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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희 Aug 21. 2023

오늘도 브런치를 먹고 읽고 씁니다

 오전 10시경 브런치를 먹는다. 늘 같은 메뉴긴 하지만 양은 푸짐하고 내용물은 알차게. 계란과 치즈 올린 통밀 식빵, 견과류와 베리종류에 약간의 꿀을 넣은 수제 요구르트, 각종 채소와 계절 과일을 넣은 샐러드에 마지막 커피까지. 이것저것 바꿔 봐도 지금 먹고 있는 것만 못하다. 짧은 방황을 끝내고 결국 든든하고 질리지 않는 처음 메뉴로 돌아왔다.


브런치를 먹고 난 다음은 브런치에 올라온 글을 읽을 차례다. 구독하는 작가가 135명. 그중 날마다 글을 발행하시는 분이 꽤 된다. 어떤 분은 하루에도 몇 편씩 올린다. 몇몇 분과 댓글을 통해 소통하다 보면 오전 시간은 붙잡을 새도 없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집안일을 끝내고 한숨 돌리고 나면 브런치에 올릴 글을 쓴다. 일주일에 한 두 편 정도의 글을 올리고 있다. 직장을 다니거나 육아를 하면서 매일 글을 발행하는 분들이 대단하게 생각된다. 쓰지 않고는 못 배길 간절함이 있는 분,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분. 모두 능력자다.      

 

 브런치 스토리 작가가 된 지 일 년 하고도 오 일. 내게 브런치 입문과 글쓰기는 동일시된다. 브런치 작가 신청이 받아들여짐과 동시에 글쓰기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기, 조기 은퇴자의 삶은 평온하고 고요한 호수의 수면 같았다. 가끔은 누군가 돌이라도 던져 파장이 일기를 바랐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조용한 삶에 스스로 돌을 던져 보기로 했다. 그렇게 브런치라는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디딘 지 일 년이다.   

   

블로그나 SNS를 하지 않는 나로선 내 글을 담을 공간이 없었다. 글을 써보기는커녕 브런치라는 플랫폼도 몰랐다. 다음 홈 앤 쿠킹과 동물 카테고리를 들락거리다 우연히 브런치를 알게 됐다. 브런치에 작성한 글을 올리고 작가 신청을 해야 글을 발행할 수 있는 줄도 몰랐던 얼뜨기였다. 소개 글을 쓰고 이천 자 분량의 글 한 편을 급하게 작성하여 올렸다. 운이 좋아 한 번에 받아들여졌다. 작가 신청할 때 보통 두 편 이상의 글을 올린다는 것도 얼마 전에야 알게 됐다. 아직도 브런치북을 발행하는 데 버벅대는 기계치 브린이다.     

 

코로나로 바깥출입이나 취미생활도 없던 때였다. 만나는 사람도 별로 없고 생활은 단조로웠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고, 독서량과 생각의 깊이가 얕은 나는 대부분 생활 속에서 글의 소재를 얻고 있다. 출간이나 정식 작가를 염두에 두고 글쓰기를 시작한 게 아니니 부담을 느낄 필요도 없었다. 집에서 키우는 반려견과 마당에 드나들던 길냥이 이야기를 재미 삼아 쓰기 시작했다.


 한 달 후 처음으로 찾아온 조회수 폭등(4만에 가까운, 엄청난 조회수를 가진 분들에게는 극히 미미하지만)에 정신이 혼미했다. 누군가 내 글을 읽어 준다는 것만도 가슴 뛰는 일인데  그 많은 사람이 읽었다고 생각하니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 날 정신을 부여잡어깨에 무거운 짐을 올려 놓은 것 같았다.  

 

현재까지 144편의 글을 발행했다. 3권의 브런치북을 발행했고 진행중인 4개의 매거진이 있다. 반려견 두강이의 입장에서 쓴 견생일기를 시작으로 요리와 관련된 이야기, 교직생활 중 있었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묶어 브런치북으로 엮었다. 일주일에 한두 편의 글을 발행한 셈이다. 브런치 메인이나 다음 홈 앤 쿠킹에 소소하지만 자주 노출되어 글을 읽어 주신 분이 꽤 된다.


조회수와 구독자 수는 무관했다. 아, 최근에 고양이를 소재로 쓴 글 한 편이 다음 동물코너에 올랐다. 그때 구독자수가 20명 정도 늘었고 외국인도 3명이 있다. 고양이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됨과 동시에 걱정이 앞섰다. 집을 드나들던 마당냥이 셋 중에 상주하는 아이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말인즉슨 고양이 글을 계속 쓸 소재가 고갈 됐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일부러 데려오고 싶진 않다. 시골의 숲과 산을 돌아다니는 길냥이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길들이기 쉽지 않다. 억지로 할 수 없는 일임을 깨닫고부터는 가는 고양이 잡지 않고 오는 고양이 막지 않는다.    

  

브런치를 하면서 얻게 된 큰 수확은 다른 작가님이나 구독자 분들과 댓글을 통해 공감하고 소통하는 일이다. 직업도 연령도 생각도 모두 다른 분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눈은 밝아지고 생각의 밭은 넓어진다. 댓글을 통해 자주 만나는 분은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것처럼 느껴져 언제 어디서 만나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 오랫동안 글을 올리지 않으시는 작가님들은 혹시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이 되기도 하고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기뻐하는 마음도 든다. 브런치스토리는 내게 다양한 간접경험과 만남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소통의 장인 셈이다.     


일 년은 짧은 기간이다. 하지만 그동안 내게 생긴 변화로 본다면 시간의 길고 짧음이 중요한 게 아니란 걸 알았다. 비록 소소한 생활글이지만  글쓰기 전과 후의 내 삶의 자세는 분명 차이가 있다. 스쳐 보내던 풍경과 일상에 대해 들여다보고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 가족, 지인, 사회 등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좀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어 졌고, 좀 더 그럴싸한 글을 쓰고 싶다. 아직은 겨우 나만 알아차릴 수 있는 작은 변화이지만 물방울이 모여 바위를 뚫듯 노력을 보태고 시간이 흐르면 나아질 것으로 기대해 본다.

     

최근 글쓰기 플랫폼이 늘어나는 추세다. 나 역시 브런치 작가님들 덕분에 알게 된 두세 곳에 발만 디딘 상태다. 아무래도 게으른 나에겐 관리 부실로 오래가지 못할 것 같다. 그에 비해 브런치는 나의 글쓰기 고향 같은 곳이다. 편안하다. 늘 같은 브런치를 먹다 메뉴를 바꿔도 결국 다시 돌아온 것처럼 내게 브런치 스토리는 그런 곳이다. 애당초 큰 기대 없이 내 글을 담고 보여주는 공간으로 여겼기에 친구 같은 편안함이 있다. 브런치 작가 1주년 감사인사를 드리기 위해 시작한 글이 장황해졌다. 늘 비슷한 분량을 채우다 보니 어느새 버릇이 된 모양이다.      


글을 읽어주는 구독자님, 구독자는 아니지만 종종 찾아 주시는 작가님들, 다음이나 브런치 메인에 노출되어 오다가다 읽어 주신 분들에게 이 글을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여러분들 덕분으로 제 인생에 더없이 중요한 일 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글쓰기가 망설여질 때, 힘이 되어 주신 여러분들이 있기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바람 불어 휘청거리는 날에도 님들의 응원으로 버텨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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