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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희 Oct 30. 2023

고양아, 너의 마음이 궁금해

 으르렁, 냥 캬악. 아 ~앙. 또 시작이네. 시계의 작은 바늘이 12시를 넘겼다. 내 저 놈을 확 마.  둘은 신음소리 같은 낮은 음을 내뱉다가 점점 소리를 키우더니 갑자기 찢어질듯한 고함을 질렀다. 소리만 들으면 벌써 어느 한 놈이 죽어 나자빠졌던지 반병신이 됐을 것 같다. 손전등을 찾아들고 뒷 꿈치에서 바람이 일 정도로 달려 나갔지만 두 녀석의 형체는 풀숲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소리 나는 쪽으로 이리저리 불빛을 비추며 '두서야, 두리야' 하고 녀석들의 이름을 번갈아 불렀다. 한참을 말로 싸우던 녀석들이 웬만큼 잠잠해지는 것 같아 집 안으로 들어서는데 썬룸 출입문에 내 모습이 비쳤다. 가관이었다. 잠옷 바람에 머리는 헝클어지고 눈은 퀭했다. 일주일에 두어 번은 이 짓을 하고 있다. 냥딸 다칠까 봐 싸움 말리러 다니는 꼴이라니. 아놔, 이러다가 지레 늙을 것 같다. 

    

 이 년 전부터 내 집 마당에 찾아온 고양이 세 마리(두식, 두랑, 두리)에게 어느새 내 맘까지 점령당했다. 밥이나 먹이자 싶어 시작한 일이 정신 차리고 보니 냥 아들 둘, 냥 딸 하나를 둔 어미가 되어 있었다. 속상하고 언짢은 일이 있어도 아이들만 보면 미소가 절로 나왔다. 오도독오도독 맛있게 밥 먹는 녀석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 배까지 부른 것 같았다. 그렇게 오순도순 마냥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러다 봄이 되자 두랑은 가출을 일삼았고 두식은 오월에 고양이 별로 떠났다.   

   

냥딸 두리 혼자 아련한 눈빛으로 먼 하늘을 종종 바라보며 눈가가 촉촉해졌다. 두리는 두랑이(남아)가 놀러 나갔다 눈이 맞아 데려온 여자애다. 알콩달콩 연인처럼 잘 지내던 두 녀석에게 변화가 일어 난 건 봄이었다. 허파에 바람이 들었는지, 두 집 살림을 차렸는지 집 밖으로 자주 마실을 나가던 두랑이 급기야 일주일씩 집을 비우기를 반복했다. 두랑과 두리의 사이는 점점 멀어져 갔다. 두랑이 주린 배를 채우러 와도 둘은 소 닭 보듯 멀찌감치 앉아 제 볼일만 봤다. 두리의 본새가 마치 바람피우고 돌아온 서방을 대하는 본처 같았다.     


 낯선 고양이 한 마리가 집을 들락거렸다. 직선거리 30m 정도의 이웃에 고양이를 키우는 집이 있다. 무늬가 얼룩덜룩하고 포스가 장난 아닌 암고양이다. 지난해부터 가끔 우리 집까지 올라오던 녀석이 두리 혼자 남겨진 걸 아는지 부쩍 출입이 잦았다. 녀석의 이름이 두서다. 잠깐, 고양이들 이름이 왜 죄다 두0인지 궁금할까 봐 밝힌다. 별다른 뜻은 없고 내가 사는 곳이 두동면이다. 그래서 두자 돌림으로 지었다. 두서네 집은 두동이란 개가 있어 고양이는 두서로 지었단다.(두동면 옆이 두서면이다. ㅎㅎ)     

 

이웃집 고양이 두서 ( 지금은 덩치가 1.5배 커졌음)


두서와 두리가 본격적으로 기싸움을 벌이기 시작한 건 일 년이 넘었다. 나이로 보나 덩치로 보나 둘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 두서는 큰 개나 사람도 무서워하지 않고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닌다. 밤이 되면 우리 집까지 올라 와 두리를 불러 내 시비를 걸었다. 장담컨대 두리는 집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마당에서 내가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한달음에 뛰어 오는 거리에 늘 있다. 게다가 겁이 많아 깜짝깜짝 놀라기 일쑤다.


두서에게 신변의 변화가 (서로 모자지간인걸 알아보지 못하는 두서의 자식이 파양 되었다가 돌아옴) 일어나서인지 요즘 부쩍 낮 밤을 가리지 않고 우리 집을 맴돈다. 밤이 되면 둘이 내지르는 소리가 집안까지 들릴 정도로 크게 싸우기를 수십 번. 보통은 20분 정도 대치하다 결국 한바탕 난리를 떨고 두리가 창고 밑으로 숨었다. 그 앞에 버티고 있는 두서를 쫓아내야 비로소 전쟁은 끝이 났다. 녀석들은 배꼽시계만 아는 모양이다. 밤 열두 시, 한시를 가리지 않고 싸우는 통에 번번이 잠자는 시간을 놓치게 된다. 그런데 동네가 시끄럽게 요란한 소리를 지르며 수십 번 대치해도 두 녀석이 직접적으로 몸싸움을 벌인 적은 없었다. 피 터지는 싸움이 터지기 일보 진전 두리가 잽싸게 몸을 피하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치면 막말 작렬에 삿대질을 하고 싸우지만 멱살을 쥐거나 머리채를 잡지는 않았다. 

   

며칠 전, 두랑이 왔다. 저녁 7시가 넘어서였다. 식사 시간도 딱딱 못 맞추냐며 투덜대면서도  한달음에 밥을 챙겨 나갔더니 두리와 두서가 또 싸우고 있었다. 울음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대부분 집 마당이나 야외 테이블 밑에서 한바탕 난리를 피우는데 그날은 집 뒤 풀숲에서 전쟁이 시작됐다. 어찌나 맹렬하게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요란을 떨어대던지 저러다 누구 한 놈 잡겠다 싶었다. 큰 소리로 야단을 쳤지만 두 놈 다 꼼짝 않고 버텼다. 주린 배를 채우느라 정신없이 밥그릇에 코를 박고 있던 두랑이 밥 먹다 말고 소리 나는 쪽을 계속 쳐다보며 신경을 썼다.  평소엔 밥 먹자마자 내빼던 녀석이 웬일인지 꼼짝도 하지 않고 담벼락 위에 버티고 있었다.


 두서는 남편의 고함소리를 듣고 줄행랑을 쳤다가 다시 오기를 반복했다. cctv로 확인하니 이번엔 본격적으로 두 놈이 마당에서 맞짱을 뜰 기세였다. 이때, 담벼락 위에서 지켜보던 두랑이 펄쩍 뛰어내려 두리와 합세하여 두서를 쫒았다. 남편의 중계방송을 듣고 승리의 팡파르를 울리는 두 전사에게 보상으로 닭가슴살과 츄르를 대령했다. 그간 소원하였던 두 녀석의 사이가 그 밤 이후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이삼일에 한 번씩 나타나던 두랑이가 아침저녁 오는 건 물론이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오늘 저녁도 사이좋게 저녁을 먹고 알콩달콩 정담을 나누더니 후식을 냉큼 드시고 팔짱 끼고 사라졌다.     

 


얼마 전 끝난 드라마 ‘힙하게’의 여주인공 수의사 봉예분(한지민분)은 우연히 초능력을 얻게 된다. 사람을 비롯한 동물의 엉덩이를 만지면 그들이 뭘 말하는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는 능력이다.

고양이의 세계는 보면 볼수록 흥미롭고 궁금하다. 두리와 두랑이는 왜 사이가 멀어졌는지,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전처럼 지낼 수 있을지,  두서는 멀쩡한 집 놔두고 왜 집순이인 우리 두리를 괴롭히는지. 정말 알고 싶다. 예분 씨, 그 초능력 한 번만 빌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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