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을 넘긴 중년 사내와 60을 바라보는 중년 아줌마의 일상입니다. 보시기에 많이 유치하고 덜 떨어진 모습이지요. 제가 봐도 좀 낯 뜨겁네요.
오늘은 지극히 평범하다 못해 이런 것도 얘깃거리가 되나 싶은 저희 부부 사는 이야기 들려 드릴게요.
우리는 둘 다 말수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닙니다. 게다가 취미도 관심사도 제각각입니다.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보는 것만 좋아하는 그와 운동이라면 자다가도 벌떡이 아닌 귀를 막고 돌아 눕는 제가 함께하는 유일한 운동은 반려견 두강과 함께 셋이 산책하는 정도입니다.
여름이면 차디찬 얼음산을 이룬 냉면이나 밀면을 먹는 그의 옆에서 굴국밥이나 칼국수를 먹었지요. 공상 과학 영화를 좋아하는 그와 로맨틱 코미디나 서정적인 영화를 즐겨 보는 나는 영화 취향도 다르네요.
저는 다혈질에 성격이 매우 급해 두 번 물으면 화를 내고, 상대방이 묻는 말에 바로 대답하지 않으면 머리 위로 수증기가 오릅니다. (물론 남들에게 이런 짓을 하진 않습니다) 옆의 중년 사내는 느긋함이 마치 생활의 신조라도 되는 양 어떤 땐 대답 한 번 들을라치면 목을 빼고 기다려야 합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제 목이 늘어나 있는 것 같더니 바로 이 때문이었군요.
제가 말했습니다. "이러다가 어느 날 당신 옆에 기린이 앉아 있을지도 몰라요. "라고
아니, 그렇게 안 맞는 데 왜 결혼했어?라고 말하고 싶으시죠. 그러게나 말이에요.
근데요, 한 삼십 년 살다 보니 닮아 가나 봐요. 좋아하지 않던 음식도 먹어야 사니까, 먹다 보니 또 먹어지더라고요. 이제 웬만한 음식은 없어서 못 먹고, 영화의 쟝르따윈 고사하고 조조관람을 택하지요.
사실 우리 둘 다 직장에서나 다른 사람에겐 온화하고, 비교적 괜찮은 평을 들었답니다.
딱히 애쓰진 않지만 다행히 약점을 별로 들키고 산 것 같진 않아요. 가면의 성능이 좋은가봐요.
아! 그 점은 비슷하네요.
7년 전. 패키지와 자유 여행의 어정쩡한 위치에 있는 상품을 골라 중남미로 한 달간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어요. 저희와 비슷한 연배의 부부가 몇 쌍 있었습니다. 긴 여행이다 보니 여독을 풀 겸 함께 술도 마시고, 시내 관광도 하면서 많이 친해졌습니다. 중년 부부에게 한 달간의 여행은 살아 왔던 결혼 생활의 축소판 같더군요. 24시간을 붙어 있다 보면 사이가 좋을 수만은 없지요. 나란히 앉아 있어도 냉랭하게 흐르는 기류는 금방 눈치챌 수 있어요. 다행히 대형 버스의 남는 좌석은 싸우고 난 부부들의 자동 냉각기가 되어 주더군요.
여행의 끝자락에 왔을 때쯤 친하게 지낸 부부가 우리더러 “어떻게 한 번도 안 싸울 수 있냐?”라고 하데요. 물론 우리도 두어 번 말다툼이 있었지만 워낙 연극이 완벽했던지 일행이 눈치채지 못했나 봐요.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교장 선생님과 나눈 이야깁니다.
“ㅇ선생 남편은 정말 대단하다. 한 달을 우예 버티노?”
" 내는 열흘은 참겠는데 그 이상은 파이다." 라고 하셨어요.
그때 제 대답은 믿거나 말거나
“제가 더 착해서요.”였습니다.
주위 분들이 퇴직 후 하루 종일 둘이 함께 있으면 힘들지 않냐고 하더군요. 그럭저럭 참을 만 하답니다. 비결이 뭐냐구요?
사실 우린 따로 국밥이거든요. 둘 다 집순이, 집돌이지만 따로 또 같이 생활하지요.
식사 시간과 차 마시는 시간 외는 대부분 각자의 공간에서 지내요.
TV 리모컨 쟁탈전은 없냐고요? 그럴 줄 알고 거실에선 중년 사내가, 안방에선 제가 각자의 영역을 고수하며 갈등의 불씨를 잠재웁니다. 아, 물론 거실에서 같은 프로그램을 보기도 해요. 여행 다큐나 역사 관련 프로그램, 크게 들어야 좋은 음악 프로그램은 소파에서 서로의 발을 밀쳐가며 사이좋게 보기도 하죠.
중년 사내와 저는 수면 패턴도 완전 달라요. 잠자는 시간도, 온도도 다르지요. 제가 제일 참기 힘든 건 그의 코 고는 소리입니다. 술을 많이 마시고 잠든 날은 아주 가관입니다. 전쟁터가 따로 없어요.
밤새 기관총과 대포소리에 벽을 붙들고 있어야 될 정도니까요.
오죽하면 자던 강아지가 아빠 입을 틀어 막겠어요. 그래서 아들이 대학에 입학한 후부터 각방을 썼답니다.
이사온 후는 각 방에서 승격, 각 층으로.ㅎㅎ
그러니 실제로 집안에서 마주치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답니다.
삭막하지 않냐고요?
전혀요. 우린 가벼운 스킨십과 싱거운 농담을 시도때도 없이 주고 받거든요.
같은 공간을 스쳐 지나갈 때도 일부러 앞길을 막고 장난을 치기도 하지요. 각자 잠자리를 찾아 헤어질 땐
“나 없는 밤이 길고 쓸쓸하겠지만 참아야 해”
“힘들지만 견뎌 볼게” 대화가 이딴 식입니다.
오늘은 낮에 샐러드용 채소를 썰다 칼 끝이 살짝 스쳤는데 피가 났어요. SOS신호를 받고 온 그가 연고를 바르고 일회용 밴드를 붙이면서 손가락 방향을 돌리라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이케요? 저케요”했더니 같잖다는 듯 쳐다봅니다.
머쓱해진 제가
“60이 다 돼 가면서 이렇게 애교 부리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라고 했더니,
중년 사내는
“내가 전생에 나라를 여러 번 구했나 보다” 합니다.
일주일에 몇 번씩 번갈아 나라를 구했다가, 팔아먹었다가, 부부였다가 친구였다가, 동지인 듯 적인 듯 지낸답니다. 삼십 년 넘게 살다 보니 사랑인지 우정인지 전우애인지 저도 헷갈립니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 찍어 화~악 남으로 만들어 버릴까 하는 생각을, 살면서 여러 번 하지 않나요?
아, 다 그런 건 아니라고요. 저만 그랬나 봅니다.
부부가 뭘까요. 정철 님의 글에
한 글자로는 짝, 두 글자로는 하나,
세 글자로는 나란히, 네 글자로는 평생 친구, 다섯 글자로는 사랑합니다.
열 아홉 글자로는 당신이 그랬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요.
라고 나와 있더군요.
‘백세 시대’라지요. 둘 다 건강하다면 앞으로도 살아온 세월만큼, 어쩌면 더 긴 시간을 함께 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이제 젊은 날처럼 활활 타오르는 사랑은 없습니다. 더 이상의 가슴 떨림도 없습니다.