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몸을 움직이는 일은 운동이든 놀이든 젬병이었다. 여자아이들이 주로 하던 고무줄놀이, 사방치기, 공기 받기에서 늘 깍두기 신세였다. 서운하진 않았다. 사실 밖에서 하는 놀이보다 만화책을 보거나 인형놀이, 소꿉장난이 더 재밌었다. 바비인형을 닮은 늘씬한 종이 인형을 그려 블링블링한 공주옷을 만들어 입혔다. 그리고, 색칠하고, 선을 따라 곱게 오려 만든 옷을 입히면 마치 패션디자이너가 된 듯했다. 내게는 그 놀이가 바깥놀이 보다 멋지고 매력적이었다. 친구들이 인형을 그려달라, 웃을 만들어 달라고 할 때면 내가 뭐라도 된 양 으쓱했으니까.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운동이 더 싫었다. 못하니 하기 싫고 안 하니 더 싫어졌다. 체육시간에 어떡하면 교실에 남아 있을까, 배가 아프다고 할까. 두통이 심하다고 할까 요리조리 핑곗거리만 찾았다. 그랬더니 성적표에 양이 자주 나타나 헤벌쭉 웃었다. 고등학교 진학할 때 체력장이 있었다. 내 깐엔 죽어라 열심히 달렸다. 나보다 못 뛰는 아이는 없었다. 3초 만에 떨어지는 매달리기에서 친구들은 더 이상 힘내라 소리도 하지 않았다. 결국 20점 만점에 최하점수인 12점을 받았다. 전교에 몇 안 되는 귀한 12점이었다. 대학 갈 때는 체육 선생님의 스파르타식 훈련과 하느님이 보우하사 용케 20점을 받았다. 그걸로 내 인생에 체육시험은 끝이라 여겼다.
인생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대학을 가니 교양체육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는 강의시간에 대리출석이 흔했다. 하지만 체육을 대리출석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게으름과 뻔뻔함 그리고 친구가 삼위일체로 도왔다. 학기 말. 배구 실기시험을 쳐야 학점을 받을 수 있었다. 시험까지 대신 치러줄 찐한 우정은 없었다. 세 번의 재시험 끝에 교양 배구 수업을 통과했다.
반평생을 운동과 무관하게 살았더니 심각한 운동실조에 걸렸다. 온갖 잔병들이 여름 해 질 녘 하루살이 떼처럼 덤볐다. 면역력이 약해서 일 년에 절반은 감기를 달고 살았다. 편두통, 허리 디스크, 목디스크 병명을 다 쓰려면 세줄은 넘어갈 것 같다. 그런 날더러 옆지기는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불렀다. 살기 위해 무슨 운동이라도 해야 했지만 남들과 섞여 뭔가를 배우기는 싫었다. 몸치가 부끄러웠고 같이 하는 운동은 상대방에게 피해를 줄까 봐 싫었다. 그저 시간 나면 걷는 게 다였다.
돈을 내고 운동을 시작해 본 적이 있긴 했다. 한 달. 그렇다. 배웠다기보다 시작은 해봤다는 게 옳다. 대학 스포츠센터에서 하는 요가 강습이었다. 맨 뒷줄에서 용을 써 봤지만 ‘아야야’ 소리만 하다 그만뒀다. 젊은 대학생들과 함께 하려니 세탁기에서 방금 꺼낸 구겨진 티셔츠 같은 기분이었다. 한 달 동안 투명 인간처럼 드나들다 두 달치를 환불받고 돌아섰다.
퇴직을 했다. 마음껏 여행도 다니고 취미생활도 하고 싶었다. 저질체력에게 폼나는 삶을 누리기위한 필요충분조건은 건강이었다. 아파트 피트니스 센터에서 요가와 줌바 강습을 한다는 전단지를 봤다. '그래 이거다'싶었다. 요가는 몹쓸 기억이 떠 올라 쳐다보기도 싫었다. 줌바로 해보자. 내향형 인간이 열정적인 줌바를 할 수 있을까 걱정은 됐지만 일단은 저지르자는 심정으로 등록부터 했다. 시작을 2주 남기고 있었다. 2020년 3월. 기다리던 강습 안내대신 체육관이 폐쇄되었다는 공지가 떴다. 줌바로 체력도 키우고 즐거움도 누려보겠다는 초보 은퇴자의 꿈을 코로나 19가 무참히 짓밟았다.
어영부영 퇴직 사 년차다. 그동안 간간이 혼자서 하던 스트레칭은 시들해지고 산책도 뜸해졌다. 숨만 쉬며 배 둘레 햄을 키우다 보니 허리와 무릎이 아우성을 쳐댄다. 대책이 필요했다. 동네 주민 M과 K가 인근 주민자치센터에 줌바댄스를 배우러 다닌다는 고급정보를 입수했다. 일주일에 두 번. 화, 목. 오전 강습이라 했다. 다행이다. 백수라도 은근 바쁘다. 나머지 걸림돌은 사소하다. 이를테면 일주일에 한 번은 파스의 힘을 빌려야 하는 몹쓸 허리, 일 년 넘게 약으로 달래는 족저근막염 따위라든가. 내향형 성격에 밥풀보다 못한 끈기정도랄까.
두려움과 설렘이 짬짜면처럼 담긴 마음과는 달리 어느새 내 손은 운동복과 신발을 챙기고 있다.
몸치라고 자격미달이면 어떡하지.
거울속에 화요일을 기다리는 내가 보였다.
대문사진 : 네이버 블로그 k휘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