 아들은 ‘이중인격자’라고 했다. 급하고 다혈질인 내가 퇴직 후 남편과 하루 종일 아파트란 공간 안에 머문다는 것은 서로의 정신 건강상 바람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의  평화로운 노년을 위해 생각한 것은 텃밭이었다. 텃밭을 일구면 소일거리도 되고. 어느 정도의 육체노동은 건강에도 좋을 것이므로......

 거기다 잠시 머물 수 있는 농막이라도 둔다면 부부 싸움할 때 임시 거처로도 안성맞춤일 것 같았다.  


  주말에 시간을 내어 땅을 보러 다녔다. 쉽지 않았다. 땅이 마음에 들면 돈이 문제고, 돈에 맞추자니 너무 멀었다. 우연한 기회에 지금 사는 곳의 땅을 보게 되었고 이곳이라면 텃밭이 아니라 이사를 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근에 사는 지인은 이곳을 ‘두동의 강남’이라고 했다. 땅 주인은 나름 계획이 원대했다. 이곳에 35가구가 들어서는 전원주택 단지를 조성할 것이며 이미 ‘안심마을’이라고 이름까지 정해 두었다. 그렇지만 땅은 토목 공사는커녕 황무지 상태의 농지였고 2년을 기다린 후에야 그 땅에 집을 지을 수 있었다.        

   

  텃밭도, 집을 짓자는 말도 내가 먼저 꺼냈다. 남편은 이사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텃밭이 있는 전원주택을 짓고 싶다고 했을 때 선뜻 그러자고 했다. 33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나에게 "당신이 짓고 싶은 집을 지어. 결혼 30주년 선물 겸 퇴직 선물이야"라고 했다. 어릴 적 간절히 원했지만, 절대로 가질 수 없을 거라 생각한 무언가가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  같았다.


 우리는 퇴직 기념으로 스페인. 포르투갈로 1달 정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가 막 시작되던 시기와 맞물려 우리의 퇴직 기념 여행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래서 집 짓기에 더 매달렸고 집이 빨리 지어지길 바랬다. 기다리는 동안 남편은 동영상으로 집짓기 과정을 공부했고, 나는 인테리어 잡지책을 뒤적이고, 인터넷으로 집 짓기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나는 뭔가 한 가지 생각에 골몰하면 오래 생각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성격이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가 구입한 땅은 대지가 180평이다. 나중에 나의 공간으로 사용할 썬룸을 염두에 두고 ㄷ자형 집을 고집했다. 집을 지을 땅은 건축면적이 대지 면적의 20%밖에 지을 수 없는 농업지역이다. 그런데 ㄷ자형이라고 못 박고 보니 나머지 공간의 설계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최대한 주부인 나의 동선을 고려하고 , 나의 필요에 맞춘 집을 계획하였다. 실제 땅의 치수를 축소하여 몇 번이고 평면도를 그렸다. 모든 가구와 전자 제품의 위치, 크기까지 고려하여 그렸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다며 으스대고 설계사무소에 평면도를 가져가서 설계를 의뢰했다. 하지만 착오가 있었다. 우리는 아파트의 안쪽 치수를 참고로 하여 그렸는데 건축면적에 모든 벽두께가 포함된다는 것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었다. ㄷ자형 집의 공간은 협소해졌다. 설계사무소에서는  변경을 제안했지만 내 생각은 변함없었고 남편은 내 뜻대로 해 주었다.     

   

   12월 3일 드디어 첫 공사가 시작되었다.

  두동의 칼바람은 서 있기조차 버거울 정도로 매서웠지만 우리는 매일같이 공사 현장을 찾았다. 남편은 공사 일정에 맞추어 동영상으로 건축 과정을 공부했고, 중요한 공정이 있는 날은 새벽같이 현장으로 갔다. 우리는 내부 공사를 진행할 때 타일, 마루, 주방가구 등의 매장을 직접 발로 뛰며 꼼꼼하게 비교하고 선택했다.


  집을 짓는다고 했을 때 이미 지어본 사람들이 집을 짓다 보면 설계사무소나 현장 소장, 인부들과도 갈등이 생기고, 심지어 부부간에도 취향이 달라 의사 결정할 때 많이 다툰다고 했다. 그래서 ‘십 년은 늙는다.’고

 다행히 우리 집은 큰 문제없이 공사가 진행되었고, 남편은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대부분 내 의사를 존중해 주었다. 우리의  집 짓기는 약간의 스트레스와 긴장을 동반하는 즐거운 놀이 같았다.

  6개월의 공사 끝에 드디어 집이 완공되었다. 단열과 방수를 강조한 남편 덕분에 우리는 따뜻하고 튼튼한 집을 지었다. 오랜 시간 공들여 평면도를 그리고, 발로 뛰며 인테리어 공부를 열심히 한 덕분에 실용적이고 예쁜 집이 지어졌다.

 “이 집은 우리 작품이야"  

     

  

  이사 후에는 조경을 해야 했다. 사람들은 '잔디밭 관리하기 힘드니 되도록 작게 하라'는 둥, 아예 '자갈을 깔라'는 둥 말을 보탰다. 하지만 우리의 로망은 푸른 잔디밭에 바비큐 그릴을 놓고 가족이나 지인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잔디밭이 없는 전원주택은  ' 앙꼬 없는 찐빵이지' 잔디밭을 포기할 순 없었다. 우리는 초기 비용은 좀 들더라도 나이 들어 힘에 부치지 않게 관리가 쉬운 쪽을 택했다. 40㎝*60㎝의 모판처럼 생긴 롤 잔디는 빽빽하게 심어지기 때문에 풀이 잘 자라지 않는다. 집 구경을 온 사람들은 몇 년 가꾼 잔디밭처럼 보인다고 다들 칭찬한다. 

돈이 좋긴 좋다.

 

  올여름에는 작년에 별로 없었던 작은 버섯들이 극성이다. 남편이 아침마다 버섯을 100개도 넘게 뽑는데 저녁때가 되면 어느새 또 자라 있다. 하루에 두 번 수확(?)할 수 있으니 최고의 가성비 높은 버섯이겠지만 안타깝게도 먹을 수가 없다. 잦은 비와 높은 기온에 잔디는 말릴 새도 없이 자란다. 아무리 게으름을 피운다 해도 2주에 한 번 깎지 않으면 밀림이 될 판이다.  눈에 땀이 흘러 들어가고 온몸이 잔디 먼지로 범벅이 되면서 가꾸는 남편의 잔디밭이다.

 그런 잔디밭에 감히 고양이가 똥을  싸다니.


 꿈에 그리던 나의 공간 미니 카페도 완공되었다. 폴딩도어를 달아 툭 터진 전경에 비라도 오는 날이면 빗소리를 음악 삼아 짙은 커피 향과 마주한다. 나는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듣고, 글을 쓴다.   

   

     화락장안

‘가정이 화목하고 즐겁고 오래오래 편안하라’

우리 집 문패에 새긴 글귀이다.

 남편의 사랑과 나의 소망이 깃들어 있는 집. 나는 이 글귀처럼 내게 최고의 퇴직 선물로 집을 지어준 고마운 남편과 반려견 두강과 고양이들이랑 슬기로운 은퇴 생활을 하리라.


작가의 이전글 길냥이 1. 2. 3 Ⅱ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