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딸기 8800원'이라는 가격표가 눈에 확 들어왔다. 웬일로 이런 횡재가 있나 싶어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다가간 순간, 정체를 알고선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릇째 들고 내려다봐도 올려다봐도 딸기는 달랑 한 줄, 14개였다.
그럼 그렇지. 들었던 딸기 그릇을 제자리에 곱게 내려놓았다.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해(hey) 내 맘을'... 이전에 유행했던 노래, 요즘 장 보러 오면 내가 그렇게 하고 있어 저절로 생각나는 노랫말이다.
딸기뿐 아니라 다른 과일값도 예사롭지 않길래 사과 판매대로 직진했다. '아침 사과는 금'이라는데, 요즘 '금수저는 아닐망정 금사과는 먹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매일 아침 사과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사과는 일곱 개들이 한 봉지에 1만 3500원. 한 알에 2천 원 정도지만, 이것도 로컬푸드라 그나마 저렴한 편이다. 작년까진 밀양 얼음골 사과를 10kg 상자째 집에 두고 줄곧 먹었지만, 올해는 마트에서 사는 봉지 사과로 대신하고 있다. 사과와 함께, 옆에 있던 한정 물량 할인하는 토마토를 '득템' 하는 기분으로 몇 개 담았다.
집이 시골이다 보니 장보기가 쉽지 않다. 차로 25분 거리의 원예농협 하나로마트에 장을 보러 간다. 그곳에는 로컬푸드 매장이 있다. 매일 오전,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들로 코너가 채워져 신선한 채소나 과일을 비교적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소비자인 나는 좋은 물건을 싼 가격에 살 수 있고 지역 농민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오늘은 로컬 매장에서 봄동과 냉이, 대파, 사과를 구입했다. 예전에는 적어 간 것 외에도 눈에 띄는 찬거리가 있으면 예정에 없던 품목이 꼭 두세 가지는 장바구니에 담겼다. 요즘은 적어 간 것조차 가격표를 보고 돌아서게 된다. 오늘 마음까지 두고 온 것들은 애호박과 파프리카다.
달걀, 두부, 콩나물, 냉이, 시금치, 사과, 토마토, 간장……. 장을 보고 나니 생선이나 육류가 없는 데도 10만 원을 훌쩍 넘겼다. 마트에서 계산을 마치고 나면 '뭘 샀는데 이렇게 많이 나왔지'라고 중얼거리며 영수증을 들여다보는 게 습관처럼 되었다.
주부 경력 30년이지만 직장 다닐 때 시간에 쫓겨 장을 보던 습관이 남아서인지 덜렁대는 성격 탓인지, 원래는 물건 살 때 가격을 잘 따져 보지 않고 샀었다. 그러던 내가 요즘은 치솟는 고물가를 감당하기 어려워 나름 몇 가지 방법을 쓰고 있다.
첫째, 장을 보러 다니는 주기가 일주일에 한 번에서 열흘로 늘어났다. 냉장고가 텅텅 비어갈 즈음에야 마트를 찾게 되니 전처럼 먹지 않고 버리는 식자재가 거의 없다. 횟수를 줄이다 보니 아무래도 지출도 줄었다. 자주 장을 보지 않으니 장기간 보관이 가능한 것들은 넉넉히 구입해서 소분하여 냉동실에 보관하고 있다. 장바구니 물가가 워낙 오르다 보니 식비 지출이 만만치 않다.
그렇다 보니 가성비가 좋은 식재료를 주로 찾게 된다. 우리 집 식탁에 빠지지 않는 것이 콩나물, 두부, 달걀, 어묵 등이다. 매번 구입하지만 조리법을 조금씩 다르게 하여 눈과 입을 속이고 있다. 외식 비용도 부담이 되니 밀키트로 외식 기분을 낸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약간의 부재료를 곁들이면 제법 근사한 요리가 된다.
우유나 간장, 라면 등 신선 식품 외의 식자재는 할인하는 상품을 구입한다. 식품이나 공산품 코너에 가면 그날그날 할인하는 제품들이 있다. 특별히 선호하는 제품 외에는 할인 상품이나 쿠폰 상품을 이용한다. 하지만 큰 글씨로 써 둔 가격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비슷해 보이지만 회사마다 중량이 다를 수 있다. 가격표에 있는 제품의 100g당 단가와 원료 함량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고물가 시대에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한 전략으로 가격은 그대로 두고 크기나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이나 가격을 유지하는 대신 품질을 낮추는 '스킴플레이션'을 쓰는 까닭이다. 주의 깊게 살펴서 보지 않으면, 일반 소비자들은 눈치채기도 어렵다.
특히 나는 매달 강아지와 고양이 사료, 간식을 구매한다. 작년에 5만 6천 원 하던 강아지용 사료는 일 년 사이에 6만 5천 원으로 올랐고, 반려동물용 닭가슴살은 개당 22g에서 20g으로 슬그머니 용량이 줄어 있었다.
수입은 일정한데 대부분의 제품 가격이 상승하고 전기요금, 가스요금, 교통비 등의 각종 공과금도 오르다보니 우리네 서민 삶은 더 팍팍해진 것 같다.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보다는 가격부터 따져보게 된다.
특히나 물가가 오르면 대부분 사람들은 식비부터 줄이고자 노력한다. 요즘같이 채소나 과일 가격이 급등하면 결국 장바구니에서 제외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단백질과 비타민을 포함한 균형 잡힌 식사는 전보다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형편이 어려울수록 가격이 저렴하고 포만감이 큰 정제된 탄수화물로 한 끼를 때우기 쉽다. '파송송 계란 탁탁'의 맛으로 먹는 라면이 아니라, 라면을 어쩔 수 없는 한 끼 식사로 대신하기 십상이다.
소득이 낮을수록, 낙후한 지역에 거주할수록 비만이 되기 쉽다는 사실은 앞선 여러 연구 결과에서 뒷받침하고 있다. 비만은 각종 성인병을 동반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결국 소득이 적으면 병에 걸릴 가능성도 높아지는 셈이다.
과거 교사였던 나로서는 이런 고물가 시대에 학교 급식의 질은 어떨지도 걱정이 된다. 식자재가 비싸질수록 성장기 청소년들에게 양질의 식사를 저렴하게 제공하기는 더 어려울 것 같아서다.
이런저런 면을 종합해 보면, 물가는 결국 국민들이 마주하는 일상과 삶의 질을 좌우하며 국민 건강과도 직결되는 문제임을 알 수 있다. 당연한 말일 수 있지만,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다. 예전엔 가격이 착하고 품질 좋은 물건이 있으면 넉넉히 구입해서 지인과 나눔을 하기도 했는데, 물가가 확 오른 요즘은 그것도 어렵다. 인정으로 주고받는 작은 선물들도 줄어들었다.
당분간 물가가 내릴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최대한 아껴 쓰고 현명한 소비를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살림살이가 힘들어지니 마음의 여유도 잃어가는 것 같다. 봄이 오면 팍팍한 살림살이는 조금 나아질까, 괜스레 텅 빈 하늘을 쳐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