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알림이 떴다. 매일 한 문장이라도 쓰는 근육을 키우란다. 독촉장이다. 아, 나 감시당하고 있었나. 글을 쓰지 못한 지 한 달. 아, 이렇게 말하면 이 글을 읽는 분 중 누군가 오해하실 수 있겠다. 여기서 글이란 브런치에 올릴 글을 말한다. 작년 팔월 중순. 글쓰기를 시작한 후 발행은 자주 하지 않더라도 일주일에 최소 두 편씩은 써 왔다. 쓰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무엇이든 글감이 되었고, 먹는 것과 자는 것에 보이는 열정만큼 글쓰기에도 솟구치는 정도까진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치열함이 있었다. 자려고 누었다가 휴대폰에 메모를 남기기도 하고 눈을 감고 다음 글감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언제 글을 써 본 적이 있기나 했나 싶다. 손끝에 만져지는 달콤하고 짜릿한 키보드의 감촉 따윈 잊은 지 오래다.
9월 1일부터 집에서 승용차로 25분 거리의 인문계 고등학교에 출근하고 있다. 6개월 기간제교사로. 이른 퇴직을 한 지 삼 년 반만의 일이다. 2학기 시작인 8월 14일부터 시간제 강사로 출근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으나 내게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삼 년 반의 공백을 메꾸려면 공부도 해야 하고 마음의 준비도 필요했다. 교재연구를 하면서 틈틈이 세 편의 글을 썼다. 내심 일주일에 하나씩 발행하면 삼 주는 버틸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다 보면 학교생활에도 익숙해져 일주일에 한 편쯤은 뭐라도 끄적일 수 있지 않을까 여겼다. 결론부터 말하면 잘못된, 아니 허황된 생각이었다.
다시 찾은 학교는 나의 일상을 파괴했다. 학교 업무를 다루는 시스템은 바뀌었고, 코로나 이전과 학교의 분위기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새 학기 초부터 시작한 수업이 아니다 보니 서로 적응하는데도 시간이 필요했다. 학급당 35명이 넘는 학생 수는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들었다. 예전과 달리 수업 중 자는 학생을 깨우거나 산만한 학생을 나무라기도 힘들었다.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생의 잘못을 지적하게 되면 곤란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가르치는 일이나 학생 다루는 일에도 나름 자신 있다고 여겼는데 생각과 달랐다. 나의 기억은 삼 년 전에 머물러 있었고 학생들의 행동과 사고는 많이 달라졌다. 머리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여겼지만 쉽지 않았다. 매일이 낯 섬으로 다가왔고 형편없는 체력은 저녁 식사 후 소파와 한 몸이 되게 만들었다. 출근은 집 앞에서 학교 앞까지 남편의 충실한 기사 노릇(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다)으로 25분 정도면 가능하다. 퇴근할 땐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서 15분 기다렸다 버스 타고 돌아오면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 어렵사리 연명하는 하루살이 같은 신세가 따로 없다.
학교를 나가면서 살짝 기대했다. 어쩌면 글감을 그물로 건져 올리듯 마구 얻을지도 모른다는. 푸하하, 아무리 착각은 자유라지만 이 정도 일 줄이야. 2주 동안 멈춰있던 학습 진도는 수업 시간마다 숨 가쁘게 달리기를 재촉했다. 수업 빈 시간엔 두 과목 교재 연구에 학습지 만들기도 빠듯했다. 3주쯤 지난 지금.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나 싶은데 이번엔 중간고사 문제 출제. 추석 연휴 동안 마무리해서 제출해야 한다. 시험 끝나고 나면 12반의 서술형 평가 채점이, 그다음은 과정형 평가 출제 및 채점, 다음은 기말고사 출제, 또 그다음은 430명 학생의 세특(과목별 세부 특기사항 기록)이 기다리고 있다. 산 넘어 산이다. 이럴 줄 몰랐던가, 할 일은 산더미였고 마음의 여유는커녕 시간에 쫓기듯 사는 게 일상이 되었다.
글을 쓰지 못하고 한 달을 보내다 보니 머리는 가벼워지고,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방학을 앞둔 초등학생이 숙제를 미처 다 못했는데 개학이 된 것처럼 불안하고 찜찜했다. 이러다 6개월 근무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다시 글쓰기를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글을 쓰지 못한 동안에 구독자가 열 분이 늘었다. 변변찮은 글이긴 하지만 행여 내 글을 기다리는 분이 몇 분이라도 계신다면 그분들께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론 기껏해야 일 년 남짓의 기간 동안 깨작거린 주제에 마치 작가 흉내라도 내는 듯싶어 가소로운 생각도 들었다.
브런치에서 구독하는 여러 작가님들이 매일 글쓰기를 실천하고 계신다. 몇몇 분들은 글쓰기는 꾸준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루에 몇 줄이라도 끄적이다 완전히 손을 놓고 보니 그분들이 왜 그렇게 하는지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날마다 글쓰기 하는 분들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예전엔 글쓰기가 부담스러워질까 봐 쓰고 싶을 때 자연스럽게 쓰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다. 아무것도 쓰지 않는 지금 오히려 이래도 될까 하는 부담이 생긴다.
글을 쓰지 않는 동안 생각도 멈춘 것 같다. 글을 쓴다는 일은 사고와 행동을 동반한다. 글감을 찾기 위해 자연과 사람을 돌아보고 관찰하는 일이 필요하다, 스쳐 지나가는 바람 한줄기에도 생각이 깃들 수 있다. 어쭙잖은 글일망정 손을 놓다 보니 모든 것이 멈춘 것만 같아 두려운 마음도 든다.
학교는 1학기든 2학기든 새 학기만 되면 바쁜 업무가 몰아친다. 그래서 보통 학기가 시작하고 한 달쯤 되면 몸살을 앓는 경우가 많다. 마침 긴 연휴를 맞아 몸도 마음도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마음도 다잡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