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희 Nov 13. 2022

바세권이 뭐예요?

우리 동네 책방에 놀러 오세요

 제일 가까운 아파트촌까지 차로 15분.

집 근처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엔 몇 개의 식당, 카페, 편의점 하나가 전부인 마을.

차로 7분 거리에 면 소재지가 있고.

그곳에 농협 하나로 마트,

배달이 불가능한 중국집과 치킨집이 있는 동네에서 시골살이를 하고 있다.     


직장을 그만둔 지 삼 년째.

집을 짓고 이사 온 지 1년 반이 지났다.

2021년은 정신없는 한 해를 보냈다.

 6월 말에 집을 옮긴 후 이삿짐 정리에다

마당 조성, 썬룸 공사 등으로 분주히 보냈다. 게다가 무려 20번에 달하는 집들이는(대부분 식사 준비)

나를 녹초로 만들어 다른 취미 생활은

엄두도 낼 수도 없었다.


그래도 아침을 알리는 새소리에

향기로운 공기, 그림같은 푸른 하늘과

계절마다 바뀌는 들꽃들은

나를 행복하게 했고,

좋아하는 여행을 가지 않아도 딱히 아쉬움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뭔가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고 싶었고,

새로운 것을 시도 해보고 싶은 욕구가

내 안에서 스멀거리기 시작했다.     



작년 여름.

지인의 소개로 우리 동네 책방 카페 ‘바이허니’라는 곳을 알게 됐다.


바이허니는 국어교사로 퇴직하신 분이 남편과 함께 운영하는 동네 책방 카페이다.

지인들과 함께 차를 마시러 한두 번 들린 적이 있지만, 그게 다였다.


겨울 초입에 모임을 함께 하는 선생님들이 집들이를 왔다. 그 중 두 분이 바이허니에서 어반 스케치 수업을 받는데  한 분이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게 됐다며, 자기 자리에 들어가면 된다고 취미생활을 권했다.

고맙게도 본인이 사용하던 물감, 펜 등의 그림 도구까지 주었다.


문화생활(?)에 목말랐던 참에 적절한 권유여서 얼마나 반가왔는지 모른다.

시내 살 때는 코로나로 뭔가를 배우러 다니기 어려웠고. 이사 와서는 물리적인 이유로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물론 차만 타면 20분 거리 내에 문화센터가 있지만 운전을 싫어하는 나로선 그것도 살짝 부담이 되었다.

그러나 바이허니는 우리 동네 가까이 있어 (차로 8분) 20년을 넘게 한결같이 초보인 내가 운전하기에도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에 있다.


첫 수업을 가는 날 뜻밖에 카톡 문자가 왔다. 그날 모임을 같이 했던 K 선생님이 어차피  가는 길이니 태워 다니겠다고 다.

그렇게 시작한 그림 수업이 벌써 8개월이 되었다. K 선생님과는 차 안에서 오며 가며 얘기도 나누고, 그림도 함께 그리니 이전보다 훨씬 가까워졌다. 어쩌면 K 선생님은 나이 차가 10살 이상 많은 내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책방의 북마스터(여 사장님을 그렇게 부른답니다.)는 새 책이 들어오면 밴드에

책 소개와 함께 여러 가지 소식을 전해준다. 책방에선 누구나 책을 사서 읽을 수도 있고, 비치된 책을 읽거나, 본인의 책을 가져와서 편하게 읽을 수도 있다.

게다가 늘 신경 써서 가꾸는 정원은 사시사철 각양각색의 예쁜 꽃들을 감상할 수 있어 눈의 호사도 누릴 수 있고.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은 덤으로 온다.


바이허니에서는 북 토크를 비롯해 각종 독서 모임, 시 읽기, 함께 영화 보고 얘기 나누기, 그림이나 미술 작품 전시까지 열리니 규모만 작지 명실공히 이 동네의 종합 아트 센터인 셈이다.     



8월 말에는 바이허니 정원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피아노, 대금, 아쟁의 연주가 늦여름 밤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시 낭송을 하는 김민서 시인의 목소리는

어찌 그리 낭랑하고 가슴에 와 닿던지.


한 여름밤 꽃향기 날리는 정원에서

아름다운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

이장근 시인의 ‘오늘 잘한 일’이라는 시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해 주었다.         


시인 김민서님의 시 낭송

어느 날 14주 동안 

‘작가님과 함께 하는 글쓰기 교실’이 열린다는 공지가 밴드에 떴다.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그동안 글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마치 미루어 둔 방학 숙제처럼 답답하던 차에 너무 반가운 소식이었다.


글쓰기 교실에서는 이론 수업 3주,

기존 작가님의 소설과 수필 분석 3주를

거친 후 회원들이 작품을 한편 씩 단톡방에 올리면 읽은 후 모임에서 합평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처음엔 14주의 수업을 다 마친 후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해 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급한 성미에 14주를 기다리기는

너무 길었다. 2주가 지나고 야심한 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고야 말았다.

글쓰기 모임은 나도 몰랐던 내 안의  쓰고 싶다는 욕구를 꺼내 놓았다. 그렇게 진행된 글쓰기 수업에 각자 수필과 단편소설 등을 써냈다. 나는 미역국이라는 수필 1편과 부엔 까미노라는 단편 소설 1편을 합평을 위해 제출했다.

물론 소설은 부끄럽기 그지없는 이름만 소설일 뿐이다.

14주를 마친 우리는 아쉬움에 그냥 헤어질 수 없어 1달에 두 번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고 앞으로도 계속 글을써서 합평을 하기로 약속을 했다.


바이허니는 글로,

글은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가고 있다.


새로운 모임에도 도전했다.

한 달에 한 번 갖는 시 읽기 모임이다.

매달 시집 한권을 선정하여 각자 마음에 드는 시한 편을 골라와서 그 시를 낭송하고,

 시가 마음에 드는 지를 이야기 한다. 다른 분들의 얘기를 듣다보니 시집속의 여느 작품과 다르지 않게 느껴졌던 시들이 각자의 느낌을 통해  새롭게 다가왔다.

시 한편을 통해 서로가 공감하고,

마음을 열게 되는 참 따뜻한 모임이었다.

이미 다른 분들이 계속해 오던 모임이라 조금은 어색했지만 새로운 도전은 나를 설레게 한다.

오랫동안 시를 가까이하지 않던 내게 감성 충만의 기회가 다시 왔다.     

이 모든 것이 우리 동네 책방 바이허니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바이허니같은 소규모 동네 책방들은 그 동네를 삶의 터전으로 여기고, 동네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 정말 그 일을 사랑하여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어서 만든 공간이다. 돈만 생각한다면 쉽게 시작할 수 없는 일이다.


동네책방은 다양한 목소리와 시선이 어우러질 기회를 제공하며 그곳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고, 크고 작은 모임이 이루어지는 소통의 공간이 된다. 단순히 책만 파는 곳이 아니라 이웃과 취미를 공유하는 소통의 문화공간인 셈이다.

 나 역시 이곳을 통해 단지 취미 생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를 맺고,

정을 나누며 이웃을 알아간다.      


나는 '바세권'에 산다.

바이허니에서 주최하는 각종 행사에 마음만 먹으면 참석이 가능하고, 사계절 정원의 갖가지 꽃들과 함께 차와 음악,

주인장의 따뜻함을 나눌 수 있으니

역세권도, 배세권도 부럽지 않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골라 먹는 재미가 쏠쏠한 외식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병원도 미용실도

차를 타고 한참을 가야 있는 곳.

배달앱을 누르면

‘가능한 곳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라고 뜨는 이곳에서 나는 행복하다.


바세권은 배세권을 능가하여 나의 뇌를 자극하고 내 마음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글쓰기와 읽기, 소통의 욕구들을 일깨워 제2의 인생을 꿈꾸게 해 준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바세권을 누리며

우리 동네 책방 ‘바이허니’를

동네방네 자랑질한다.   

   

                          바이허니 정원

작가의 이전글 내 오빠는 내가 지킨다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