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 스텝 밟는 풍선 인형

by 도희

M의 뒤를 따라 강당으로 들어갔다. 쭈뼛거리며 들어선 나와 다르게 M의 걸음은 당당하고 자신감 넘쳤다. 먼저 도착한 기존의 회원들은 M과 인사를 나누며 눈은 나를 가리켰다.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한눈에 봐도 멋쟁이가 분명한 반장님이 다가와

“어서 와요. 여기 재밌어. 회원들도 다 좋아”라며 환영인사를 건넸다. 다른 회원들도 오랜만에 들어온 신입을 바라보는 눈길이 다정하고 살가웠다. 처음 본 사람들과 뭔가를 함께 배우는 일은 내향형 인간인 내게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줌바라면 더욱이. 그런데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그녀들이 부담스럽지 않고 푸근하게 느껴지는 내가 이상했다.


활기차게 인사를 하며 들어오는 줌바 강사를 보는 순간. 오! 짧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금발에 가까운 긴 머리를 질끈 올려 묶은 그녀는 한눈에 봐도 건강미가 넘쳤다. 몸에 딱 붙는, 주황색 바탕에 검은 무늬가 있는 옷은 까무잡잡하게 태닝 한 피부와 잘 어울렸다. 날렵한 표범 같다고나 할까.

강당을 울리는 흥겨운 리듬에 나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거렸다. M의 뒤에 가서 섰다. M은 줌바가 몸에 배어 있었다. 이전부터 에어로빅과 줌바의 세계를 충분히 경험한 그녀의 동작은 예사롭지 않았다. 절도 있는 동작, 현란한 스텝, 쭉쭉 뻗는 팔, 다리에 몸 털기까지. 오래 했다고 해서 나오는 유연함은 아니었다. 같은 비를 맞는다고 똑같은 싹이 나는 건 아니다.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는 그녀가 대단해 보였다.

줌바는 몸치인 내게 신세계였다. 빠른 리듬을 따라 이리저리 팔을 흔들고 발을 움직였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개업하는 가게 앞에 세워 둔 바람 빠진 키 큰 인형 같았다. 팔은 제멋대로 덜렁거리고 다리는 술 취한 게걸음이었다. 곁눈질로 다른 회원들의 동작을 봤다. 기존 회원들은 모든 동작을 외우고 있었고 운동에 진심이었다. 다행히 나의 우스꽝스럽고 엉거주춤한 꼴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풍선인형처럼 팔다리를 접었다 폈다, 흔들흔들하는 것도 운동이라고 땀이 비 오듯 했다. 운동으로 땀을 흘려 본 게 족히 6개월은 넘었다. '허이 허이' '흡흡' 강사는 중간중간 기합이랄지 구령이랄지 소리를 질렀다. 회원들도 ‘줌바’를 외쳤다. 춤을 추다 빙빙 돌며 다른 사람들과 인사하는 동작도 있었다. 모두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벙싯거리며 좋아했다.


몇 곡을 연달아 추고 나서 등 뒤에 섰던 반장님이 ‘물 좀 먹고 합시다’라고 외쳤다. 신입이 왔는데 물 마실 시간도 좀 주고 해야지 하며 내게 눈을 깜빡였다. 처음부터 너무 무리하면 안 된다고 적당히 쉬어가며 하라는 그녀의 말이 고마웠다. 서글서글한 성품에 유머감각까지 있는 반장님은 한국무용을 전공했다. 칠십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고 날씬한 몸매에 운동하러 오는데도 화장을 곱게 했다. 운동복도 레이스가 달린 치마 레깅스에 반짝이 블라우스로 예사롭지 않았다. 반장님의 친절로 목도 축이고 땀도 닦은 후 다시 허우적댔다.

줌바의 기본 동작으로 메렝게가 있다. 그중 발을 사선으로 뻗어 마름모꼴로 짚고 돌아오는 ‘다이아몬드 스텝’이 있다. 내 꼴은 다이아몬드 스텝은커녕 술 취한 사람의 갈지자걸음 같았다. 한발 두발 내디딜 때마다 발이 꼬이고 왼 손대신 오른손이 올라갔다. ‘허이 허이’ 외치는 구령 속에 내가 내뱉는 한숨이 묻혀서 다행이었다.


줌바 선배님들은 육 개월 정도 하다 보면 저절로 음악에 맞춰 몸이 움직인다고 했다. 몸치인 내가 그때까지 그만두지 않고 잘 버틸 수 있을까. 현란한 발동작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스텝은 꼬이지 말아야 하는데.


[처음 20시간의 법칙]이란 책의 저자 조시 카우프만은 우리가 배우고 싶은 분야를 매일 30분에서 45분가량 꾸준히 하면 한 달 후에 스스로 만족할만한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했다. 몸치 주제에 20시간은 도저히 무리일 것 같고 그 두 배, 세 배쯤 하면 되려나. 시간과 노력밖에 답이 없다. 글쓰기도 그렇다. 진득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글력을 키워야 한다. 어려운 일이다. 노트북 앞까지가 십 리나 되는 듯하다. 전원버튼을 누르고도 미적대며 온갖 핑계를 다 갖다 붙인다. 줌바의 스텝이 몸에 익을 즈음 나의 글쓰기도 한결 나아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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